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_ 과거 텐아시아, 하이컷 등을 거친 이가온 TV평론가가 연재하는 TV평론 코너 <이주의 BEST & WORST>! 일주일 간 우리를 스쳐 간 수많은 TV 콘텐츠 중에서 숨길 수 없는 엄마미소를 짓게 했던 BEST 장면과 저절로 얼굴이 찌푸려지는 WORST 장면을 소개한다.

이 주의 Best: 김지석-전소민표 성공적인 로코물 <톱스타 유백이> (11월 23일 방송)

tvN 금요드라마 <톱스타 유백이>

MBC <최고의 사랑>에서 싸가지 없는 톱스타 독고진(차승원)을 보는 듯했다. tvN <톱스타 유백이>의 유백(김지석)을 본 첫인상이었다. 소속사 대표에게는 “개싸가지 또라이”라는 소리를 듣고, 자신을 사랑하는 팬들에게는 “팬들의 사랑을 구걸하는 거지가 아니”라는 망언을 했지만, 한 여자 앞에서는 자신도 모르게 사람 좋은 미소가 지어지는 남자. 독고진도 구애정(공효진)에게 그랬다. 처음엔 어디서 이런 여자가 왔나 싶었지만 점점 구애정의 높은 자존감에 반했듯이, 서울 톱스타 유백도 섬처녀 오강순(전소민)에게 그러했다.

<최고의 사랑>이 연예계에서 톱스타와 비호감 걸그룹 출신 연예인의 사랑을 보여줬다면, <톱스타 유백이>는 <삼시세끼> 같은 촬영이 아니었다면 단 한 번도 가보지 않았을 것 같은 외딴섬에 톱스타를 떨어뜨려놓고 시작한다, 텔레비전, 인터넷, 휴대폰이 전혀 되지 않는 섬 여즉도에서 온갖 돌발 상황과 순박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유백의 새로운 매력이 나오게끔 만드는 드라마다.

싸우다 정드는 커플의 정석을 보여준다. 오강순은 유백이 뒤로 나자빠질 정도로 강한 박치기를 했다. 자신에게 사과하라는 유백의 말에 오강순은 “그게 거시기한 건 거시기해요”라고 애매모호하게 사과했고, 유백은 “거시기 금지”라고 반격했다. 당사자들은 매우 진지하지만 보는 사람들은 웃긴 ‘거시기 전쟁’에서 오강순은 결국 “미안하다”고 사과했고, 그 소리를 들은 유백은 남몰래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그날 우연히 오강순의 아지트를 찾은 유백은 전영록을 좋아하고 태권브이를 수호신이라 믿는 오강순의 순수함에 빠져들게 된다.

tvN 금요드라마 <톱스타 유백이>

그래서 단 2회 만에 오강순을 바라보는 유백의 눈빛이 달라졌다. 그러나 앞으로의 러브라인을 위해 급하게 만든 억지스러운 전개는 전혀 아니었다. 오강순의 당당한 매력도 매력이지만, 여즉도 사람들의 따뜻한 마음도 유백의 변화에 한 몫 했다. 밥을 못 먹어서 쓰러진 유백을 위해 오강순의 할머니가 “내 음식이 입맛에 안 맞아서 그런가 싶다. 그래서 내 평생 처음으로 조미료를 써본다”며 몰래 구해 온 라면스프를 들켜 속상해하는 모습은 여즉도의 순박함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이에 감명 받은 유백은 처음으로 나긋해진 목소리로 “아무거나 해달라”고 대답했다. 근육 관리를 위해 나트륨이 많이 들어간 음식을 피했던 유백이 짠 반찬들을 거침없이 먹은 건 그만큼 여즉도의 사람들에게 마음의 문을 열었다는 증거다.

한시라도 빨리 나가고 싶어 배를 알아보며 매일 밤 불면증에 시달렸던 유백이 그곳에서 함께 밥을 먹고 기분 좋게 숙면까지 취했다. 밥상과 집 공유. 유백이 여즉도에서 마음의 문을 연 과정을 따뜻하게 잘 그려냈다.

<톱스타 유백이>가 앞으로 어떻게 흘러갈지는 모르겠지만, 분명한 건 김지석과 전소민 모두 이 드라마를 통해 새로운 캐릭터를 얻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 옷이 참 잘 맞는다는 사실도 함께.

이 주의 Worst: 막장드라마 닮아가는 <안녕하세요> (11월 19일 방송)

이쯤 되면 ‘가부장 남편’이라는 캐릭터 자체가 KBS <안녕하세요>의 고정 출연인가 싶기도 하다. 잊을 만하면 ‘가부장 남편 때문에 힘들다’는 아내가 출연한다. ‘가부장 남편’의 등급도 날이 갈수록 업그레이드된다. 마치 막장드라마가 진화하듯이.

