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골목마다 대형유통업체가 운영하는 기업형 슈퍼(SSM)들이 진출하고 있어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대기업이 골목 상권까지 장악하면서 자영업을 하는 서민들의 생계를 위협하고 있는데요.

오늘은 이들 대형 유통업체들이 어떤 방식으로 골목에 진출하고 있는 지와 관련해 제가 취재했던 내용을 전해드리겠습니다. 이건 아직 제대로 보도된 적 없고, 저 역시도 취재 하다 벽에 부딪혀 수개월 째 기사를 묵히고 있는 아이템입니다. 한데, 읽어보시면 아시겠지만 이건 좀 사회적으로 논의가 필요한 내용들입니다.

다음의 세 가지 사례를 살펴보시겠습니다.

▲ 인천시로부터 사업일시정지 권고를 받은 홈플러스 익스프레스 인천 부개점이 2010년 1월17일 영업을 시작하자 홈플러스익스프레스입점저지 부개동 비상대책위원회가 18일 오전 부개점 앞에서 항의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연합뉴스
#사례1.

인천 부개동에서 200평짜리 ㅎ 마트를 10년째 운영하던 연 아무개씨. 임대차 계약이 끝나는 시기가 다가오자 건물주로부터 가게 임대 조건을 변경한다는 통보를 받습니다. 건물주가 제시한 조건은 기가 막혔습니다. 기존의 월 임대료 650만원, 보증금 1억 2천만원이었던 조건을 월 임대료 1천 300만원에, 보증금 2억 5천만원으로 정확히 두 배 올려 달라는 조건이었습니다. 상식 밖의 요구를 하는 건물주에 분노한 연씨. 건물주를 찾아가 따졌습니다.

건물주는 놀라운 이야기를 전했습니다. 건물주는 연씨에게 “대형 유통업체 관계자가 찾아와 임대료를 두 배로 올려주겠다며 협상을 해왔다”고 전했습니다. 이후 연씨가 장사하던 자리에는 모 대기업이 운영하는 기업형슈퍼(SSM)가 들어섰고 연씨는 마트 문을 닫았습니다.

#사례2.

인천시 만수동에서 2005년 5월부터 2년간 마트를 운영하던 김연일(가명)씨. 2007년 9월 건물주가 갑자기 건물 리모델링을 해야 한다며 마트를 잠시 비워달라고 요구합니다. 김씨는 2008년 9월까지는 임대차 계약기간이 남아 있었기 때문에 별 다른 의심없이 마트 영업을 중단합니다. 그런데 얼마 후 그 자리에 기업형 슈퍼가 들어선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김씨는 건물주를 찾아가 따졌습니다. 건물주는 “대형 유통업체 관계자가 찾아와 보증금 3억에, 월 임대료 900만원을 제시했다”며 “더 이상 김씨와 계약할 수 없다”고 통보했습니다. 김씨는 마트 운영을 접었습니다.

#사례3.

부천시 중동에서 3년 째 편의점을 운영하던 이 아무개씨. 올 해 초 갑자기 건물주가 월 임대료와 보증금을 올려 달라고 요구합니다. 건물주는 “임대차 계약 기간이 만료되는 5월부터 월 150만원의 임대료를 200만원으로 올려주던 지 아니면 나가라”고 통보했습니다. 이 씨는 건물주에게 갑작스럽게 임대료를 올리는 이유가 뭔지 물었습니다. 건물주는 뚜렷한 이야기를 해주지 않았습니다. 며칠 뒤 이 씨는 그의 편의점에서 불과 1미터 떨어진 곳에 기업형 슈퍼가 들어선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 씨는 결국, 권리금 한 푼 건지지 못한 채 4월 말 편의점 문을 닫고 말았습니다.

여러분은 저 세 가지 사례를 보면서 어떤 생각이 드셨나요. 뭔가 일정한 패턴이 보이지요?

