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문지애 아나운서가 뉴스 진행을 하지 못하게 됐단다. 웃어서 그랬다고 한다.

언론에 보도된 내용을 종합하면 이렇다. 매일 저녁 6시30분 MBC뉴스를 진행하던 박소현 아나운서가 휴가를 갔고, 이를 대신해 문 아나운서가 지난 7일 오후 뉴스를 진행했다. 그런데 뉴스가 마무리되고 이른바 ‘클로징 멘트’를 하던 문 아나운서가 웃음을 터뜨렸다. 당일 뉴스에서 경기도 이천 화재 사고 사상자 소식을 중점적으로 다뤘기 때문에 문 아나운서의 ‘웃음’이 시청자와 네티즌의 비난을 샀다. 문 아나운서는 이번 파문으로 지난해부터 진행해오던 평일 오후 5시 MBC뉴스에서도 하차한다. 뭐 대강 이런 내용이다.

▲ 문지애 아나운서 ⓒMBC
웃긴다. 문 아나운서가 웃기는 게 아니라 MBC의 ‘행태’가 웃기고, 그걸 문제 삼는 사람들의 사고방식이 웃긴다. 뉴스진행자가 뉴스 도중 웃는 게 어디 이번 뿐인가. 몇 해 전 방송 도중 파리가 카메라에 ‘잡혀’ 패널과 진행자가 폭소를 터뜨린 사건이 공중파를 타기도 했고, KBS에서는 뉴스진행자가 이 내용을 전하면서 웃음을 참지 못해 ‘고개를 숙이는’ 방송사고까지 발생했다.

하지만 그때 ‘실수’를 했던 그 진행자와 패널들이 모두 뉴스진행에서 하차했던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생방송 도중 웃음을 참지 못해서 벌어지는 해프닝은 국내외를 막론하고 방송계에서는 ‘보편화’된 일이다. 중견 방송인이 과거를 회상하면서 ‘신입시절의 방송사고’를 언급하는 게 ‘쪽팔린’ 일은 아니다. 다 경험이고 지나온 발자취이자 인생이다. 중대하고 심각한 사고가 아니라면 시청자에게 사과하는 선에서 충분히 마무리할 수 있는 일이라는 말이다.

물론 경기도 이천에서 발생한 사고를 중점적으로 다뤘기 때문에 문 아나운서의 웃음이 적절하지 못했을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뉴스진행까지 그만둬야 하나. 문 아나운서가 경기도 이천에서 발생한 사고를 ‘즐기기라도’ 했다고 생각하는 건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오히려 문제삼아야 할 것은 MBC의 처신이다. 사과한마디 하면 될 정도의 ‘조치’를 두고 완전 ‘오버액션’을 해버렸다. 그런데 그 ‘오버액션’의 배경이 좀 의심스럽다. 지금까지 이 같은 사고에 대해 나름 관대하게 적용해왔던 ‘관행’을 유독 문 아나운서에게만 혹독하게 들이대기 때문이다.

▲ 머니투데이 2008년 1월9일자 26면.
오늘자(9일) 일부 언론이 지적했지만 이 같은 비판의 배경에는 문 아나운서가 최근 예능프로그램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아나테이너’(아나운서+엔터테이너)의 대표주자라는 점이 주요하게 고려된 것으로 보인다. 예능오락프로그램 진출로 인기를 누리기 시작한 ‘여자’ 아나운서들이 시쳇말로 ‘좀 건방진 게 아니냐’는 시각이 반영돼 있다는 말이다. 주목하자. ‘남자’ 아나운서가 아니라 ‘여자’ 아나운서라는 사실을.

역시 웃긴다. 근거가 없다. ‘좀 건방진 게 아니냐’는 지적은 근거가 없는 개인적 감정의 발산일 뿐이다. 문 아나운서의 ‘웃음’이 적절하지 못했을 수는 있지만 뉴스진행을 그만둘 만큼 문제 있는 행동은 아니었다. 예기치 못한 사고에 대해 적절한 수준에서 사과하는 것으로 끝났어야 했다.

혹자는 이런 반론을 제기할 법도 하다. 아나운서의 본분에서 벗어난 행동 아니냐. 이것 역시 말이 안되는 반론이다. 아나운서를 예능오락프로그램으로 진출하라고 ‘격려’한 것은 방송사들이었다. 논란이 있긴 했지만 그들의 진출을 반긴 것 역시 시청자와 네티즌이었다.

아나운서 본분? 웃기는 소리다. 예능프로그램에도 출연하면서 뉴스를 진행하는 아나운서의 본분은 무엇인가. ‘아나테이너’인가 저널리스트인가. 요즘과 같은 시대에 아나운서를 둘 중의 하나로 규정하는 일이 가능한가. 여러 가지 의문들이 꼬리를 물고 늘어진다.

이번 파문을 보면서 ‘절망적인 것’은 뉴스의 가부장적인 고정관념이 조금도 흔들림 없이 유지되고 있다는 점이다. 뉴스의 ‘권위’를 콘텐츠의 신뢰성과 연관시키지 않고 진행자의 태도, 특히 여성 진행자의 태도와 연결시키는 이 몹쓸 행태를 언제까지 지속할 것인가.

MBC의 ‘오버액션’과 언론의 ‘오버’를 보면서 드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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