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산은 남북한 모두 민족의 영산이라 부른다. 비록 중국이 반을 점유하고 있지만 여전히 우리들에게는 통일이 되면 반드시 가봐야 할 염원의 장소이다.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백두산은 가지 못할 곳은 아니다. 중국을 통해 얼마든지 오를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현재는 과거에 비해 여행비도, 관광 인프라도 크게 개선되었다. 백두산 여행이 열린 초기에는 연길시에서 백두산(중국 측에서는 장백산)까지 비포장도로를 달려야 해서 마치 로데오를 하는 기분이 들 정도로 열악했으나, 요즘은 포장이 다 되어 편히 다녀올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아무리 쉽고 편해졌을지라도 그렇게 백두산을 다녀오는 사람들은 풀지 못하는 아쉬움을 다시 품에 안고 내려와야 한다. 우리 산 백두산을 백두산이라 부르지도 않는 중국을 통해서 가야 한다는 왠지 억울한 심정과 아쉬움이 없을 수 없다. 문재인 대통령이 과거 백두산에 오를 기회가 적지 않았음에도 끝내 가지 않았던 이유는 충분히 이해가 되고도 남는다.

문재인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 내외가 20일 오전 백두산 천지에 서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20일 김정은 위원장의 전격 제안으로 이루어진 문재인 대통령의 백두산 등정. 기쁜 소식이었지만 사실 걱정도 없지 않았다. 백두산 천지는 간다고 무조건 볼 수 있는 곳은 아니다. 삼대가 덕을 쌓아야 맑은 날씨를 만날 수 있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천지는 그 위엄을 스스로 지켜왔다.

오래전 중국을 통해 방문했을 때의 천지도 역시 그러했었다. 결국 천지의 푸른 한 조각 볼 수도 없었지만 그래도 천지는 천지였다. 그 감격과 비애가 활화산처럼 북받치는 감정은 한국인이라면 또한 피할 수 없는 백두산 등정의 경험일 것이다. 그러나 민족의 영산 백두산의 천지는 갑자기 찾아간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에게 자신의 모습을 감추지 않았다. 하늘마저 남북의 간절한 염원에 응답하는 것만 같았다.

김정숙 여사는 제주 삼다수 물병을 열어 천지에 부었다. 거창하게 합수식 따위가 없었어도, 우리 땅으로 가는 길이 아니라면 평생의 소원일지라도 백두산에 가지 않겠다는 남편 문재인 대통령이나, 소박하게 생수병에 물을 담아와 천지에 조용히 붓는 아내 김정숙 여사의 모습에서 부창부수라는 말이 떠오르지 않을 수 없었다.

문재인 대통령과 부인 김정숙 여사가 20일 오전 김정은 국무위원장 내외와 백두산 천지를 산책하던 중 플라스틱 생수병에 담아온 제주도 한라산 물을 꺼내 천지 물과 합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제는 이를 지켜본 우리들이다. 옥류관을 찾아 평양냉면을 먹는 것도 희망은 크지만 실현될 날이 언제가 될지는 아직 요원하다. 그래서 조심히 버킷리스트에 담아둘 뿐이다. 그런데 백두산에 오르고, 천지에 손을 담그는 문재인 대통령의 모습을 보면 또 부럽지 않을 수 없다. 고민 없이 버킷리스트를 수정하게 된다. 꼭 이루어질 것이라 믿기에 백두산 등정, 개마고원 트레킹, 평양 옥류관 냉면 등을 빼곡히 적어둔다. 통일 버킷 리스트다.

불과 일 년 전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일들이 한반도에 벌어지고 있고, 덕분에 우리는 까맣게 잊고 있었던 기억들을 가슴 깊은 곳에서 꺼낼 수 있게 되었다. 덕분에 백두산에 올랐으나 중국 루트였으니 무효이고, 올랐으나 악천후로 천지를 보지 못해 무효라고 버킷리스트를 수정하게 된다. 그럴 사람이 어디 한둘이겠는가. 문재인 대통령의 행로로 인해 이를 바라보는 시민들의 버킷리스트 수정과 추가는 불가피하다. 즐거운 비명이 절로 나온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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