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청난 자신감. 국내최초 초능력 버라이어티라고 자평하기는 했지만 무한도전의 이번 텔레파시 특집의 포인트는 멤버들 간의 정신적인 교류가 아닙니다. 서로를 향해 그 때 그 장소를 기억해달라며, 그곳에서 같이 만나자며 허공을 향해 용을 쓰지만 그런 지나친 낙관과 바람이, 텔레파시의 실체를 밝혀내는 것이 내용의 중심은 아닌 것이죠. 만약 정말로 텔레파시가 존재하는지, 그런 교감이 실제로 가능한 것인지를 밝히고 싶었다면 김태호 PD는 전문가들을 동원해서 보다 진지하게 다가갔을 겁니다. 물론 장난기 가득한 무도 정신을 여기저기 끼워 놓으면서 말이죠.

그렇다고 김태호 PD가 프로그램 초반 화두로 던져놓은 것처럼 멤버들이 서로 얼마나 잘 통하는지를 알아보기 위한 테스트인 것만도 아닙니다. 분명 혼자만 남아 있을 때 체감하는 서로에 대한 소중함과 절실함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도 있었겠지만, 이미 여러 차례에 걸쳐 각자 개인별로 흩어져 쫒고 쫒기는 각개 전투식의 특집을 진행했던 무도에게 유독 이번 텔레파시 특집만 그렇게 멤버들을 향한 애틋한 감정을 품게 하는 것은 무리가 있죠. 따로 또 같이 라는 모토가 무한도전만큼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리얼 버라이어티는 없으니까요.

게다가 설혹 그들이 한 자리에 운명처럼 모여서 멤버들이 서로 진짜 절친이라는 것, 서로간의 마음이 정말로 텔레파시가 통하는 것처럼 잘 통한다는 것이 증명된다고 그것이 시청자들에게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그냥 자기들끼리 친하구나, 정말 그런가보다 외의 어떤 특별한 의미를 주기 힘듭니다. 리얼 버라이어티에서 중요한 것은 출연자들끼리의 끈끈한 정과 팀워크를 자랑하는 것 이상으로 그것으로 인해 발생하는 무언가를 시청자들과 함께 공유하며 나누는 것이니까요.

그러니 무한도전이 이번 특집을 통해 하고 싶었던 것은 텔레파시의 존재 여부가 아닌, 멤버들의 친분 자랑보다도 그동안 그들이 시청자들과 함께 쌓아온 시간, 추억에 관한 되새김질입니다. 6년여의 시간동안 만들어온 수많은 특집들을 장소를 통해 떠올리고 그 순간을 기억하느냐며 시청자들에게도 넌지시 질문을 던지는 것이죠. 때깔 좋은 화면, 따스한 배경음악, 그리고 재치 넘치고 때로는 따스하고 의미심장한 자막과 함께 추억에 젖어드는, 무한도전 식의 가을 특집이었던 셈이에요.

그렇다고 단순히 이번 방송이 과거에만 머물러 있던 것도 아닙니다. 각 멤버가 가장 인상 깊었던 장소를 떠올리는 방식으로 또 한 번 각각의 캐릭터를 부각시켜 주었으니까요. 그 긴 시간이 흘렀건만 여전히 황소와 씨름하던 첫1회의 열악하고 초라했던 그 때의 고생했던 기억을 가장 먼저 떠올리는 1인자 유재석의 초심, 자기가 피 흘리며 분투했던 한강으로 향한 분량 욕심쟁이 박명수는 이 두 콤비의 절묘한 대비, 그리고 1인자와 1.5인자가 가지는 애착과 책임감의 차이를 보여줍니다.

자기의 감상보다는 다른 멤버가 어디로 향할지를 고민하는 정형돈의 한발 물러섬. 과거보다는 지금 멤버들과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에 집중하는 노홍철의 열정. 반전의 화려함을 안겨준 장충체육관으로 발을 옮긴 정준하와 하하의 절박함과 그 순간에 대한 감사함. 그리고 이리저리 갈피를 잡지 못하고 이리저리 헤매는 길의 어수선함은 지금 무한도전 멤버들이 가지고 있는 성향과 개성을 확연하게 대비시켜 줍니다. 이들은 과거를 이야기하면서도 현재 자신들의 모습을 정확하게 보여주고 있어요.

그러니 대단한 자신감이라고 할 수 밖에요. 충분히 만족스럽고 즐거운, 따스했던 가을 산책이었지만 과연 무한도전을 꾸준히 애정을 가지고 지켜본 이들이 아니었어도 이런 공감과 즐거움을 누릴 수 있었을까요? 그 장소가 가지는 의미를, 그 순간의 감동을 공유하며 즐길 수 있었을까요? 분명 재미는 있었겠지만 그 감동과 이해의 깊이는 무한도전을 얼마나 꾸준히 애정을 가지고 지켜봤는지에 따라 전혀 달랐을 겁니다. 김태호 PD는 이번 특집을 통해 무도의 시청자들이 얼마나 충실한 애정과 동질감을 가지고 무한도전을 보고 있는지를 테스트하는 것처럼 보이더군요. 이전 어떤 프로그램도 이렇게 자신만만하게 자기 프로그램에 대한 시청자들의 사랑을 자랑한 적이 없었을 거예요. 6년의 시간이 단순히 그들만의 것이 아니었음을, 무한도전은 멤버들만큼이나 시청자들과 함께 만든 것이었음을 말하는 시간이었죠. 이 프로그램은 이렇게 점점 더 그 깊이를 더해가고 있습니다. 많은 이들이 함께 공유하기 점점 더 어려워지는 것이 안타깝기는 하지만, 어쩌면 이런 고집과 개성을 가진 방향이야말로 다른 이들이 따라할 수 없는 무한도전스러운 것인지도 모르겠네요.

'사람들의 마음, 시간과 공간을 공부하는 인문학도. 그런 사람이 운영하는 민심이 제일 직접적이고 빠르게 전달되는 장소인 TV속 세상을 말하는 공간, 그리고 그 안에서 또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확인하고 소통하는 통로' - '들까마귀의 통로' raven13.tistory.com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