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립유치원 비리로 전 국민이 분노했었다. 그러나 이슈가 차고 넘치는 대한민국은 그 분노를 오래 지탱하지 못했다. 그 틈을 타 당장이라도 국회를 통과할 것만 같았던 유치원 3법(속칭 박용진 3법)은 연내 통과를 장담할 수 없는 처지에 놓이게 됐다. 가장 큰 원인은 자유한국당이 석연찮은 이유로 지연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사립유치원 비리가 터졌을 때만 해도 자유한국당은 여론을 의식해 박용진 3법에 적극 협조할 것을 약속했다. 김성태 원내대표는 민주당이 당론 발의한 ‘유치원 3법’에 대해서도 “입법행위뿐만 아니라 제도개선 활동에 자유한국당은 앞장서서 그 부분에 역할과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유치원 3법’ 국회 논의 중단…학부모만 불안 (KBS 뉴스9 보도화면 갈무리)

그러나 자유한국당 홍문종 의원 등 몇 명이 한유총과 합동으로 국회에서 토론회를 여는 등의 일들이 진행되면서 김 원내대표의 말은 달라졌다. “전국 유치원 아이들의 75%가 사립유치원에 다니고 있는 상황에 사립유치원 전체를 비리집단으로 매도하려 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달라진 입장을 드러냈다.

우선 김성태 원내대표의 달라진 입장은 논리부터가 무척이나 옹색하다. 사립유치원에 다니는 아이들이 많다는 것은 비리 여부를 판단할 근거가 될 수 없다. 열 명 중 아홉이 잘못하면 그것이 선이 된다는 논리와 다를 것이 없는 것이다.

결국 자유한국당은 국회 교육위원회 법안심사소위에서 자당 법안이 12월에 나온다며 더불어민주당의 유치원 3법 보류를 막무가내로 주장하고 있다. 여전히 말로는 박용진 3법에 반대하지 않는다고 한다. 하지만 이는 유치원 문제가 언제든 재점화될 수 있는 이슈라는 것을 의식해 안전장치를 마련해두는 것에 불과하다.

이번 정기국회에서 자유한국당의 반대 혹은 지연으로 법안이 보류되고 있는 것은 유치원 3법만이 아니다. 대표적으로 ‘도로교통법·특정범죄가중처벌법 일부개정안’과 ‘식품위생법 개정안’ 등이 있다. 도로교통법 개정안은 일명 ‘윤창호법’으로 불리는 법안으로 음주운전 사고 가해자 처벌 강화 내용을 담고 있고, 식품위생법 개정안은 청소년에 속아 술 등을 판매한 자영업자를 처벌을 완화하고자 하는 개정 법안이다.

김성태 비대위원장을 비롯한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15일 국회에서 의원총회를 마치고 국민에게 '저희가 잘못했습니다'라며 사죄하고 있다. Ⓒ연합뉴스

유치원 3법은 물론 이들 법안들 역시도 당장 법안이 개정되지 않으면 민생에 심각한 지장을 초래하는 핵심법안들이다. 자유한국당이 여론이 뜨거울 때는 중요한 법안들이 통과되도록 적극 협조할 것처럼 홍보하다가 관심이 조금 식는다 싶으면 언제 그랬냐는 듯 입장을 바꾸고 있다. 특히 유치원3법에 대해서는 사립유치원 원장들이 가진 정치적 힘을 빌려 정쟁의 도구로 쓰려고 한다는 분석하는 언론도 있다.

그러나 분명히 말해두고 싶은 것은 이런 식으로 국민을 기만하는 것은 결국 자멸를 자초한다는 사실이다. 자유한국당이 여론의 온도차에 따라 손을 뒤집듯 말을 바꾸는 행태를 반복하는 것은 망각에 대한 기대감 때문이다. 시간이 지나면 모두 잊혔던 과거의 경험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시민들은 결코 잊는 법이 없으며, 인터넷 덕분에 지워지지도 않는다. 엄마는 더욱 그렇다. 엄마들을 분노와 두려움에 떨게 했던 사립유치원 비리를 바로잡고자 발의된 유치원 3법을 이런 식으로 지지부진하게 끌고 가다가 결국 좌초시킨다면 그 역풍은 감당할 수준이 아닐 것이다. 민심은 자유한국당에 대해서 잊지도 않고, 심판을 주저하지도 않을 것이다. 지난 6월 지방선거의 호된 심판은 예고편에 불과하다는 것을 자유한국당은 알아야 한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