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의 그라나다, 알함브라 궁전으로 유명한 이곳에 유진우(현빈 분)가 온 이유는 관광 때문이 아니다. 간밤에 온 한 통의 전화, AR(Augmented Reality) 즉 증강현실 게임의 개발자라는 사람의 전화 한 통에 그는 바로 이곳 그라나다로 날아왔다. 그리고 그 AR 게임의 유입 도구가 된 렌즈와 인이어를 끼자, 관광지 그라나다가 달라진다.

광장에 우뚝 서있던, 검을 든 무사의 동상이 뛰어내린다. 그리고는 다짜고짜 진우를 향해 달려든다. 무방비 상태에서 진우는 당연히 일격을 당하고. 다음 순간 '치명적 상처를 입었다'는 문구와 함께 레벨 1의 첫 번째 게임에서 그는 로그아웃당하고 만다. 그렇게 시작된 게임, 그라나다의 한 광장을 배경으로, 거리의 맥줏집 화장실에서 찾은 녹슨 철검으로 진우의 도전이 지속된다.

매번 로그인할 때마다 진우의 전투 능력은 일취월장하지만 역시 버겁다. 동이 틀 무렵에야 겨우 무사에게 치명적 상처를 입혀 분수대에 나자빠뜨린 진우. 드디어 레벨 1의 단계를 도약한 그는 환호작약하지만 그를 바라보는 거리 카페 시민들에게 그는 그저 혼자 미쳐 날뛰는 제 정신이 아닌 듯한 모습. 이게 바로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 1회의 내용이다.

송재정 작가의 거침없는 도전

MBC <거침없이 하이킥>, MBC <크크섬의 비밀>

드라마가 구현할 수 있는 영역은 어디까지일까? 이것이 곧 작가 송재정의 화두인 듯하다. ‘MADE BY 송재정’의 드라마들은 곧 우리나라 드라마의 개척지가 되어왔다. 2006년에서 2007년 방영돼 지금까지 가장 많이 회자되는 순재네 집의 아웅다웅 기록기 <거침없이 하이킥>으로 그 이름을 알린 송재정 작가는 2008년 알 만한 사람들만 아는 문제작 <크크섬의 비밀>로 돌아왔다. 세상에 서해안 낙도에 떨어진 직장인 10명의 무인도 표류기라니! 미드 <로스트>에서 볼 수 있는 설정이 코믹 시트콤으로 등장한 것이다.

그렇게 '독보적 영역'을 개척했지만 대중적 호응을 얻는 데는 실패했던 송재정 작가는 역시나 알 만한 사람들은 '힐링'작이라 손꼽는 표민수 피디와의 <커피 하우스>를 경과하여, <인현왕후의 남자>를 통해 우리가 몸담고 있는 3차원의 세계를 주무르기 시작했다.

조선 숙종 때의 선비 김붕도는 장희빈에 밀려 폐위된 인현왕후의 복위에 힘쓰던 중 뜻밖에 '타임슬립'을 하며 2012년의 드라마 <신장희빈>에서 인현왕후 역을 맡은 최희진(유인나 분)과 조우하며 운명적인 사건과 사랑에 휩쓸리게 된다.

이처럼, 송재정의 드라마에서 남자는 휩쓸린다. 그가 머물던 세상에서 어떤 문제에 봉착하게 되면서 뜻하지 않은 '신비로운' 비과학적 동인에 따라 자신이 머물던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게 되는 것이다.

tvN 드라마 '나인 : 아홉 번의 시간여행', MBC 드라마 'W (더블유)'

안타깝게도 '표절'로 귀결된 <나인>에서 신비의 향 9개를 얻어 20년 전의 과거로 돌아간 박선우(이진욱 분)이 그러했고, 2016년 서울이라는 같은 공간인 듯하지만 사실은 웹툰은 배경으로 한 실재와 가상세계를 오가던 강철(이종석 분)이 그러하다(W 공간 이동의 시작은 웹툰 매니아였던 여주인공 오연주(한효주 분)이지만), 그리고 이제 그라나다라는 실제 공간을 배경으로 증강현실 게임 속으로 뛰어든 유진우 역시 마찬가지다.

