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재벌은 각별하다. 영어표현에도 부자나 대기업을 표현하는 많은 표현이 있지만 굳이 영어사전에 ‘재벌’이란 단어를 넣은 이유는 한국만의 특별한 의미를 갖기 때문이다. 그런가 하면 이제는 한국 주재 기자들을 중심으로 널리(?) 알려지고 있는 또 다른 단어가 있다. ‘기레기’는 한국만의 언론 상황을 반영하는 신조어이다.

이 두 단어가 만났을 때 벌어지는 현상은 지배와 종속이라고 할 수 있다. 반면, 언론이 재벌이 아닌 만만한 상대를 대할 때는 종종 혐오와 멸시를 발견하게 된다. 그것이 종속에 대한 보상심리의 작용인지는 알 수 없지만, 언론이 맞서 싸워야 할 혐오를 스스로 보인다는 것은 보통 심각한 일이 아니다.

KBS 1TV <저널리즘 토크쇼 J>

21일 16번째 <저널리즘 토크쇼 J>가 다른 어느 때보다 중요했고, 의미 있었던 이유는 바로 언론의 종속과 혐오에 대해서 다뤘기 때문이다. <저널리즘 토크쇼 J>는 이날 고양시 저유소 화재와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석방의 문제점들을 지적했다. 두 개의 사안을 따로 분리하기는 했지만 하나의 맥락으로 정리되는 것은 자연스러웠다.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언론현상이다.

<저널리즘 토크쇼 J> 고정패널 정준희 교수는 우선 고양시 저유소 화재 사건에서 언론들이 긴급체포되었던 외국인 노동자의 신상을 거침없이 까발린 것에 대해서 외국인이라서, 소수자였기 때문이었다고 분석했다. “소수이므로 잘못 얘기해도 반발이 적을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것은 곧 소수자에 대한 멸시이며, 혐오라는 사실을 언론은 알지 못했고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외국인 노동자를 마치 마녀사냥처럼 몰아가던 언론과 경찰의 폭주를 막은 것은 시민들이었다. <저널리즘 토크쇼 J>가 매주 클로징 때 반복하는 말대로 언론의 그릇된 관행을 시민이 바로잡은 것이며, 이를 집단지성의 역할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아무튼 시민들의 반발에 일부 언론이 뒤늦게 경찰과 언론 보도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나서야 했다.

KBS 1TV <저널리즘 토크쇼 J>

고양시 저유소 화재에 대한 언론의 태도와 판이하게 구별되는 또 하나의 사건이 있었다. 롯데 신동빈 회장이 2심 재판에서 기적의 논리라고 불리는 ‘수동적 뇌물제공’이라는 이유로 풀려난 일이었다. 이재용 삼성 부회장 때는 그나마 기계적 비판이라도 많은 기사가 생산됐으나, 어찌된 일인지 신동빈 회장 석방에는 언론들이 긍정적인 기사를 내거나 아니면 아예 외면하는 수준의 태도를 보였다.

이재용 부회장 석방 때에 돌림노래처럼 언론에 등장했던 ‘재벌 3·5법칙’은 신동빈 회장 때에는 슬그머니 꼬리를 감췄다. <저널리즘 토크쇼 J>는 그 이유를 일단 광고비에서 찾으려고 했다. 롯데케미컬은 작년 상반기에 비해 올해 상반기 광고비를 3배 정도 증가한 188억 원을 집행했다. 롯데케미컬은 소비재를 생산하는 기업이 아니라 딱히 기업광고가 필요한 곳은 아니라는 것이 <저널리즘 토크쇼 J>의 지적이었다.

롯데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저널리즘 토크쇼 J>은 내친김에 삼성과 SK의 총수가 수감 중일 때의 광고비 변화를 조사했다. 롯데는 차라리 양반이었다. 삼성의 경우 2017년 4분기부터 2018년 1분기까지는 5095억 원으로 일 년 전과 비교했을 때 무려 82%가량 증가했다. 삼성이 워낙 광고비를 많이 쓰는 기업이기는 하지만 이것이 이재용 부회장에게 우호적이었던 언론의 경향과 전혀 무관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의심이 드는 것은 당연하다.

KBS 1TV <저널리즘 토크쇼 J>

언론의 재벌 종속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언론도 기업이기에 생존하기 위해서 혹은 성장하기 위해서 돈이 필요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다만, 언론이 자신들의 상품인 보도기능을 퇴화시키는 방식의 생존과 성장은 모순이며, 미래를 좀먹는 일에 불과하다. 재벌과 권력이 언론을 두려워하지 않고 길들일 수 있는 대상으로 본다면 언론은 그 가치를 잃은 것이다.

<저널리즘 토크쇼 J>가 점점 더 독해지고 있다. 신동빈 회장 석방 건에 대해서는 다른 매체보다 KBS에 대한 비판에 열심(?)인 모습이 눈길을 끌기도 했다. <저널리즘 토크쇼 J>를 방송하는 KBS조차 기존 관행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은 그만큼 한국 언론의 병이 깊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저널리즘 토크쇼 J> 패널 정준희 교수는 “저널리즘의 위기”라고 했지만 사실은 그 단계를 넘어 “저널리즘의 종말”을 향하고 있는 것이 아닐지 모를 일이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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