중앙일보에서 발행하는 <중앙 SUNDAY>가 지난 17일치에 기획취재랍시고 쓴 기사가 있습니다. 한 꼭지도 아니고 1면과 6·7면에 걸쳐 무려 네 꼭지나 실었습니다.

“올 봄 천성산 웅덩이엔 도롱뇽·알 천지였습니다”, “공사 때문에 물 말랐다면 우리가 가만히 있겠느냐”, 94년 정부 보고서, 동·식물 영향 평가 빠져 논란 시작, “천성산 터널 개통하면 내가 할 일 많을 것”…….

중앙일보는 이를 받아 18일자에서 22면에 “습지 말라 도롱뇽 다 죽는다던 천성산 가보니”라는 <중앙 SUNDAY> 기획취재를 실었습니다. 같은 기자가 쓴, 내용은 거의 다르지 않은 글이었습니다.

제목만 봐도 대충 짐작하겠지만, 2000년대 우리 사회를 달군 쟁점 가운데 하나였던 천성산 고속철도 터널 관통과 관련된 것이었습니다. 11월1일 천성산 원효터널 개통을 앞두고 임현욱이라는 기자가 터널 바로 위에 있는 밀밭늪과 화엄늪을 둘러보고 쓴 글들입니다.

▲ 중앙일보 10월18일치
1. 도롱뇽이 없다고 한 것은 정부와 한국철도시설공단이다

임현욱이라는 기자가 쓴 이 글을 읽고나서 저는 좀 어처구니가 없어졌습니다. 주객과 본말이 전도(顚倒)돼 있었기 때문입니다. 거두절미하면, 기사의 내용은 “지율 스님 주장과 달리 터널 공사가 끝났는데도 습지 생태는 달라지지 않았고 게다가 ‘도롱뇽까지 천지에 널렸다더라’”가 됩니다.

임현욱이라는 기자는 그야말로 앞뒤 다 잘라먹고 ‘도롱뇽 하면 지율이 떠오르는’ 대중적 이미지에만 기댔습니다. 사실 관계를 정확하게 전달하지 않은 것입니다. 나중에 말씀드리겠지만 일부러 지우기까지 했습니다. 지우지 않으면 자기 기사가 성립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정확한 사실 관계는 이렇습니다.

지율 스님이 2003년 10월15일 고속철도 천성산 관통 구간 공사 착공 금지 가처분 소송(이른바 도롱뇽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핵심은 공단 환경영향 평가가 너무 부실하니까 착공 전에 다시 하자는 데 있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거기서 문제가 없다고 결론이 나면 그대로 따르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도롱뇽을 소송인으로 내세웠습니다. 왜냐하면, 천성산 스물두 개 늪과 열두 골짜기에 가장 많이 살고 있는 녀석이 도롱뇽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정부의 환경영향평가에는 이에 대한 기록이 전혀 없었습니다.

1994년 나온 ‘경부고속철도 부산·경남권 건설사업 환경영향평가 최종 보고서’는 물론이고 지율 스님 문제제기 뒤(2003년)에 나온 ‘경부고속철도 천성산(원효터널) 통과 자연변화 정밀조사’에서조차 도롱뇽이 빠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도롱뇽이 이 같은 공단 환경영향평가의 그릇됨을 상징할 뿐 아니라 나아가 꼬리치레도롱뇽의 경우 그 녀석이 사는 물이 가장 좋은 1급수임을 알려주는 지표종이기까지 하다는 면에서 소송인으로 선택됐던 것입니다.

도롱뇽이 없다고 한 것은 정부와 공단이지 지율 스님이 아닙니다. 지율 스님은 도롱뇽이 골짜기마다 득시글거린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임현욱이라는 기자가 쓴 이번 기사들은 정부와 공단이 틀렸고 반대로 지율 스님의 주장이 옳았음을 뒷받침하는 셈이 됩니다.

2. 임현욱이라는 기자는 자기 기사에서 도롱뇽이 없다는 환경영향평가를 지웠다

▲ 지율스님 ⓒ김훤주
그런데 임현욱이라는 기자는 공단의 94년 보고서에 도롱뇽이 빠져 있다는 얘기를 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환경단체들’의 입을 빌려 “이 보고서가 천성산에 있는 22개 늪과 12개 계곡, 30여 종의 보호 동·식물 등을 검토하지 않았다고 반발했다”고만 했습니다.

딱 한 문장으로 뭉뚱그려 적었을 뿐 도롱뇽을 특정해서 말하지 않았습니다. 임현욱이라는 기자 이름으로 된 17일치 기사들에서, ‘도롱뇽’이라는 낱말이 모두 열네 차례나 나오지만 공단의 환경영향평가를 위해서는 단 한 번도 ‘도롱뇽’을 쓰지 않았습니다. 정말 비열한 노릇입니다.

그렇게 하면 자기가 쓰는 기사가 정부와 공단을 비판하고 지율 스님을 편드는 꼴이 되니까 이렇게 슬그머니 지운 것입니다. 도롱뇽이 이렇게 많은데도 1992년부터 이태 넘게 조사한 94년 환경영향평가 최종 보고서에는 단 한 마리도 담겨 있지 않으니 그야말로 ‘손만 대면 바로 부스러져 버릴 부실’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지율 스님은 이런 부실 덩어리를 믿고 터널 공사를 할 수는 없다고 정부와 공단에 항의했고 그것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마지막 수단으로 법원에 소송을 냈던 것입니다. 이런 사실 관계를 알고 난 다음에 임현욱이라는 기자가 쓴 이 기사들을 보면 얼마나 터무니없는 엉터리인지를 바로 알 수 있습니다.