지난해 4월, 매일 퇴근 후 고기와 술상 대령을 요구하는 남편 때문에 힘들다는 아내가 출연했다. 남편은 무조건 퇴근 후 아내가 구워주는 고기를 먹어야만 했다. 그것도 아내는 한 점도 먹지 못한 채 마치 식당 직원처럼 옆에서 고기 구워서 대접을 해야 하는 입장이었다.

KBS 예능프로그램 <안녕하세요>

지난 19일 방송된 <안녕하세요>에 출연한 가부장 남편은 더 심했다. ‘조선에서 온 남자’라는 키워드로 소개된 남편은 퇴근하고 집에 오면 바로 밥상이 차려져 있기를 원하는 남자였다. 아내는 3살, 4살 두 딸과 함께 초기 치매 시어머니 병수발까지 맡았지만 남편은 그런 상황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내가 오기 전에 밥 차려놓으라고 했지?”라고 요구한 남편에게 두 딸을 돌보느라 미처 차리지 못했다고 변명하면 “3분 안에 밥 차려놔”라고 더 무리한 요구를 하기 일쑤였다.

이영자가 사연을 읽을 때 처음 나온 남편의 막말이 바로 “내가 오면 밥을 먹을 수 있게 밥상 딱 차려놓으라고 했지?”였다. 처음부터 강한 대사였고, 이로 인해 방청객들의 야유 데시벨도 높게 출발했다. “여기 먼지 좀 봐. 네가 집에서 하는 게 뭐야? 냉장고 꼬락서니 좀 봐” 등 웬만한 시월드보다 더 심한 남편 잔소리가 이어졌다. 새벽에 출근길 배웅부터 퇴근길 밥상, 매일 발 주물러주기, 야식 차리기 등 하루 종일 이어지는 아내의 고생에 대해 고마워하지 않고 “당연히 해야 될 일”이라고 했다. 심지어 “너도 한 번 눈물 쏙 빠지게 당해보라”며 일부러 트집 잡은 적도 있다는 걸 인정했다.

“집안일은 아내의 몫이고 바깥일은 남편의 몫”이라는 말은 역대 가부장 남편의 단골 레퍼토리라서 이제는 충격적이지도 않았다. 문제는 사연을 소개한 지 10분도 되지 않았는데 남편의 막말 퍼레이드가 쉬지 않고 쏟아졌다는 점이었다. 마치 남편의 무개념 막말을 전시해놓는 느낌이 강했다.

KBS 예능프로그램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제작진은 ‘가부장 남편’이라는 카테고리에 속한 사연들을 점점 막장 드라마처럼 소비하고 있다. 고민을 공감하고 해결의 실마리를 찾는 목적이라기보다는, 어떤 남편이 더 가부장적이고 더 꽉 막힌 사고방식을 가졌는지 겨루는 서바이벌 프로그램 같다.

제작진이 ‘가부장적인 남편’ 사연을 선호하는 이유를 예측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가해자 남편과 피해자 아내라는 선악 구도가 분명하고, 뉴스 헤드라인으로 나올 법한 자극적인 무개념 발언들이 쏟아져 나오고, 그에 따라 방청객들의 야유와 시청자들의 댓글이 쏟아질 테고, 자연스럽게 어제의 프로그램은 화제가 될 것이다. 한 마디로 자극적인 화제성을 위한 효자 아이템인 것이다. 이날 ‘가부장 남편’ 사연도 방송 시간 70분 중 30분, 즉 절반 가까이를 할애했다. 그만큼 이 사연이 주목받는다는 걸 예상했다는 뜻이다.

MC들도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가부장 남편이 아내에게 된장찌개를 딱 한 번 끓여준 것, 잔소리도 하지만 애정표현도 한다는 점. 이 두 부분 때문에 신동엽은 “(남편을) 욕하기 애매하다”며 웃었다. 과연 저 두 가지가 면죄부가 될 수 있을까. 게다가 가부장 남편이 애정표현을 해준다는 말에 MC들은 ‘가부장적인 스킨십은 어떤 것인지’에 대해 상황극을 했다. 거칠게 목을 끌어당겨 뽀뽀하는 시늉을 하는 등 ‘가부장적인 것=터프한 것=남자다운 것’이라는 잘못된 선입견을 고스란히 보여줬다. 그것도 ‘가부장 남편’ 때문에 힘들었다는 당사자 앞에서 말이다.

만약 <안녕하세요> 시청자가 제작진에 대한 고민을 보낸다면 이런 게 아닐까. 자극적인 사연에 중독된 제작진, 잘못된 선입견을 무의식적으로 보여주는 MC들이 고민이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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