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전혁수 기자] 연동형 비례대표제로의 선거제도 개혁이 암초를 만났다. 그런데 이 암초가 바로 과거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당론으로 삼았던 더불어민주당이다. 이처럼 민주당이 선거제도 개혁 입장을 뒤집은 것이 결국 자신들의 기득권 유지를 위한 것이란 비판이 제기된다.

▲더불어민주당 지도부. (연합뉴스)

민주당이 바른미래당, 민주평화당, 정의당 등이 주장하는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에 찬성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명확히 했다. 23일 이해찬 민주당 대표는 기자간담회에서 "소수당의 정당 득표율이 어느 정도 나와도 지역에선 낙선되기 때문에 비례성이 악화된다"며 "그걸 보정하는 방안으로 양보할 수 있다는 것이지 100% 비례대표로 몰아주겠다는 건 아니다"라고 잘라말했다.

지난 16일 이해찬 대표가 국회의장, 5당 대표 부부동반 만찬에서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입장을 나타내면서 민주당은 당론을 뒤집었다는 논란에 휩싸였다. 비판이 일자 민주당은 자신들은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주장했고,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주장한 적이 없다고 해명했다. 23일 이 대표의 발언도 같은 맥락이다.

그러나 유불리에 따라 말을 바꾼 것으로 드러났다. 권역별은 선거구의 단위를 따지는 것이고, 연동형은 지역구와 비례대표의 연동 여부를 따지는 것이다. 당초 민주당은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권역별로 실시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지난 2015년 20대 총선 선거구 획정 논의에서 해당 안을 주장한 바 있고, 지난 2017년 대선에서도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으로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주장했다. 2017년 9월 작성된 민주당 행정안전위원회의 문건에서도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문 대통령의 대선공약이며 문재인 정부의 국정과제, 민주당의 당론인 것으로 확인된다.(관련기사 ▶ 민주당, 선거제도 개혁 당론 오락가락)

▲더불어민주당 행정안전위원회 정치개혁과제 검토 문건. (자료=정치개혁공동행동 제공)

바른미래당, 민주평화당, 정의당 등 야 3당 대표·원내대표는 기자회견을 열어 "민주당의 무능과 무책임을 강력히 규탄한다"며 "문재인 대통령의 18대와 19대 두 번의 대선공약과 당론을 번복하는 발언들이 계속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3당 지도부는 "연동형 비례대표제 개혁은 민주당이 국민께 드린 약속이기도 하다"며 "더 이상 이 약속을 회피하지 말고 국민과의 약속을 지켜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러면서 문재인 대통령과 5당 대표의 담판회동을 요청하기도 했다.

26일 오전 MBC라디오 <심인보의 시선집중>에서 이정미 정의당 대표는 "이제까지 더불어민주당에서 선거제도 개혁의 핵심은 연동형 비례대표제"라며 "문재인 대통령께서도 이달 초에5당 대표가 다 만난 자리에서 가장 합리적인 안은 2015년 중앙선관위가 내놓은 연동형 비례대표제라고 확인을 한 바가 있다"고 강조했다.

민주당이 연동형 비례대표제에 대한 입장을 뒤집은 것은 결국 선거제도 개혁을 어렵게 해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한 것이란 분석이다. 현행 선거제도는 지역구와 비례대표를 연동하지 않는 병립형 비례대표제다. 253개의 지역구에서 당선자를 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따라서 1위 가능성이 높은 정당에 표가 몰리고, 결국 거대양당이 중심이 되는 정치구도가 형성된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정례 여론조사에서 정당지지도 1위를 놓친 적이 없는 민주당 입장에서 기득권을 유지하려면 선거제도를 바꾸지 않는 게 더 유리하다는 얘기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장은 "민주당은 현재 분위기 대로 2020년 총선을 치르면 무난하게 과반 이상의 의석을 확보할 수 있다는 인식이 광범위 하게 퍼져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엄 소장은 "연동형과 병립형을 섞는 등 협상안도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며 "이런 안은 협상이 어렵다. 안 자체도 현실성이 떨어진다. 사실상 현행 대로 선거를 치르자는 속내로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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