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타블로 사태를 다룬 MBC스페셜 1부가 방영됐다. 의혹을 제기하는 측의 어처구니없는 방해노력을 이겨내고 마침내 방영된 것이다. 프로그램 말미에 타블로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얼마나 밉보였으면, 내가 얼마나 그동안 사람들한테 반감을 살 만한 모습으로 살아왔으면” 이렇게까지 무너져야 했을까.

맞다. 타블로는 밉보였다. 뭔가 타블로의 삶에는 사람들의 반감을 살 만한 모습이 있었다. 그래서 찍힌 것이다. 이 세상엔 수많은 의혹이 있고, 수많은 나쁜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엄청나게 큰 에너지를 소진하며 유독 한 사람에게 집중한 것은 그가 대단히 밉보였다는 것으로밖에 설명이 안 된다.

타블로는 왜 찍혔을까?

- 타블로가 얄미웠던 이유 -

한국인의 공분이 하필 타블로에게 집약됐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는 재수다. 타블로가 연예인이기 때문에 대중의 분노가 집약되기 쉬웠다. 사회적 분노 지수가 올라갈 때 증오범죄가 일어나게 되는데, 그때 여성 노약자와 함께 대중의 눈에 띄는 연예인이나 문화재가 표적으로 찍히는 것과 같은 원리다. 노홍철 피습 사건을 생각하면 되겠다.

그렇다면 한국인은 무엇에 그렇게 분노하고 있었단 말인가? 못 믿을 지도층, 부유층에 대한 분노다. 자식을 외국으로 빼돌리고, 외국 국적을 따게 해서 검은머리 외국인을 만들고, 병역비리를 저지르고, 돈을 많이 쳐들여서 국내외 명문대 학벌을 따게 하고, 그 외 온갖 편법부정을 저지르며 기득권을 향유하는 ‘그들’에 대한 분노. 이런 분노는 정당하다.

하필 타블로의 삶에 여기에 걸릴 소지가 있었다. 네티즌은 타블로의 집안을 부유층이라고 믿고 있다. 그는 한국 최고의 여배우와 결혼까지 했다. 그런데 국적은 외국이다. 따라서 군대도 안 간다. 돈은 한국에서 번다. 방송에선 해외 명문대를 나왔다고 천재 대접을 해준다. 그런데 의혹의 소지가 있다고? 오호라 딱 걸렸어. 역시 그럴 줄 알았지. 너를 잡아서 한국사회의 부정을 씻으리라! 이렇게 된 것이다.

여기에 우리 네티즌 문화의 폭력성과 방향 잃은 증오가 결합했다. ‘00녀’ 사건이 생길 때마다 기다렸다는 듯이 터져 나오는 집단 폭력성. 네가 죄를 지은 이상, 너에게 의혹이 있는 이상 너의 인권은 몰수다. 끝장을 내주마. 이런 식의 공격성이다. 타블로와 그의 가족은 가볍게 유린의 대상이 됐다.

- 한국사회의 바닥이 드러나다 -

프로그램 중에 믿음에 대한 얘기가 나온다. 사람들은 왜 믿지 않을까? 못 믿는 것이 아니라 안 믿는 것이 아닌가? 이런 문제제기다.

맞다. 한국인은 믿지 않는다. 왜? 믿는 사람이 바보인 세상이기 때문이다. 신정환 조작사진을 보고 믿었던 사람은 바보가 됐다. 최희진의 말을 믿고 태진아 이루를 공격했던 사람들도 바보가 됐다. 학력위조 사태를 이미 겪은 바도 있다.

특히 사회지도층을 믿는 것은 ‘레알’ 바보다. 우리 사회의 그런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것이 얼마 전에 있었던 ‘죄송합니다 청문회’와 총리 후보자 사퇴 사태였다. 한 마디로 썩은 사회인 것이다. 의심하고 분노하는 것이 당연하다.

2008년 잡코리아 여론조사에서 직장인의 80%가 한국사회를 믿을 수 없다고 답했다. 2009년 사회동향 보고서에선 타인을 믿을 수 있다는 한국인이 28%에 불과했다. 2005년 투명사회협약실천협의회의 각계 전문가 조사에선 87%가 지도층을 신뢰하지 않는다고 했다. 2008년 법무부 조사에선 93%가 기득권층의 위법이 문제라고 했다.

신뢰는 최저점이고 분노는 끓어오른다. 이것이 한국사회다. 타블로는 ‘하필이면 재수 없게 찍혔다’

게다가 한국사회의 심연인 학벌문제까지 엮였다. 미국 명문대를 나왔다는 이유로 온갖 언론에서 천재로 소개된 타블로. 이런 학벌주의 때문에 결국 타블로의 학벌이 의혹의 핵이 된 것이다. 만약 언론과 방송에서 타블로의 학벌을 띄우지 않았다면 설사 학벌의혹이 있더라도 이렇게 큰 사태는 되지 않았을 것이다.

신뢰부재와 학벌주의, 그리고 네티즌의 증오. 우리 사회의 바닥이 드러난 사건이다. 하필 이런 분노 폭발의 대상으로 찍힌 타블로는 정말 불운했다.

미쓰라는 말했다. 만약 타블로의 말이 맞는다고 드러났을 때 누가 보상해줄 수 있는가? 그렇다. 문제는 그것이다. 태진아 이루에게는 누가 보상해주나? 최민수에게는 누가 보상해주나? 그저 ‘아님 말고’인가? 또 다른 ‘죽일놈’을 찾아 의분의 넷서핑에 나서면 되는 것인가?

사람이 할 짓이 아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의혹이 있다 하더라도 누군가를 공격할 때는 최대한 신중해야 한다. 그리고 대상과 그 가족이 나와 같은 인권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을 잊어선 안 된다. 근본적으로, ‘공분’은 연예인이 아니라 진짜 권력층에게 터뜨리는 것이 좋겠다.

문화평론가, 블로그 http://ooljiana.tistory.com/를 운영하고 있다. 성룡과 퀸을 좋아했었고 영화감독을 잠시 꿈꿨었던 날라리다. 애국심이 과해서 가끔 불끈하다 욕을 바가지로 먹는 아픔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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