상인들의 이야기를 종합해 보면, 대형유통업체들의 골목 진출 전략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뉩니다. 기존 동네슈퍼와 조금 떨어진 곳에 SSM을 열어 경쟁을 벌인 뒤 수개월 안에 상권을 장악하거나, 또는 아예 건물주를 매수해 기존 슈퍼의 자리 자체를 빼앗습니다. 제가 위에 열거해 드린 사례는 바로 이 두 번 째 전략과 관련 있어 보입니다.

전자의 경우는, 그 동안 언론을 통해 몇 차례 소개되어 왔던 내용들입니다. 애초부터 골목 슈퍼들과의 경쟁력에서 상당한 우위를 가진 SSM 들이 상권을 장악하는 전형적인 방법입니다. 또 대형유통업체들이 사업조정제도를 피하기 위해 기존 슈퍼 주인들이 알아차리기 전 기습적으로 영업을 개시해 큰 문제가 되고 있기도 하지요.

그런데 두 번째의 경우는 잘 알려지지도 않았고 문제가 좀 심각해 보입니다. 만약, 상인들의 말이 사실이라면 유통업체들이 자본력을 무기로 건물주를 설득해 코도 풀지 않고 기존 슈퍼를 빼앗아가는 셈이니까요.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상인들의 주장일 뿐입니다. 이 주장의 진위를 제가 직접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지난 해 국정감사에서 조승수 진보신당 의원이 상인들의 이런 주장과 관련해 모 대형 유통업체 대표에게 사실 여부를 물었지만 “사실이 아니다”는 답변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이런 해명 역시 곧이 곧 대로 믿기는 어렵습니다. 저는 얼마 전 대형유통업체와 건물 임대 계약을 맺은 한 건물주를 만난 적 있습니다. 그는 제게 “대형유통업체들이 골목 슈퍼를 쫓아내려고 조직적으로 건물주를 매수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기존의 장사 잘 되는 슈퍼 자리를 얻기 위해 대형유통업체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것 같긴 하다”고 말해주었습니다.

이 건물주는 다음과 같은 경우를 겪었다며 제게 자신의 경험을 간략하게 털어놓았습니다.

어느 날 유통업자 A씨가 마트를 운영하고 있는 상인 B씨가 입주해 있는 건물의 주인 C씨를 찾아옵니다. A씨는 B씨보다 훨씬 많은 임대료와 보증금을 줄테니 B씨가 운영하는 마트 자리를 달라고 C씨를 설득합니다. 건물주인 C씨는 수락합니다. 상인 B씨의 원성을 듣긴 했지만 임대차 계약이 만료되었기 때문에 법적으로 문제될 건 없습니다. 그런데 몇 달 뒤 건물주 C씨는 황당한 경험을 합니다. 자신과 새로 계약했던 A씨가 사실은 대형유통업체 소속의 직원이었습니다. A씨가 운영하려던 마트는 평범한 마트가 아니라 SSM이었습니다. 건물주 C씨는 ‘왜 솔직하게 처음부터 얘기 안했냐’고 A씨에게 물었습니다. A씨는 ‘원래 다 이렇게 비밀스럽게 영업을 시작한다’고 답했습니다. C씨가 손해 볼 건 없었습니다. 조금 황당하긴 했지만 C씨는 그냥 A씨(정확히는 A씨 소속의 대형유통업체)가 B씨 대신 그 자리에서 슈퍼를 운영하도록 내버려 두었습니다. B씨는 자신이 수년 동안 가꾸어 놓은 상권의 슈퍼를 권리금 한 푼 건지지 못하고 포기해야 했습니다.

저는 이 건물주를 설득해 A씨를 만나게 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하지만 건물주는 끝내 제 부탁을 거절했습니다. ‘귀찮은 일에 개입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다만 “이런 식으로 대기업들이 건물주에게 접근해 기존 슈퍼 자리를 빼앗는 것 같다”고 귀띔해줄 뿐이었습니다. 저는 그 이상의 사실 관계를 확인할 수 없었습니다.

