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일럿으로 큰 호평을 얻은 KBS <거리의 만찬>이 돌아왔다. 실은 벌써 두 번째 이야기까지 풀어놓았다. 어디선가 들은 것 같으면서도 생소한, 아니 애써 외면했던 우리 사회의 아픈 이야기들이었다. 파일럿에 출연했던 정의당 대표 이정미 의원 대신 MBC 출신 김소영 아나운서가 합류해 새로운 진용을 갖췄다.

소위 지상파 방송사의 ‘정상화’ 이후 각 방송사들이 주력한 것은 시사 프로그램이었다. 그러나 풍요 속의 빈곤이랄까, 돌아온 시사 프로그램들은 예전만 하지 못하다는 평이다. <거리의 만찬>은 시사와 교양의 하이브리드 프로그램이라 할 수 있다. 주제들은 하나같이 시사성이 매우 짙은 그러나 정작 시사 프로그램에서도 꺼려하는 것들이다. <거리의 만찬>은 그런 사람들과 그런 이야기들을 따뜻하게 전달하는 것이 장점이자 전부이다. 시사 프로그램의 무뚝뚝함 대신 여성의 섬세함과 다감함으로 시사를 녹여내는 것이다.

KBS 교양프로그램 <거리의 만찬> ‘아주 보통의 학교’ 편

당연히 소위 전문가들을 모셔다가 장황한 이야기들을 듣는 식상한 모습은 <거리의 만찬>에는 없다. <거리의 만찬>은 철저하게 당사자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아니 당사자들이 용기 있게 나와 카메라에 서는 모습을 보여 준다. 그렇다보니 자연 자주 눈시울을 적시게 한다. 분명 <거리의 만찬> 제작진들도 숱하게 울면서, 겨우 참으면서 이 프로그램을 만들고 있을 것이다.

<거리의 만찬>이 돌아와 꺼낸 이야기들이 묘하게도 전혀 다르면서도 이어진다. 첫 번째는 엄마들의 이야기였고, 두 번째는 엄마 되기를 포기해야 했던 사연이었다. 돌아온 <거리의 만찬>은 특수학교를 다룬 ‘아주 보통의 학교’와 형법상 범죄인 낙태죄에 대한 여성의 목소리를 담은 ‘천 개의 낙태’ 이야기를 전했다.

KBS 교양프로그램 <거리의 만찬> ‘천 개의 낙태’ 편

둘 다 어려운 주제였다. 또 여성의 문제였다. 때로 슬프고 더 자주 분노하게 되고, 결국엔 자신의 무관심과 편견 그리고 이기심을 반성케 하는 내용들이었다. 방송 한 편으로 달라질 수 있다면 그런 문제들이 벌써 사라졌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될 때까지, 조금씩 좋아질 수 있다는 희망으로 써내려간 이야기들이었다.

우리나라는 고도성장의 후유증을 깊이 앓고 있다. OECD 상위국가이고, 교역량으로도 손가락에 꼽을 정도이다. 그러나 성장의 높이만큼 그늘도 넓고 짙다. 빠르게 달려가느라 돌아보지 못했던 많은 문제들이 곳곳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 그중에서도 어쩌면 가장 심각하고, 가장 늦게 정상이 될 것이 여성문제일지 모른다. <거리의 만찬>은 사회 문제에 대해 방송이 참 늦장을 부린 경우이다. 그래서 칭찬만 할 수도 없지만 그래도 생겨서 다행이다.

워낙 파일럿의 좋은 인상이 컸고, 정규 프로그램으로 돌아와서도 내용이 좋아 금요일 늦은 밤에 방영됨에도 불구하고 시청률도 좋다. 첫 회를 4.4%로 시작해서 2회에는 그보다 많이 오른 5.2%의 시청률을 기록했다. 이런 정도면 웬만한 예능 프로그램보다 높으며, 미니시리즈 드라마들과 견주어도 뒤지지 않는다.

KBS 교양프로그램 <거리의 만찬> ‘천 개의 낙태’ 편

<거리의 만찬>이 조용히, 그러나 든든한 시청률을 기록하는 이유는 당연히 잘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보다 어쩌면 더 중요한 이유는 <거리의 만찬>에 기꺼이 동석하는 시청자가 많은 덕분이라고 할 수 있다. KBS의 다른 시사 프로그램 <저널리즘 토크쇼 J>의 정세진 아나운서가 매주 방송을 끝맺을 때 하는 말 “언론의 관행은 시청자가 바꿀 수 있다”의 실천이라고 하고 싶다.

아직 두 번밖에 방송을 하지 않았지만 돌아온 <거리의 만찬>에 대한 만족과 기대는 파일럿보다 더 커졌다. 이런 방송을 계속 볼 수 있다면 수신료 정도는 아깝지 않다. 아니 두 번도 내도 좋을 정도다. <저널리즘 토크쇼 J>와 더불어 <거리의 만찬>이 쌍두마차가 되어 KBS의 변화를 이끌 것으로 보인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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