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전혁수 기자] 조선일보가 미국의 한국 은행·기업 등에 대한 제재 가능성 보도를 이어가고 있다. 특히 조선일보는 미국이 한국 정부를 거치지 않고 한국 은행과 기업에 직접 접촉한 점에 주목하면서 "한국 정부를 믿지 않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1일자 조선일보 1면 기사.

1일자 조선일보는 1면 헤드라인에 <美 '경협 과속말라' 정부·기업에 압박> 기사를 게재했다. 미 국무부가 워킹그룹을 설치해 한국과 대북제재 이행을 조율하고, 미국 대사관은 방북기업 5곳에 전화해 대북사업을 직접 체크했다는 내용이다. 조선일보는 이 같은 소식을 전하며 "대북 제재를 놓고 한·미가 이견을 보이는 상황에서 미 정부가 남북 경협의 '과속'에 제동을 걸기 위해 우리 정부와 기업을 동시에 압박하기 시작한 것으로 해석된다"고 보도했다.

조선일보는 "청와대 김의겸 대변인은 31일 브리핑에서 '워킹 그룹은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 프로세스 전반에 대해 한·미가 긴밀한 논의를 하기 위한 기구'라고 했다"면서 "하지만 외교 소식통은 '미국이 한국 정부의 과속을 막고, 대북 제재를 유지하기 위해 감시 기구를 만든 것'이라고 했다"고 전했다.

조선일보는 "이런 가운데 미국은 한국 정부뿐만 아니라 민간 대기업에 대해서도 대북 제재 준수 여부에 대한 모니터링을 강화하고 있다"며 "주한 미국 대사관은 최근 삼성, SK, 현대자동차, LG, 포스코 등 5개 대기업에 대북 사업 자료 제출과 콘퍼런스콜을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다"고 썼다.

조선일보는 익명의 4대 그룹 고위 임원의 발언을 인용해 "방북 당시 북한에 경제협력 사업을 약속했는지, 앞으로 대북 사업을 어떻게 진행할 것인지 등에 대한 콘퍼런스콜을 미 대사관과 다음 주에 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조선일보는 "대기업들이 정부 요청에 따라 경협에 나설 가능성을 원천 차단하려는 조치로 보인다"고 해석했다.

▲1일자 조선일보 3면.

조선일보는 미국 대사관의 방북 기업 콘퍼런스콜이 재무부의 의뢰라고 보도했다. 조선일보는 3면 <美대사관 "방북 5대 기업, 콘퍼런스 콜 준비하라…재무부 의뢰다"> 기사에서 "미국이 대북 정책과 관련, 우리 정부를 통하지 않고 우리 은행·기업들을 직접 접촉한 것 자체가 이례적인 일"이라고 보도했다.

조선일보는 "미 대사관의 전화를 받은 기업들은 '정부 요청으로 방북단에 참석했는데 우려했던 사태가 발생하는 것 같아 혼란스럽다'는 반응을 보였다"며 "주요 대기업들은 방북 전부터 'CEO가 방북하면 미국이 주목할 수밖에 없다'며 '북한에 가면 미국 정부에 찍히고, 안 가면 한국 정부에 찍히는 딜레마에 빠져 있다'고 했다"고 썼다.

조선일보는 "지난 9월 미 재무부의 경고를 받은 국내 은행들도 매우 예민해진 상태"라며 "미 재무부가 특정 은행이 대북 제재 위반 활동을 했다고 판정하면, '주요 자금 세탁 우려 기관'으로 지정해 달러 거래 중지 조치를 취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달러 거래를 못 하면 정상적인 은행 업무를 할 수 없어 파산하게 된다"고 우려를 더했다.

조선일보는 "주요 방북 기업인들이 지난달 23일 서울의 한 식당에서 열린 '고려회' 모임에 참석하지 않은 것도 이 같은 분위기를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며 "당시 대기업 총수들의 불참을 두고 재계에선 '여권 유력 인사들이 자꾸 남북 경협 역할론을 제기하니까 부담을 느낀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다"고 말했다.

지난 30일 미국 정부가 중간선거를 앞두고 한국 국적 은행에 대한 세컨더리 보이콧 제재를 가할 가능성이 있다는 루머가 돌기도 했다. 31일 정부는 이에 대해 '근거 없는 풍문'이라고 반박한 바 있다. 조선일보는 관련 내용에 대해 청와대가 신경이 곤두섰다고 보도했다.

조선일보는 <신경 곤두선 靑 "세컨더리 보이콧? 답할 가치없는 지라시"> 기사를 3면 하단에 배치하고 "정부는 이날 공식적으론 부인 입장을 내놨지만 물밑에선 미국발 제재 가능성 여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며 "정부 소식통은 '미국 정부가 지난달 시중 은행 7곳과 전화 회의를 열고 대북 제재 준수를 강조하는 등 미국의 강경 기류가 이어지고 있는 만큼 상황을 주시하고 있다'고 했다"고 보도했다.

▲1일자 조선일보 사설.

조선일보는 사설에서 미국이 한국 정부를 거치지 않고 한국 은행·기업을 직접 접촉한다는 점에 주목했다. 조선일보는 <美, 韓 정부 제치고 직접 한국 은행·기업에 대북 사업 경고> 사설에서 "미국이 한국 정부를 제치고 직접 한국 기업·은행에 대북 사업 경고하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다"라며 "정부가 이 상황을 안이하게 보면 국익에 큰 타격이 올 수 있다"고 우려했다.

조선일보는 "미국은 그동안 한국 정부에 '남북 관계에 과속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지속적으로 보내왔다"며 "그럼에도 한국 정부는 공개적으로 유럽 등에 대북 제재 완화를 요청하는 등 미국을 고립시키려는 듯한 시도를 했다. 이것이 미국 정부를 자극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조선일보는 "미 정부가 한국의 기업·은행 등을 직접 접촉하면서 한국 정부를 통하지 않은 것은 한마디로 한국 정부를 믿지 않기 때문"이라며 "미국으로서도 한국 은행과 기업을 제재했을 때 벌어질 사태를 피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한국 은행과 기업에 미국 정부의 메시지가 분명하게 전달돼야 하는데 한국 정부가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라고 보는 것"이라고 추측했다.

조선일보는 "한국 정부가 계속 '남북'에 과속하고 기업·은행의 등을 떠밀면 미국이 한국을 상대로 어떤 조치에 나설지 장담할 수 없다"며 "미국이 북한산 석탄 수입 대금 송금에 한국의 은행이 연루되고 평양 정상회담에 대기업 총수가 동행한 것을 어떻게 볼지는 분명하다. 만에 하나 미국이 제재의 칼을 빼들면 그 대상이 된 은행은 파산을 피할 수 없고 기업은 무역 자체가 어려워진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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