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우는 저널리스트들 (로베르 메나르 2006)
전 세계 각국의 언론 자유 신장과 언론인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 설립된 국제 언론인단체 ‘국경없는기자회’(RSF, Reporters sans frontières)는 해마다 몇 가지 중요한 통계와 보고서를 발표한다. 우리 입장에서 특히 주목을 요하는 것은 ‘인터넷 검열에 관한 연례보고서’와 ‘세계언론자유지수’다. 지난해 10월 국경없는기자회가 발표한 세계언론자유지수에서 한국은 69위로 한 해 전보다 순위가 무려 22단계나 곤두박질쳤다. 이미 알려진 대로 ▲MBC <PD수첩> 제작진 구속 ▲미네르바 등 누리꾼 구속 ▲노종면 YTN 노조위원장 해고 등이 그 이유였다. 비판 언론에 재갈을 물리기 위한 정부의 조직적 언론 탄압이 국제적인 비판에 직면한 것이다. 국경없는기자회가 지난 3월 발표한 인터넷 검열에 관한 연례보고서에서 한국은 ‘인터넷 감시 대상국가’로 분류되는 불명예를 또 다시 뒤집어썼다. 한국이 엄격한 법규로 인터넷 사용자들의 익명성을 위협하고 자기 검열을 부추기는 등 지나치게 심한 통제를 가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국제적인 명성의 언론인단체가 내놓은 이 뼈아픈 통계는 이 나라 언론자유가 처한 현실을 가늠하게 해주는 중요한 척도였지만, 이 땅의 주류 언론은 예의 침묵으로 일관했다.

구태여 남의 통계나 조사 보고서를 들먹일 것도 없다. 새 정부가 출범한 이후 언론계에서 벌어진 낙하산 사장 반대 투쟁과 언론법 개정 저지 투쟁 등으로 크고작은 징계를 받은 언론인이 180명에 이른다는 전국언론노동조합의 조사 결과가 나온 것이다. 여기에는 1980년 언론통폐합 이후 최대치라는 꼬리표까지 붙었다. 이 정부가 유독 방송에 공(?)을 들인 탓에 징계를 당한 언론인은 모두 MBC와 YTN, KBS, SBS 등 방송사 소속이다. 특보 출신 사장 반대 투쟁에 가담했다는 이유로 인사기록에 자그마한 징계 딱지를 얻은 나와 동료들에게도 어김없이 사측으로부터 징계 통보서라는 것이 날아들었는데, 그 사유가 참으로 믿기 힘들었다. 하나는 공영방송 기자로서 품위 유지 의무를 지키도록 한 사규를 위반했다는 것, 다른 하나는 출입이 엄격하게 통제된 방송 시설에 무단으로 침입했다는 것이었다. 징계 사유는 대부분 비슷하다. 사규를 어긴 업무방해, 근무 질서 문란 따위가 그것이다. 사회의 불의와 부조리에 맞서 의로운 싸움을 벌여야 할 언론인들은 언제부터인가 자신의 소속 언론사를 상대로 싸우고 있다. 나아가 그 언론사를 지배하려는-실효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정부와도 맞서 싸움을 해야 한다. 국정감사에서 한국의 언론자유지수 하락이 도마에 올랐을 때, 방송통신위원장은 이렇게 답변했다. “(언론자유지수 개선 대책 마련에 있어) 조금 미흡했던 부분이 있는 것 같다.”

우리에게 ‘진정한 의미의 언론 자유’가 있는가? 지금으로부터 25년 전 국경없는기자회가 탄생하게 된 출발점도 아마 이런 의문이었을 게다. 그 이름에 걸맞게 국경을 불문하고 전 세계 각국에서 정신적, 육체적으로 탄압받는 수많은 언론인을 구명하기 위한 구체적 행동에 나서고 있는 국경없는기자회는 YTN 사태 때 한국에 실사단을 보냄으로써 국내에서도 비로소 그 존재감을 과시했다. 한국에는 해마다 세계 언론자유 순위를 발표하는 것으로만 단편적으로 알려져 온 국경없는기자회의 태동과 활동상을 소개한 이 책은 이 조직의 정신적 지주격인 로베르 메나르의 회고록 성격도 띠고 있다. 어느 대목에서는 자기 자신의 주장을 지나치게 합리화하거나 정당화하는 저자의 태도가 다소 비위에 거슬리는 면도 없지 않지만, 그래도 저자는 아슬아슬한 비난의 복도를 제법 요령껏 통과하면서 지금은 세계적인 언론인 조직의 하나로 발전한 국경없는기자회를 때로는 격앙된 어조로, 때로는 냉철한 목소리로 말하고 있다. 동시에 한 조직을 이끌어가는 주도적 인물이 필연적으로 겪게 되는 한계를 비교적 솔직담백하게 토로하고 있는 점은 저자의 거칠면서도 인간적인 면을 엿보게 한다.

