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들에게는 일 년 농사의 결실을 보는 것이라는 국정감사. 누구나 스타를 꿈꾸지만, 그 자리는 아무에게나 허락되는 것은 아니다. 스타는커녕 쪽박을 차는 경우도 흔치 않게 목격하게 된다. 더불어민주당 손혜원 의원은 야구 국가대표팀의 병역논란에 대해서 깊은 성찰 없이 일방적으로 선동열 감독을 몰아붙였다가 역풍을 맞게 되었다. 손 의원의 경솔함이 문제였지만 그보다 앞서 선 감독을 국감장에 부른 것부터가 사고였다.

선동열 감독에 대한 국감 출석은 언론의 주목을 받고자 하는 선정적 동기와 국회의원들의 안하무인이라는 두 가지 문제점을 남겼다. 국회의원은 기자들도 접근하지 못하고, 요구할 수 없는 자료 청구권을 갖고 있다. 대단한 힘이 아닐 수 없다. 특히 국정감사 때 더욱 위력을 발휘한다. 거기다가 면책특권이라는 방패까지 들고 있으니 국회의원이라는 자리는 스스로 경계하지 않으면 돈키호테가 되기에 십상인 것이다.

더불어민주당 손혜원 의원(왼쪽)이 10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문화체육관광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선동열 야구 국가대표팀 감독에게 질의하고 있다. Ⓒ연합뉴스

29일 문화체육관광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벌어진 ‘듣보잡’ 설전은 부끄러운 우리 국회의 현실을 전해준다. ‘듣보잡’이라는 단어는 ‘듣지도 보지도 못한 잡놈’이라는 뜻으로 오래된 속어이다. 과거 진중권 씨가 변희재 씨에게 썼다가 벌금 300만원을 물어야 했을 만큼 대상에게는 대단히 모욕적인 언사이다.

29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 국정감사에 나온 증인이 이 ‘듣보잡’이라는 말을 듣고 발끈했다. 이 속어를 입에 담은 주인공은 위원장인 더불어민주당 안민석 의원이었다. 문제의 발언 이전에 증인 사이에는 위증 문제를 놓고 감정적인 대화가 오갔다. 며칠 전인 24일에도 안 의원과 곽용운 대한테니스협회장은 분위기가 좋지 못했다. 국감장에서 보인 증인의 태도는 매우 공격적이었다. 29일에도 증인은 감정적으로 격앙되어 보였고, 문제가 있어 보였지만 결국 ‘듣보잡’ 발언 하나로 안 의원이 지고 말았다.

증인 곽용운 회장은 해명 기회를 달라고 거듭 요청했고, 안 의원은 국감은 해명하는 자리가 아니라며 들어주지 않았다. ‘듣보잡’ 발언 이후 증인은 자신이 잡놈이냐며 안 의원을 향해 거세게 항의했다. 안 의원은 그런 증인에게 국회를 모독하냐고 받아쳤다.

23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국정감사 (연합뉴스 유튜브 영상 갈무리)

국정감사 때마다 의원들은 저마다 열심히 준비를 한다. 그뿐 아니라 언론의 주목을 받기 위해 다양한 전략들을 준비하기도 한다. 국회의원도 연예인들처럼 튀어야 사는 직업이기에 어쩔 도리 없는 일이다. 그러나 안민석 의원의 ‘듣보잡’ 발언은 튀어도 너무 튀었고, 입에 담지 말았어야 했던 말이었다. 아마도 안 의원은 증인의 반발에 자신의 실수를 깨달았을 것이다. 다만 실수를 인정하고 사과하는 대신에 거꾸로 증인을 국회 모독으로 몬 점도 실망스러운 부분이다.

국정감사에 대한 언론의 평가 중에 매년 반복되는 지적은 ‘증인 망신주기’이다. 사실과 논리로 문제를 밝히기보다 자극적이고 거친 언사로 증인을 몰아붙이는 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의원들 입장에서도 고작 10분의 시간 동안에 원하는 결론을 끌어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고 항변한다. 수긍할 수 있는 부분도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증인의 인격을 폄훼하는 발언까지 용납할 수는 없다. 더군다나 위원장이라면 좀 더 신중하고, 이성적인 대처를 보였어야 했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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