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대물이 방영되고 난 후에 인터넷을 보니 대물 관련 기사가 올라왔더군요. 그런데 악평이었습니다. 대물 3회가 너무나 기대이하여서 시청자들이 실망하고 있다는 내용이었죠.

‘충분히 재밌었고, 대물 특유의 힘도 약해지지 않았는데 다른 사람들은 그렇게 느끼지 않았단 말인가?’ 의아해하며 시청자들의 실제 여론을 확인하기 위해 드라마 홈페이지에 가봤습니다. 하지만 동시 접속자가 너무 많다며 열리지가 않더군요.

조금 있으니 도망자 관련 기사가 올라오더군요. 이번엔 호평이었습니다. 도망자가 새로운 전기를 맞았다며 드라마가 흥미진진해졌다는 내용이었죠.

그 기사를 보고 ‘정말인가? 뭔가가 변했나?’하며 도망자를 찾아봤습니다. 하지만 웬걸, 달라진 게 없더군요. 비가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하다가 간간이 웃겨주는 그 전의 내용 그대로였습니다. 특별히 시청자의 정서를 고조시킬 만한 변화는 전혀 없었습니다.

오늘 시청률을 보니 더 분명해지는군요. 대물은 어제 자체 최고 시청률을 올렸고, 도망자는 15%대로 주저앉았습니다. 결국 어제의 기사는 날림 조작이었습니다.

이러니까 요즘 기자들이 욕을 먹는 겁니다. 얼마 전에 한 매체와 인터뷰를 했었는데, 거기서도 요즘에 왜 네티즌이 기자를 욕하냐고 묻더군요. 이렇게 근거 없는 기사를 남발하는데 욕을 안 먹는 게 이상하죠.

이게 특별한 사건이 아니라 항상 벌어지는 일입니다. 작품이 방영되자마자 순식간에 시청자들의 반응이 이렇다며 도저히 납득하기 힘든 내용의 기사들이 나오는 현상 말이죠.

이러니까 네티즌이 기자들을 불신하게 되고 그것은 공적인 시스템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집니다. 그에 반해 네티즌이 스스로 찾아낸 진실에 대한 열광은 커지죠.

그래서 네티즌 수사대는 더욱 열정적으로 활동하게 되고, 누군가 가려진 진실을 제시하는 듯한 네티즌이 나타나면 난리가 나게 됩니다. 미네르바 현상, 왓비컴즈 현상 등이 그것이죠.

결국 지금의 불신사회엔 공적인 시스템의 자멸도 한몫을 한 것입니다. 이런 것은 이른바 ‘언플’에 대한 냉소로도 이어집니다.

어떤 작품이나 연예인에 대한 호평 기사가 나오면 사람들이 그것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언론 플레이’라고 인식하며 ‘기자가 돈 먹었냐?’고 비웃는 일이 만연하는 것이죠.

이렇게 공적인 시스템에 대한 신뢰, 언론에 대한 신뢰가 무너진 사회는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평소에 언론 매체는 네티즌을 비난하기 바쁩니다. 온갖 의혹에 열광하는 네티즌의 집단문화를 비판하는 것이죠.

하지만 언론 자신이 바로 지금의 불신에 가득 찬 네티즌을 만든 당사자라는 자각을 해야 합니다. 언론이 진실을 파헤치고 부정불의를 고발하는 역할을 충실히 했다면, 진정성이 있는 보도만 했다면 우리 사회에 이렇게까지 불신이 만연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대물이 도망자를 완전히 누르고 앞서간 날 밤에 오히려 시청자가 대물을 비난하고 도망자를 호평했다는 기사가 나온 것은, 얼마나 이 시대 언론이 진실과 멀어졌나 하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줬습니다. 이러면 아무리 언론이 네티즌을 비판해도 불신 비난은 멈추지 않을 겁니다.

문화평론가, 블로그 http://ooljiana.tistory.com/를 운영하고 있다. 성룡과 퀸을 좋아했었고 영화감독을 잠시 꿈꿨었던 날라리다. 애국심이 과해서 가끔 불끈하다 욕을 바가지로 먹는 아픔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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