이 단체가 처음 꾸려진 지난 1985년부터 비교적 최근에 이르기까지 활약상과 성장통을 속속들이 풀어낸 이 책을 읽다보면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한국의 언론 상황은 차라리 과분하고 감사하게 느껴졌을 법하다. 오히려 책의 어느 대목이 지적하듯 “오늘날의 신문 구독자나 텔레비전 시청자는 기자들이 정치권력이나 자본권력으로부터 독립된 깨끗한 존재라고 전혀 믿지 않고 있다!”는 것이 실은 오늘날 언론이 처한 위기의 진짜 본질이다. 언론 자유를 정치가나 자본가와 거래할 아무런 권리도 없는 언론 스스로가 자신이 누려야 할 마땅한 자유를 먼저 포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시아와 아프리카와 중남미의 어느 나라와 견주어 봐도 형식과 내용 면에서 월등한 언론 자유를 누리고 있는 우리의 처지를 ‘상대적 우위’라는 미명 아래 정당화하고 자화자찬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언론 자유는 그것을 탄압한 결과로 드러나는 결과와 양상을 넘어 엄밀하게 향유돼야 할 원칙과 대의 차원에서 논의돼야 할 문제이기 때문이다. “나는 당신의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하지만 당신이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는 권리를 위해 싸울 것이다.” 위대한 사상가 볼테르의 이 말은 촘스키에게 그대로 계승되어 포리송 사건에 관한 저 유명한 변론이 탄생하는 밑거름이 됐다. 권력자들의 불관용에 맞서 싸운 이들의 이 고결한 신념이 곧 국경없는기자회의 이념이자 철학이라는 저자의 말에서 언론의 자유가 결코 양보할 수 없는 굳건한 원칙임을 생각하게 된다.

세계은행이 전 세계 경제학자와 사회학자들의 분석과 연구를 정리한 <전할 권리>라는 제목의 보고서 내용을 소개한 대목은 특별히 주목에 값한다. 이 보고서는 명쾌하게도 ‘권력으로부터 독립한 언론’의 존재가 사람들이 조심스럽게 ‘개발도상국’으로 지칭하는 나라의 경제적, 사회적 발전에 필수불가결한 조건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 다시 말해 한 국가가 ‘좋은 지배’를 촉진하려면 권력 남용이나 독직, 매수사건 등을 고발할 수 있는 ‘반권력’의 존재가 무엇보다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존재가 가장 절실한 반권력은 두말할 것도 없이 ‘독립적인 언론’이다. 세계은행이 낸 것이라고는 좀처럼 믿기 않는 이 보고서의 결론은 다음과 같다. “세계은행은 독립 언론이 존재하지 않거나 전문적인 기자 양성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지역에 자신들이 개발 프로젝트를 위해 사용하는 융자를 다른 국제기관과 함께 지원해야 한다.” 이 논리는 국경없는기자회가 채택하고 있는 이른바 ‘상대주의적 접근’과 일맥상통한다. 언론 자유가 더 없는 나라를 우선 지원하고 배려한다는 그런 상대주의적 접근이 민주주의와 언론 자유가 확실하게 존재한다는 한국에도 적용될 줄 누가 상상이나 할 수 있었겠나. 언론 자유를 쟁취하기 위한 국경없는기자회의 간단없는 모험은 새 정부가 들어서고 불과 몇 년 새 돌이킬 수 없이 과거로 퇴행해버린 한국 언론의 실상을 되돌아보게 한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