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터 션샤인>이 마침내 종영했다. 한 여자를 사랑했던 세 남자의 죽음이 무겁게 표현됐지만, 나라를 빼앗긴 이 드라마의 배경보다 더 비극적일 수 없어서 차마 새드엔딩이라는 말은 하지 못할 것 같다. 그들의 죽음은 사실 비극이 아니라 누군가를 한 발 앞으로 딛게 하기 위해 자신이 한 발 뒤에 남는 희생이었고, 희망이고, 미래에 전하는 당부였다고 하는 편이 옳을 듯하다.

마지막 회에서 그들 세 남자의 죽음보다 더 뜨겁게 다가온 장면도 있었다. 유진 초이를 통해 의병 취재에 나선 영국기자에 의해서 촬영된 의병 사진. 많은 사람들이 그 사진의 익숙한 구도에 놀라야 했다. 작가를 칭찬했다. 그러지 않을 수 없는 장면이었다. 한 마디로 드라마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오마주’였다고 단언할 수 있다.

그간 사극들은 적잖은 과거를 재현해냈다. 정조의 화성 행차도 재현해냈고, 궁중 진연 진찬도 보여주었다. 당연히 엄청난 예산을 들였을 것이다. <미스터 션샤인>의 의병 사진 재현은 그에 비해 평범했지만 그 어떤 재현보다 울림이 컸다.

tvN <미스터 션샤인> 속 의병사진과 실제 영국 기자 프레더릭 매켄지가 1907년 촬영한 의병 사진.

드라마의 수많은 기법들이 존재하고 자기 민족, 자기 국가의 역사를 다룬 드라마에서 빠질 수 없는 오마주라지만, 참 의외의 대목에서 툭 튀어나온 사진 한 컷이 남긴 여운은 매우 깊고 컸다. 매우 낯익은, 그러나 그 사진의 의미를 다 알지는 못했던 오래 된 사진 한 장이 이제 막 찍은 새 사진이 되어 우리 앞에 던져진 것이다. 드라마의 모든 것은 주인공을 돋보이기 위한 도구로 사용된다. 그러나 다 끝나고 보니 <미스터 션샤인>의 모든 것들, 모든 배우들은 반대로 역사를 위해 기꺼이 복무한 결과가 되었다.

<미스터 션샤인>은 적잖은 고증 문제에 시달렸었다. 그만큼 우리에게 일제강점 36년은 매우 조심스럽고 민감한 것이 분명하다는 정도로 이유를 헤아리면 될 것이다. 그러나 드라마에 대해서 고증을 강박하기보다는, 그 드라마가 지향하는 역사의식에 더 집중할 것도 남겨진 숙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36년이라는 너무도 긴 식민시기를 겪었지만 의외로 그에 대한 자산이 적은 편이다. 그것은 해방 이후에도 친일파 청산이 되지 않았던 이유도 컸다. 매해 광복절이면 만들어지던 특집 드라마, 특집 다큐멘터리도 요즘에는 뜸하거나 지루하다는 느낌이 없지 않았다. 당연하달 수 있겠지만 <미스터 션샤인>은 방영 중에 광복절을 지났다. 다른 어떤 광복절 특집 드라마가 있었나 싶었는데, 이 드라마가 버티고 있었으니 또 얼마나 다행한 일이겠는가.

tvN 주말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 최종회

처음에 우려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소위 ‘로코의 여왕’이라는 작가 김은숙이기 때문이었다. 한국 드라마는 어떤 장르건 기승전-연애의 공식에서 벗어나질 못하니 말이다. 그러나 기우에 불과했다. 연애가 영 없었다고 할 수는 없었다. 오히려 전체를 관통한 것은 역시나 연애였다. 그러나 그들의 연애를 따라가다 보니 어느새 드라마는 항일과 투쟁의 외줄 위에 서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아니 그들은 연애를 하는 듯 했으나 어느덧 투사였고, 시공을 초월해 우리들과 동지로 손을 맞잡고 있었을 뿐이었다.

전범 일본은 반성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그럴 가능성은 없다. 또한 친일의 뿌리에서 자라난 일본 옹호세력들 또한 당당하게 친일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친일은 과거가 아닌 ‘현재’이다. 불과 몇 년 전에도 위안부 문제를 졸속으로, 굴욕적으로 합의한 바 있다. <미스터 션샤인> 같은 드라마가 더 많아져야 할 이유를 현실이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김은희 작가의 드라마 <시그널>에서 과거의 형사가 미래의 형사에게 세상이 바뀌었는지 물은 장면이 커다란 의미였듯이, <미스터 션샤인>의 많은 등장인물들은 20년도 아닌 백년도 더 지난 대한민국의 현재는 과거와 얼마나 달라졌는지 묻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아니 달라져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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