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위터에 DM이 왔다. 이번 주 수요일(10월 6일) YTN 언론인이 해직된 지 2년을 맞아 간단한 일일 호프와 바자회를 진행한다는 메시지였다. 그 메시지를 보낸 이는 다름 아닌 YTN 해직 언론인 정유신 기자다.

그와 나는 대학 동기다. 그나 나나 대학생활을 참 호기롭게(?) 보냈다. 열심히 연애하고 열심히 놀았다. 몇 번 집회에 참석하기도 했지만 운동권과는 거리가 멀었다. 특히 정기자는 대학 방송반 아나운서이자 프로듀서였는데 학교 길을 오를 때면 스피커에서 흘러 나오는 그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꽤 미끄러운(?) 발음으로 팝을 소개하는 그의 목소리는 감미로웠고 부드러웠다.

그랬던 그가 YTN에 입사했다는 소식을 들었었고 얼마 지나 돌발영상을 제작하게 됐다는 소식도 들었다. 사실 그다지 자주 연락하지 못했기에 그런가 보다 했다. 그러던 중 YTN이 파업을 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별 일 없을 줄 알았지만 그렇지 않았다. 그리고 6명의 기자가 해직이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그의 이름이 그 안에 들어 있었다.

▲ 2008년 10월6일 YTN으로부터 해직 통보를 받은 노조원들(왼쪽부터 조승호, 우장균, 현덕수, 노종면, 권석재, 정유신) ⓒYTN노조
혼란스러웠다. 익숙하지 않았던 파업이라는 단어와 더욱 익숙하지 않았던 해직이라는 단어는 내게 낯설었다. 감미로운 목소리로 등굣길 팝을 소개하던 그의 목소리와도 어울리지 않았다. 아무리 고쳐 생각을 해 봐도 이상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왜 그가 해직이 되어야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군사 독재 시절도 아니고, 쿠데타로 획득한 정권도 아니었다. 더구나 낙하산 사장에 대한 반대가 새삼스러운 것도 아니었다. 사실 이제 그러한 문제로 노조가 반대를 하는 일은 더 이상 새로울 것도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 결과는 놀랍게도 해직이었다. 게다가 노조위원장 한명도 아니고 무려 6명이 일시에 해직되었다.

생각해 본다. 지금이 과거와 같은 권위주의 시대인가? 우리가 그러한 시대를 살고 있는 걸까? 낙하산 사장을 반대하면 6명의 직원을 해직시켜야만 하는가? 아직도 열사를 탄생시키고 그 열사가 손가락을 깨물어 혈서를 써야 하는 시대인가? 누가 옳고 그른지 이전에 그러한 모습 자체가, 열사를 만들어 내는 정권이나 그 열사의 역할을 하는 사람 모두를 촌스럽고 유치한 이들로 보이게 할 뿐은 아닐까?

다행히도 해직 후 봤던 정기자의 얼굴은 경직되어 있지 않았다. 정기자 만이 아니었다. 잠깐 인사 했던 노종면 위원장도 마찬가지였다. 결코 몸에 힘이 잔뜩 들어가 있는 모습이 아니었다. 물론 어렵고 힘든 점이 셀 수도 없이 많겠지만 그걸 표현하는 방법은 적어도 그들을 해직시켰던 이들처럼 우스꽝스러운 심각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해직 2년을 맞이하여 그들이 택한 것 역시 집회가 아닌 일일 호프가 아닌가?

그러고 보니 경직된 그들과 그렇지 않은 우리들은 같은 공간에 있으면서도 참 다른 시대를 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리고 그 사이를 세대 격차라고 치부하기엔 너무 넓고 깊은 골이 가로지르고 있기도 하다. 하여 그들에게 해 줄 조언이나 충고도 마땅치가 않다. 이미 유통기한이 한참 지난 권위주의 시대를 꼭 붙잡고 있는 그들에겐 그 시대를 벗어나는 것 자체가 삶의 터전을 벗어나는 것일 테니 말이다. 그러니 그저 그들을 위해 조용히 축배를 들 수밖엔. 구시대의 유물이 되어 사라져 가는 고통이 너무 크지 않길….

EBS <지식채널e> 전 담당 프로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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