그렇게 송재정 작가는 과거와 현재, 웹툰을 배경으로 한 가상세계와 현실, 그리고 이제 현실과 증강현실로 드라마의 소재적 영역에 도전해왔다. 그러기에 현빈이 분한 유진우가 그라나다의 길거리에서 거리의 동상을 상대로 칼싸움을 하는 황당한 설정은 낯설지만, 송재정의 세계를 함께해왔던 시청자들에게는 그리 새로울 것도 낯설 것도 없는, 그저 송 작가의 또 다른 도전이 반가울 뿐이다.

하지만 송재정 작가의 도전이 그저 뜬금없는 것만은 아니다. 2012년 <인현왕후의 남자>가 방영될 당시 지상파인 SBS에서 같은 타임 슬립 소재의 <옥탑방 왕세자>가 방영되었듯 당시 '타임 슬립'은 드라마적으로 가장 트렌디한 소재였고, 안타까운 결론을 맺었지만 <나인>은 그 타임 슬립물에 있어서 최고봉으로 인정받았었다.

또한 '웹툰'을 배경으로 한 서울의 가상세계와 현실 세계를 오가는 <W> 역시 콘텐츠로서 '웹툰'의 활황에 힘입어 평소 드라마를 보지 않던 젊은 층조차 기꺼이 '닥본사'의 대열에 합류하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이제 내로라하는 배우들, 심지어 외국 유명 배우들까지 RPG 게임의 모델로 TV 광고의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는 '게임 전국시대'에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은 보는 이의 이물감을 쉬이 잦아들도록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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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격과 로코의 양수겸장

tvN 주말드라마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

거기에 더해 송재정 작가의 작품은 소재는 파격적이지만, 그 '파격'을 풀어가는 서사의 구비구비엔 '전형적인 로맨틱 코미디'의 양식을 담아낸다. 조선에서 온 선비지만 2012년 서울에서 킹카를 넘어 키다리 아저씨 같던 <인현왕후의 남자>가 그러했고, 죽음 앞에서 아버지와 형, 그리고 사랑하는 이를 위해 끊임없이 향을 피우던 <나인>이 그러했다. JN글로벌 공동 대표에 방송국 W를 소유한 사격 국가대표 출신의 웹툰 속 젊은 재벌 강철이라고 다를까. 만화 속 여주인공이 되어버린 사랑하는 이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 자신을 던진다.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도 다르지 않다. 드라마 속 주인공은 유진우라는 이름으로 등장하지만, 그 유진우로 등장한 현빈에게서 우리는 2010년 방영된 <시크릿 가든>의 김주원의 기시감을 갖게 된다. 아니나 다를까. 여주인공 정희주(박신혜 분)가 운영하는 보니끄 호스텔의 낡고 미비한 서비스에 울화통이 터진 유진우가 정희주를 향해 분노를 폭발할 때, 예의 김주원이 '타임슬립'을 한 듯하다. 그렇게 현빈이 가장 잘해내는 싸가지 재벌의 캐릭터로, 그러나 정희주의 동생이 게임 개발자인 것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180도 돌변하여 그녀의 '키다리 아저씨'가 되려는 설정은 익숙한 로코의 향기를 느끼게 한다. 거기에 게임 속 캐릭터로 등장한 정희주의 변모는 당연히 증강현실처럼 시청자들을 드라마 속으로 흡인시킨다.

tvN 주말드라마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

물론 그 익숙한 로코의 여정은 증강현실 게임 속을 헤매는 듯한 1년 뒤 유진우의 설정과 함께 '고난'의 여정이 될 것임을 예측케 한다. 거기에 그의 오랜 친우였다 이제는 전처의 남편이 되어 거침없이 그를 향해 칼을 뽑는 또 다른 유저이자 경쟁자인 차형석(박훈 분)의 존재는 '갈등'의 계기로서 흥미진진하다.

이제 2회를 마무리한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 과연 드라마 속으로 들어온 증강현실 게임을 제대로 구현해 냈는가 여부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하지만 현빈, 박신혜라는 스타 캐스팅을 차치하고서라도 '증강현실 게임'이라는 낯선 소재에도 불구하고 동시간대 1위(닐슨 코리아 케이블 기준)라는 성과는 그간 우리 시청자들의 새로운 소재에 대한 얼마나 갈증이 깊었는가를 보여주는 방증이 될 것이다. 거기에 송재정 작가는 이번에도 변함없이 답을 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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