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제가 막 아빠가 됐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아이가 태어나기 훨씬 전부터 ‘좋은 아빠 되기’는 제 원대한 꿈이었습니다. 이건 마치 ‘좋은 대학 가서 좋은 직장에 취업해서 좋은 일꾼이 되어야지’라는 생각만큼이나 평범한 꿈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어떻게 좋은 아빠가 되는가’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란 질문만큼이나 어렵고 심오한 문제입니다. 때문에 전 영화에서 자녀 교육과 관련된 장면이 나오면, 힌트를 얻으려고 집중해서 보곤 했습니다.

▲ 영화 <흐르는 강물처럼>
가끔은 영화의 전체 내용 중 자녀 교육에 해당되는 부분만 기억나는 경우도 있는데, <흐르는 강물처럼>이 그랬습니다. 미국의 아름다운 자연을 배경으로 한, 이 걸작에서 제가 가장 먼저 떠올리는 부분은 브래드피트도, 릴 낚시도 아닌, 주인공의 아버지였던 목사가 자녀들에게 글쓰기 교육을 하는 모습입니다. (글을 써오게 한 뒤, 아버지는 글을 절반으로 줄여오라고 말합니다. 이 과정을 몇 번이나 반복하는 교육 방식이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전 본 <하얀 리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엄격한 목사의 교육방식이 눈에 가장 먼저 들어왔습니다.

<하얀 리본>에는 엄격한 기독교 가정이 나옵니다. 아버지는 아이들의 잘못을 회초리로 다스립니다. 인상적인 건 아버지는 아이들이 잘못한 순간, 체벌을 가하지 않습니다. 하루 지난 다음 날, 매를 듭니다. 자연히 아이들은 매를 맞기 전까지, 두려움에 하루 종일 벌벌 떨어야 합니다. 두려움은 아이들을 조금씩 위축시킵니다.

동시에 아버지는 아이들에게 순결을 상징하는 하얀 리본을 매줍니다. 하얀 리본은 아이들의 죄를 강조합니다. 일종의 보이지 않는 회초리인 셈이죠. 아이들이 하얀 리본을 매고 있는 동안, 자신이 저지른 죄를 계속 떠올릴 수밖에 없습니다. 끊임없는 죄책감은 아이들을 더욱 위축시키고요. 하얀 리본은 아버지의 또 다른 감시의 눈입니다. 아이들은 언제나 아버지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는 생각 속에 행동할 수밖에 없습니다. 때문에 하얀 리본은 회초리 못지않게 폭력적입니다.

Ⅱ.

얼마 전 만난 친구는 심리상담 공부를 위해 대학원 진학을 앞두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친구는 자신이 심리 공부를 하면 할수록, 현재 자기 성격의 결함 대부분이 어렸을 적 부모에게 당한 체벌에서 비롯됐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했습니다. 물론 그가 상습적인 폭력에 시달린 건 절대 아니었습니다.(아주 좋은 부모님이십니다.) 그럼에도 친구는 자신의 트라우마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사건으로 ‘군대에서 당한 의가 제대’나 ‘대학시절 연인에게 잔인하게 차였던 사건’이 아닌, 어렸을 때 당한 체벌을 꼽았습니다.

두 딸을 키우던 한 선배도 큰 딸에 대한 미안함을 제게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다. 어렸을 적부터 좀 엄격하게 키운 편이었는데, 언젠가부터 아이가 외부의 규칙 및 시선을 지나치게 신경을 쓰는 것 같더랍니다. 한 번은 마트에서 주차를 하는데, 큰 딸이 몹시 불안정해하며 아빠를 채근했답니다. ‘아빠 때문에 뒤에 차들이 못 움직이잖아.’라며. 몹시 불안해하는 딸을 본 선배는 아이가 외부의 시선 때문에 몹시 작아지는 것 같아 가슴이 아팠다고 했습니다. 물론 그 선배도 아주 가끔 체벌을 했을 뿐이었죠.

▲ 영화 <하얀 리본>
<하얀 리본>의 아이들도 자신들을 짓누르는 아버지의 엄격함에 점점 작아져만 갔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은 성장합니다. 어른과 같은 자아가 형성됩니다. <하얀 리본> 속 아이들 역시 자아의 탄생을 경험합니다. 하지만 막 눈을 뜬 아이들의 자아는, 자신이 아버지의 규칙에 짓눌려 자유롭게 못 움직인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게 됩니다. 자아는 자유를 향한 갈망을 분출하고자 애썼습니다. 하지만 갈망은 아버지의 엄격함을 넘어서지 못했습니다.

이러한 아버지의 모습은 당시 영화 속 시대적 배경과도 오버랩 됩니다. <하얀 리본>의 배경은 1913년. 이미 이성이 전 유럽으로 확산되었던 때입니다. 그럼에도 독일의 작은 마을은 여전히 종교의 가르침이 지배하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끓어오르는 이성의 물결을 종교라는 뚜껑을 이용해 강제로 누르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인위적인 강제는 자연스러운 물결의 힘을 당해내지 못합니다. 이성의 시대를 누르던 종교의 가르침만큼이나, 성장하는 아이들의 본성을 억누르던 아버지의 엄격함도 서서히 한계에 도달하게 됩니다. 결국 자연스러운 분출과, 인위적인 차단은 충돌합니다. 충돌은 상처와 후유증을 가져옵니다. 영화 속 아버지의 억압은 결국 아이들의 자아를 왜곡시켰습니다. 아이들은 여전히 아버지 앞에서는 복종하는 체 했습니다. 하지만 억눌린 자아는 아버지가 없을 때, 폭력적인 모습을 드러냅니다.