3. 터널이 뚫리면 당장 변화가 눈에 띈다는 전제 자체가 잘못이다

임현욱이라는 기자가 쓴 이 기사는 터널이 뚫리면 당장 밀밭 늪 등에 변화가 생긴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마치 지율 스님이 그렇게 주장한 것처럼 읽히도록 만들어놓았습니다.

기사가 “‘도롱뇽 소송’을 기억하십니까”로 시작한 것도 그렇고, 바로 뒤이은 글에서 “지율 스님과 환경단체가 터널 공사를 하면 산 정상 인근의 늪이 말라 생태계가 파괴된다며 공사 착공 금지 가처분 소송을 냈습니다”라고 적힌 대목도 마찬가지 효과를 노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터널 관통에 따른 산마루 습지의 변화는 한 해나 두 해만에 눈에 확 띌 정도로 크게 일어나지 않습니다. 이것은 상식입니다. 지율 스님도 이런 상식을 갖추고 있습니다. 2003년부터 2006년까지 소송을 벌이던 당시에도 그랬습니다.

300m 이상 아래에 터널이 뚫렸다고 당장 밀밭 늪에 변화가 오리라고 생각하는 자체가 넌센스입니다. 게다가 아직 운행도 하지 않아 그에 따른 진동과 소음은 아예 일어나지도 않은 상황에서는 더욱 그러합니다. 당장 변화가 있으리라 믿었다면 임현욱이라는 기자는 그야말로 멍청한 인간입니다.

지금 밀밭 늪과 화엄 늪이 메말라져 있지 않은 것은 당연합니다. 올 봄 천성산 여기저기에 도롱뇽이 많았다는 것도 아주 당연한 일입니다. 게다가 도롱뇽은 제가 사는 창원이라는 도시 둘레 논에서도 그다지 어렵지 않게 눈에 띄는 존재입니다.

그런데도 임현욱이라는 기자가 쓴 이 기사들은 마치 지율 스님이 ‘당장’ 늪이 마른다고 말한 것처럼 읽히도록 은근히 암시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기사가 중앙일보라는 조직의 비열함도 ‘은근히 암시하고 있다’고 봅니다.

▲ 10월22일, 경북 상주 경천대 앞 낙동강에서 곧 사라질 풍경을 담고있는 지율스님 ⓒ김훤주
4. 지금 할 일은 고속철도 사업의 수익성 검증이다

이번에 임현욱이라는 기자가 쓴 기사를 보면 천성산 원효터널 개통의 효과가 ‘서울~부산 간 고속철도 22분 단축(기존 2시간 40분에서 2시간 18분으로)이라고 했습니다.

22분을 단축하는 데 얼마를 썼는지 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22분 단축이 과연 우리 사회에서 어느 정도 값어치가 되는지도 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아울러 경부고속철도 전체 공사에 얼마나 돈이 들어갔는지, 그에 따른 효과는 제대로 나오고 있는지, 외국 빚은 얼마나 끌어들였고 그것은 또 어떻게 갚아나가고 있는지 따위도 세심하게 살펴야 합니다.

공단의 고속철도 수요 예측을 두고 많은 이들이 뻥튀기로 잘못됐다고 하는데, 과연 그런 지적이 맞는지도 살펴야 합니다.

지율이라는 가녀린 비구니 하나 때려잡으려고, 도롱뇽이 나오지도 않는 쌀쌀한 가을철에 천성산 한 번 다녀와서 말도 안 되는 이런 기사를 ‘기획’이랍시고 늘어놓기보다는 고속철도에 들어가는 비용과 고속철도로 창출되는 효과를 비교 대조하고 보탬인지 손해인지 가늠해 보는 것이 훨씬 더 보람이 있습니다.

이번에 함께 쓴 임현욱이라는 기자의 인터뷰 기사를 보면 지율 스님 말이 나옵니다. “경부고속철도는 전혀 수익성이 없어요. 터널을 수십 개 뚫었는데 수익성이 없는 게 문제예요. 외자를 빌려서 이자만 나가고 있잖아요. 철도 사용비 하고 이자만 수천억원이에요.”

그렇습니다. 지율 스님에게 정말 다시 일어서지 못할 정도로 타격을 입히고 싶다면 한국철도시설공단의 경부고속철도 사업을 취재해서 지율 스님의 이런 주장이 터무니없다는 결론만 끌어내면 됩니다. 그러나 임현욱이라는 기자가, 그리고 중앙일보라는 조직이 그런 일을 과연 할 수 있을까요? 저는 미심쩍습니다.

저는 1963년 8월 경남 창녕에서 났습니다. 함양과 창녕과 부산과 대구와 서울을 돌며 자랐고 1986년 경남 마산과 창원에 발 붙였습니다. 경남도민일보에는 1999년 들어왔습니다. 대학 다닐 때는 학생운동을 했고 졸업한 뒤에는 노동조합운동과 진보정당운동을 일삼아 했습니다. 2007년 1월부터 2008년 12월 9일까지 전국언론노동조합 경남도민일보지부 지부장을 했으며 2009년 1월 기자 직분으로 돌아왔습니다. 현재 시민사회부 부장 직무대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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