▲ 인천시로부터 사업일시정지 권고를 받은 홈플러스 익스프레스 인천 부개점이 17일 영업을 시작하자 인근 상인 1명이 18일 오전 부개점 간판 위에 올라 농성을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만약, 이런 주장들이 모두 사실이라면 이건 좀 심각한 문제입니다. 정부는 기업형 슈퍼와 의 경쟁에서 골목 슈퍼들이 밀리지 않도록 ‘나들가게’ 육성 정책을 펴고 있습니다. 낡은 슈퍼의 리모델링을 도와 기업형 슈퍼에 대항하도록 돕겠다는 정책이지요.

그런데 만약 대형유통업체들이 ‘나들가게’의 자리 자체를 돈으로 강탈해 가버린다면 정부의 정책은 아무런 소용이 없게 됩니다. 낡고 지저분한 골목 슈퍼를 도와줄 터 자체가 사라지는 것이니까요.

실제 제가 세 번 째 사례로 제시한 부천시 중동의 편의점은 나들가게로 리모델링 할 필요도 없는 곳인데 고스란히 가게 터를 빼앗겼습니다. 제가 이 편의점이 문 닫기 전에 직접 방문해 보았습니다. 매우 깨끗하고 장사도 잘 되는 곳이었습니다. 하지만 건물주가 무슨 이유에서인지 갑자기 임대료를 올려주지 않으면 더 이상 계약을 해주지 않겠다고 나왔고, 그 자리에는 올해 5월부터 고스란히 SSM이 들어섰습니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사실 제 능력으로는 더 이상의 추가 취재는 어려웠습니다. 상인들의 주장만 있을 뿐, 대형유통업체에게 ‘비밀 제안’을 받은 건물주를 만날 방법이 없었습니다. 이들은 모두 저와의 만남을 피했고, 대형유통업체 관계자도 저와 만나주지 않았습니다.

이 문제를 속 시원히 밝히기 위해서는 양심적인 건물주의 제보 외에는 딱히 방법이 없어 보입니다. 오늘 이 글을 쓰는 이유입니다. 혹시 대형유통업체로부터 받은 제안을 소상히 밝혀주실 건물주가 계시다면 제게 제보 좀 부탁드립니다. catalunia@hani.co.kr

저는 개인적으로 SSM 자체를 반대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대형유통업체들이 기존 골목 상인들과 상생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일방적으로 전국의 슈퍼가 SSM 으로 대체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자본주의 사회라고 해서 인간의 얼굴을 한 ‘따뜻한 시장경제’를 포기할 필요는 없는 것이니까요.

골목 상인들 다 죽어가기 전에 정부의 진정성 있는 대책이 하루 빨리 마련되어야 할 것입니다. SSM 허가제를 뼈대로 한 유통산업발전법은 수개월 째 국회에 계류된 상태입니다.

지난 겨울. 서울시 가락동에서 편의점을 하고 있던 상인이 근처에 들어선 ‘롯데 슈퍼’ 앞에서 항의 시위를 하면서 외치던 호소가 떠오릅니다.

“왜 대기업이 세계 시장을 개척하지 않고 골목으로 들어옵니까.”

현재 한겨레 방송부문 뉴스팀에서 취재를 하고 있는 기자다.
영상 카메라와 취재수첩을 함께 들고 현장을 누비는 우리나라에서 제일 앞선 멀티형 기자가 돼려고 노력중이다. 우리 사회 경제권력과 정치권력을 감시하는 사명을 놓는 그 순간, 기자가 아닌 단순 직장인이 된다는 생각을 갖고 산다. 그저 그런 기자가 되느니 문제적 기자가 되는 게 차라리 낫겠다고 생각하고 살기도 한다. 한겨레와 한겨레 독자들을 무지지 사랑한다. 개인 블로그 http://blog.hani.co.kr/catalun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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