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정치 뉴스를 보면 신기한 장면이 반복적으로 노출된다. 기자들이 하나같이 속기사들처럼 빠른 속도로 타자를 치는 모습이다. 청와대도, 국회도 같은 풍경이다. 심심찮게 등장하는 백악관의 브리핑 현장과는 상당한 거리감이 존재한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질문은 없고, 받아쓰기만 한다고 할 수 있다. 기자란 받아쓰기가 아니라 질문하는 직업이다. “기자가 질문을 못하게 하면 나라가 망한다”는 명언을 언론 스스로 부정하고 있는 셈이다. 질문 대신 받아쓰기 기능으로 변질되고 퇴보한 한국 언론, 무엇인 문제인가.

물론 기자들이 법원이나 검찰청 그리고 국회 등지에서 질문을 던지는 모습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 질문들은 대체로 대답하지 않을 것들이고, 설혹 대답을 하더라도 다시 질문하지 않고 일차의 대답으로 끝내는 단편적인 모습일 뿐이다.

KBS 1TV <저널리즘 토크쇼 J>

KBS <저널리즘 토크쇼 J>가 마음먹고 한국 언론의 받아쓰기 행태를 꼬집었다. 2일 방영된 <저널리즘 토크쇼 J>의 주제를 정리하자면 ‘막말 정치인과 받아쓰기 언론의 공생관계 비판’ 정도가 될 것이다. 이날은 외국 기자가 아닌 한국 현역인 변상욱 CBS 대기자가 출연해 중량감을 충족시켰다.

<저널리즘 토크쇼 J>는 먼저 최근 이슈가 됐던 두 정치인의 현황부터 전달했다. 바른미래당 이언주 의원과 자유한국당 강연재 법무특보. 공교롭게도 두 사람 모두 안철수 전 대표를 지지했던 국민의당 출신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어쨌든 언론이 인용한 이들의 막말은 “박정희는 천재적” “대통령 문재인을 파면한다” 등으로 정리된다.

이들 발언에 대한 패널들의 비판은 호되고 가차 없었다. 여러 가지 전문적 비판이 제기되었지만 아마도 당사자들에게 가장 뼈아픈 말은 “뉴스가치가 없는 말”이라는 규정이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조차도 패널들이 분석한 막말의 동기 혹은 목적에 부합하는 결과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정치인의 막말은 언론이 거들 때 대단한 정치 마케팅이 되기 때문이다.

언론으로서도 과거의 선문답식 발언보다, 자극적이고 즉각적인 반응을 불러일으키는 ‘막말’이야말로 24시간 기사 생산의 시대에 더없이 좋은 먹잇감이다. 발언자들의 정치적 영향력에 비해서는 언론노출이 과다할 정도로 많이 보도되는 현상은 그야말로 기사를 위한 기사를 생산하는 행태라고 규정했다. 뉴스 가치도 없고, 정치적 전문성도 부실한 발언들이지만 자극적 단어들을 채용함으로써 독자들의 시선을 끌고자 한다는 것이다.

KBS 1TV <저널리즘 토크쇼 J>

이런 막말 발언들은 일차적으로 논란을 자극하고, 이후 누군가 비판하거나 혹은 발언자 자신의 사과로 또 기사가 이어지게 되고, 반론하는 경우라도 역시나 언론으로서는 기사 생산의 재생산 기회가 될 뿐이라는 것이다. 정치 기사가 전문적 영역을 잃고 찌라시 수준으로 떨어졌음을 의미한다. 눈길을 끌기 위한 정치인과 언론의 장삿속일 뿐이다.

기레기 논란에서 여전히 한 발짝도 벗어나지 못한 한국 언론에 대해서, 요즘은 잦아들었지만 알파고가 이슈였을 때에는 차라리 로봇에게 기자를 시켜도 이보다는 낫겠다는 냉소가 유행처럼 번지기도 했다. 정치인들의 막말을 따옴표를 옮겨다 서술어와 형식적 비판을 곁들여 생산하는 기사는 매우 편리하고 쉬운 방식이다. 그러나 그러라고 언론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언론에게 주어진 감시와 견제 기능은 질문과 비판이 정상적으로 작동할 때 가능한 것이다. 받아쓰기는 그 어떤 것도 할 수 없는 무비판의 중계일 따름이다.

예컨대 최근 민주당 이재정 대변인이 청와대 기강문제를 들어 사과 논평을 냈다. 여당이니 그럴 수도 있겠지만 정작 현재 민주당의 최대 이슈이자 위기의 시한폭탄인 이재명 경기도지사에 대해서는 먼저 사과도, 논평도 하지 않는 현상에 대해 질문을 해야 언론이라 할 수 있다. 정치행위에 대해 의문을 갖지 않으니 문제에 대한 비판의식도 생길 수 없는 것이다.

KBS 1TV <저널리즘 토크쇼 J>

다른 어느 때보다 <저널리즘 토크쇼 J>의 언론 비판은 혹독했다. 문제는 한국 언론이 <저널리즘 토크쇼 J>의 비판에 전혀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심지어 KBS조차 <저널리즘 토크쇼 J>이 제시하는 정론에 어긋나는 일이 없지 않다. 그것은 독자와 시청자가 항의하지 않기 때문이다. <저널리즘 토크쇼 J>이 주제마다 따로 말하지 않지만 언론비판의 결론은 클로징에 담겨 있다.

고 김대중 대통령이 “집회에 나가고 하면 힘이 커진다. 작게는 인터넷에 글을 올리면 된다. 하려고 하면 너무 많다. 하다못해 담벼락을 쳐다보고 욕을 할 수도 있다”라고 한 말이 여전히 필요한 이유다. <저널리즘 토크쇼 J>이 매주 클로징 멘트로 하고 있는 “언론의 관행은 여러분이 바꿀 수 있습니다”도 그 뜻이다. 저항하라는 것이다. 현실과 정치를 왜곡하는 언론에 항의하라는 것이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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