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_ 과거 텐아시아, 하이컷 등을 거친 이가온 TV평론가가 연재하는 TV평론 코너 <이주의 BEST & WORST>! 일주일 간 우리를 스쳐 간 수많은 TV 콘텐츠 중에서 숨길 수 없는 엄마미소를 짓게 했던 BEST 장면과 저절로 얼굴이 찌푸려지는 WORST 장면을 소개한다.

이 주의 Best: 느리고 깊은 토크쇼의 마지막 <대화의 희열> (11월 10일 방송)

KBS 2TV 예능프로그램 <대화의 희열> 이국종 편

근래 본방을 가장 기다리게 만든 토크쇼 게스트가 아니었나 싶다. 톱스타도, 아이돌도 아닌 외과의사 이국종이다. KBS2 <대화의 희열>의 마지막 게스트는 바로 이국종이었다. 유희열이 “가장 모시기 힘든 게스트”라고 말할 정도로 제작진이 섭외에 공을 들였고, 미리 이국종 교수 출연을 알고 있던 시청자들은 이국종 교수가 나오기만을 기다렸다. 그러니까, 제작진도 진행자도 시청자도 모두 기다린 게스트였던 것이다.

대개 조용하고 아늑한 분위기의 카페에서 진행하던 <대화의 희열>은 이날 이국종 교수가 근무하는 경기남부 권역외상센터 옥상에서 녹화를 진행했다. 그것이 이국종 교수의 정체성을 드러내기 위한 의도였든 혹은 이국종 교수의 스케줄을 고려한 배려였든 상관없다. 그 어느 토크쇼 녹화장보다 팔딱 팔딱 살아있는 현장이었으니 말이다. 실제로 녹화가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코드 블루’ 상황이 닥쳐 급작스럽게 이국종 교수가 외상센터로 달려갔다가 다시 녹화장에 복귀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코드 블루’라는 실제 상황은 이국종 교수가 얼마나 치열하게 살고 있는지, 하루를 36시간으로 쓴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체감할 수 있었던 순간이었다. 제작진은 근황이나 외과의사가 된 계기 같은 상투적인 질문 없이, ‘코드 블루’ 상황만으로 오프닝을 완성했다. 외상센터 옥상에서 녹화를 진행한 덕분에 얻을 수 있었던 귀한 오프닝이었다.

KBS 2TV 예능프로그램 <대화의 희열> 이국종 편

녹화 내내 이국종 교수의 입을 통해 나오는 말들은 진행자들이 ‘도대체 왜?’라는 의문이 들 수밖에 없을 정도였다. 헬기 출동의 40%가 야간에 이루어지는 현실임에도 왜 우리나라 보건복지부는 닥터헬기 야간 출동을 제한하는지, 왜 의사들이 응급헬기 운용 시 비용 지원은커녕 어떤 부상에도 국가를 상대로 이의를 제기하지 않겠다는 각서를 쓰고 출동해야 하는지, 정책 결정권자의 사인 하나로 언제든지 권역외상센터가 문을 닫을 수 있는 현실이 실화인지. 말도 안 되는 상황을 덤덤하게 풀어내는, 강인함과 체념 사이에 있는 듯한 이국종 교수의 표정을, 제작진도 별다른 포장 없이 그대로 담아냈다.

결코 가볍지 않은 토크쇼였다. 뉴스에서도 비중 있게 다루지 못한 이슈들을 <대화의 희열>은 한 시간 남짓 토크쇼에 꾹꾹 눌러 담았다. 어쩌면 이국종 교수라는 한 인물을 통해 우리나라의 열악한 의료 현실, 답답한 정책 결정자들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독하게 앞으로 나아가는 현역 의사를 보여주고 싶었던 건 아니었을까. 지루한 다큐멘터리나 턱없이 짧은 뉴스의 손길이 미처 닿지 못한 부분까지 잘 다룬 마지막 회였다.

이 주의 Worst: 긴장감 1도 없는 <미추리> (11월 16일 방송)

SBS 예능프로그램 <미추리 8-1000>

SBS <미추리> 멤버들이 시골집에 들어서는 순간, 그리고 남녀 방을 소개하는 순간 직감했다. 이거 혹시 <패밀리가 떴다> 재방송은 아닐까. 그 직감은 틀리지 않았다. 본격적인 추리게임을 하기 전에 잠시 허기 달래기용인 줄 알았던 점심식사 준비가 이날 방송의 주된 분량이 되었다. 할머니 배추밭, 고구마밭, 낚시팀으로 나눠 각자 재료를 준비하고, 식사 준비에만 3시간을 할애한 어설픈 요리 실력은 <패밀리가 떴다>와 너무나 똑같았다.

<미추리>는 유재석, 양세형, 장도연, 손담비, 강기영, 김상호, 제니, 송강 등 8명의 출연자가 마을에 숨겨진 천만 원을 찾는 추리 예능이다. 그러나 이날 방송에서 출연자들이 힌트를 발견하거나 힌트 도구를 획득하는 장면은 얼마 되지 않았다. 대부분의 분량은 점심을 준비하고, 힌트 도구를 얻기 위한 게임을 하는 것이었다.

낚시팀에 합류했던 강기영은 낚시 도중 빨간 돌을 발견했다. 남몰래 자신의 힌트도구인 망치를 가져와서 돌을 깼지만, 이 모든 과정을 다른 멤버들이 지켜보고 있었다. 강기영이 혼자 빨간 돌의 정체를 확인할 때도, 망치로 빨간 돌을 깨고 엘리베이터 버튼을 발견했을 때도 전혀 긴장감이 느껴지지 않은 이유다. 강기영이 먼저 찾은 돌을 뺏기 위해 나머지 멤버들이 질주하는 모습은 마치 <런닝맨>의 변주처럼 느껴졌다.

SBS 예능프로그램 <미추리 8-1000>

강기영이 다른 멤버들에게 빨간 돌의 정체를 들킨 뒤 상황이 이미 종료됐는데, 제작진 혼자 진지하게 “본격적인 추리 전쟁이 시작된다”고 자막을 넣으며 긴장감을 유발했다. 이처럼 제작진은 끊임없이 시청자에게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할 것을 강요했다. 고구마 밭으로 가는 장도연과 김상호의 평화로운 발걸음에도 굳이 긴장감 감도는 음악을 깔고 빨간색 자막을 넣으면서 인위적으로 분위기를 연출했지만, 글쎄 성공하진 않은 것 같다.

비록 첫 회이긴 했지만 굉장히 허술한 구조임을 눈치 채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이게 추리 예능인지, 농촌 예능인지, 게임 예능인지 아직 방향을 못 정한 것 같다. 고구마밭은 어설픈 추리를 하고, 낚시팀은 물고기를 잡고, 배추밭에서는 좋은 배추를 선별하고 있다. 전혀 맞지 않는 엇박자. 이 어수선함이 <미추리> 첫 회의 허술함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속고 속이는 과정이 이렇게 긴장감이 없을 수가 있을까. 차라리 ‘아름다운 가을 마을’ 미추리를 보여주는 편이 재밌었을 것 같다. 아니면 2회부터는 그냥 솔직하게 밝히자. <패밀리가 떴다>를 다시 만들고 싶었다고 말이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