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안현우 기자] 지난 7월 불거진 ‘UHD 송신비용 부담 각서 논란‘이 장해랑 사장 퇴진이라는 EBS 내부의 요구로 모아진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언론노조 EBS지부가 주도한 ’장해랑 사장 퇴진 및 방통위의 공식 사과, 재발 방지 약속을 요구하는 전 직원 서명운동‘에 부서장·부장을 포함한 전 직원 579명 중 498명이 서명했다고 한다. PD를 중심으로 대규모의 보직사퇴가 발생하기도 했다.

장 사장에 대한 분노의 크기를 짐작케 한다. 하지만 외부의 시각에서는 EBS 구성원의 장해랑 사장 퇴진 요구가 답해야 할 의문이 있다는 판단이다. 장 사장에 대한 퇴진 요구가 형평성을 갖추고 있냐는 물음이다. 의혹이 불거지자마자 퇴진 요구부터 못 박는 것은 보기드문 일이다.

전국언론노동조합 EBS지부는 지난 17일 경기도 과천정부청사 앞에서 장해랑 사장의 퇴진과 방송통신위원회의 공식 사과를 촉구하는 서명운동 결과를 발표하고 이를 방통위에 제출했다. 해당 서명에는 EBS 전 직원 579명 중 498명이 서명했다. (사진=전국언론노동조합 EBS지부)

전임자인 우종범 사장과 그의 잔여 임기를 수행하고 있는 장해랑 사장 모두 EBS 구성원의 환영을 받고 취임했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갖는다. 그러나 부적격 논란이 제기된 상황에서 두 사람을 대하는 EBS 구성원의 태도가 다르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2015년 11월 EBS 구성원의 환영 속에 취임한 우종범 전 사장은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다. 우종범 전 사장이 EBS 구성원의 환영을 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이념 편향 부적격 인사로 지목된 공주대 이명희 교수에 대한 청와대 내정설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종범 전 사장은 청와대 내정설보다 더한 최순실 인사개입 의혹에 휩싸였다. 이명희 교수를 반대했던 EBS 구성원이라면 인사 개입 의혹은 충격적일 수 있다. 그러나 노조를 포함해 EBS 구성원이 공식적으로 최순실 인사 개입 의혹을 문제 삼았던, 그 흔한 성명서 한 장 찾아 볼 수 없었다. 장해랑 사장 퇴진 운동이 불거지고 있는 지금 시점에서 이를 이해한다면 우 전 사장은 최순실 인사 개입 의혹은 있었지만 경영상의 금전적 손실을 입히지 않았다는 것으로 판단된다.

우 전 사장은 2016년 12월 최순실 인사 개입 의혹이 불거지고 8개월 여 만인 2017년 8월 4일 EBS 사장직에서 자진사퇴했다. 우 전 사장이 밝힌 자진사퇴의 변은 일신상의 이유였다. 이는 정권이 교체되자 보수 인사가 취한 처신으로 평가된다. 이 같은 조용한 자진사퇴에 힘을 보탠 것은 EBS 구성원의 침묵인 셈이다.

사장 퇴진 요구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사실관계와 명분이다. 현재 장해랑 사장은 EBS의 경영상 손실을 발생시키는 합의 각서에 서명했다는 이유로 퇴진 요구에 직면해 있다. 장해랑 사장은 말을 바꿨다는 점에서 ‘UHD 송신비용 부담 각서 논란’을 발생시킨 책임이 있다.

그러나 위법성 여부를 떠나 효력이 있는 ‘UHD 송신비용 부담 각서’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공히 인정하는 바이다. 각서 서명의 또 다른 당사자인 고대영 전 KBS 사장이 서명하지 않았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퇴진 요구는 사실관계를 넘어 ‘수십 억 원이 소요되는 각서’라는 강조점을 되풀이하고 있다.

정리해보면 장 사장의 말 실수밖에 남는 게 없다. 그것도 서명 안 했다에서 했다는 게 아니라 서명했다에서 안 했다로 바꿨을 뿐이다. 이 같은 말실수 때문에 사퇴해야 한다면 누가 EBS 사장이 되든 단명을 감수할 수밖에 없다. 또한 최순실 인사 개입 의혹은 못 본 체하고 말실수는 끝까지 따지는 태도에서 진정성을 찾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사장 퇴진 요구를 지지하는 그 흔한 연대의 성명서 한 장 못 봤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