Ⅲ.

또 다른 친구는 식당에서 멋대로 떠드는 아이들만 보면 얼굴을 몹시 찌푸렸습니다. 얘들을 저렇게 키우니까 요즘 얘들이 싸가지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실제로 요즘 아이들을 보면 통제 받지 않은 욕망의 순수한 발현 같은 느낌을 받습니다. 억제라는 걸 알지 못합니다. 프로이트의 이론을 빌리자면, 이들에게는 사회적 규칙을 받아들이는 ‘슈퍼에고’가 완전히 퇴화해버린 것 같다고나 할까요. 브레이크 없는 욕망의 발현에겐 어느 정도 억제가 필요해 보이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 과정에서 어느 정도의 폭력이 필요하다면, 최소한의 체벌도 가능하다고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하얀 리본>에서 알 수 있듯, 욕망의 발현(아이들)은 포경수술 뒤 수줍은 모습을 드러낸 귀두만큼이나 예민한 존재입니다. 공기 중의 작은 바람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는데, 하물며 세균이 가득한 손으로 꽉 짓누르면 얼마나 큰 부작용이 발생하겠습니까. 그들에게 1의 작용을 가하면, 100의 반작용이 나타납니다. 물론 나머지 99는 예측 불가능한 영역에 속합니다. 아이에게 가하는 체벌은 아이의 성격 형성에 어떤 작용을 미칠까요. 도저히 알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아이들을 무작정 ‘렛잇비’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바로 여기에 교육의 어려움이 숨어있습니다.

다시 <하얀 리본>을 살펴보죠. 아버지의 억압에 눌려있던 아이들은 폭력적인 반작용을 보여줍니다. 큰 딸은 아버지가 키우던 새를 가위로 잔혹하게 죽입니다. 아버지는 충격과 상심에 빠지고 말죠. 그 때 막내(정확히 막내는 아니었고 ‘대략 6째’ 쯤 되겠다)가 아버지를 찾아와 자신이 키우던 새를 건넵니다. ‘아버지가 지금 몹시 슬프잖아요. 그래서 제 새를 드리는 거예요.’ 엄격한 아버지도 ‘대략 6째’ 아들의 행동에 큰 감동을 받습니다. 아이는 욕망의 발현이기도 하지만, 때 묻지 않은 순수의 상징이기도 합니다. 때문에 남의 아픔을 자신의 아픔으로 느끼고 행동합니다.

결국 진정한 교육이란 ‘아이들의 무절제한 욕망은 억제하고, 아이들의 순수를 키워주는 것이다’라고 말이야 쉽게 할 수 있겠지만, 실제로 아이들의 욕망과 순수는 어지럽게 뒤엉켜 있습니다. 여전히 좋은 아빠 되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대략 6째 아이가 보여줬던 동정의 마음에서 아이 교육의 단서를 찾을 수 있다는 사실은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Ⅳ.

▲ 정의란 무엇인가 마이클 샌델(Michael J. Sandel) 저 김영사
감명 깊게 읽은 책 <정의란 무엇인가>의 핵심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개인의 자유로운 권리는 최대한 보장하되, 단순히 권리 분배에만 매몰되지 말고, 어떻게 사는 삶이 좋은 삶인지 고민해야 한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중, <정의란 무엇인가>가 다루는 영역은 ‘치국(治國)’에 해당되는 부분입니다. 그럼 <정의란 무엇인가>가 제시한 답안에서 ‘제가(齊家)’(아이 교육은 제가에 해당 되겠죠.)의 답을 끄집어 올 수 있을 것 같네요. 그렇다면 진정한 교육은 ‘아이들의 자유로운 성향은 최대한 보장하되, 단순히 자유 보장에만 매몰되지 말고, 아이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원칙을 고민해야 하는 것' 이다. 라고 말이야 쉽게 내뱉을 수 있겠지만, 역시나 실전 적용까진 길이 멀어 보입니다.

연애의 이론에 관해선 척척박사인 사람들이, 실전에선 허벌 나게 차이는 경우가 왕왕 있습니다. 연애란 것이 탁상공론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겠죠. 아이 교육도 마찬가지일 것 같습니다.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하나 고민만 하기 전에, 직접 아이들을 키우며, ‘좋은 아빠는 어떻게 되는가’란 답을 하나씩 찾아가야 할 것입니다. 좋은 아빠가 되는 법이 미치도록 궁금하지만 어떻게 아이를 키워야 하는지는 아무도 얘기해 주지 못합니다. 아니, 어쩌면 제가, 답이 없는 질문의 답을 구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네요.

책, 영화, 여행을 통해 다양한 지식과 경험을 추구하는 부지런한 블로거, ‘알스카토’입니다. (http://blog.naver.com/haine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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