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의 사법농단 수사가 법원의 잇따른 영장기각으로 진도를 내지 못하는 가운데 사법개혁을 약속했던 김명수 대법원장의 침묵이 길어지고 있다. 사법개혁은커녕 양승태 대법원의 사법농단에 대한 검찰수사를 방해하는 것 아니냐는 의심이 커지는 상황이다. 거기에 최근 벌어진 유해용 변호사(전 대법원 수석재판연구관)의 증거인멸 사실이 알려진 후 사법농단은 더 이상 과거 일이 아니라는 비난이 일고 있다.

유해용 변호사의 증거인멸 사건의 백미는 아마도 몇 번씩 기각하다가 증거인멸 후 압수수색영장이 발부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유 변호사가 검찰에 없애지 않겠다고 서약서까지 썼던 자료들을 모두 없앤 후에야 발부된 영장이었다. 유 변호사는 거꾸로 법원 핑계를 댔다. 유 변호사는 “어차피 법원에서도 범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판단한 만큼 폐기해도 문제가 없을 것으로 생각했다”

입 닫은 김명수 대법원장…개혁 의지 있나? (KBS 뉴스9 보도화면 갈무리)

법원이 미리 면죄부를 준 셈이다. 그러고는 증거인멸 사실이 알려진 후 새삼 수차례 기각했던 영장을 발부한 것이 더 괘씸하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이는 검찰은 물론 사법농단의 더딘 진척에 분통을 터뜨리는 시민들을 놀리는 것 아니냐는 것. 심지어 영장전담판사인 박범석 판사와 유 변호사가 2014년 재판연구관으로 함께 근무했던 사실도 의심의 눈초리를 받을 수밖에 없게 됐다.

사법농단 관련 법원의 영장기각은 이미 논란의 도마 위에 올랐다. 일반적인 영장기각률이 10%인 데 반해 사법농단의 경우 90%에 달한다는 보도에 놀라고,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법원을 지키기 위한 법원의 노골적인 태도에 급기야 증거인멸이라는 사태가 벌어졌고, 현 김명수 법원이 사법농단을 제대로 규명할 의지가 없는 것 아니냐는 심각한 우려를 낳고 있는 것이다.

12일 한겨레신문은 이 사태에 대해 ‘법원이 갈 데까지 갔다’는 제목의 비판 기사를 썼다. 고위법관 출신 익명의 변호사의 말을 인용한 것인데, 판사 출신이 보기에도 그렇다면 그렇지 않은 훨씬 더 많은 시민들 보기에 법원의 ‘사실상 증거인멸 방조’라고 지탄받는 이 상황은 어떻겠는가. 더군다나 유 변호사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법원이 이례적으로 사흘씩이나 미루던 중에 증거인멸이 벌어졌다는 사실에 곱지 않은 시선이 쏠리는 것은 당연하다 할 것이다. 신 사법농단이라는 말이 과하지 않다.

입 닫은 김명수 대법원장…개혁 의지 있나? (KBS 뉴스9 보도화면 갈무리)

검찰이 가만있을 리가 없다.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은 엄중 수사방침을 강조했다.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이러한 증거인멸 행위에 대해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엄정한 책임을 묻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검찰이 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은 것이 법원을 상대로 한 수사라는 점에서 안타깝다는 반응이다.

사법농단 수사 초기 때부터 제기되었던 특별재판부의 필요가 더욱 절실한 상황이지만 이제 와서 국회가 특별재판부 설치에 뜻을 모을 가능성은 없다고 봐야 한다. 대안으로 영장전담합의부 설치가 제기되지만 어차피 현직 판사들로 구성된다면 이 또한 실효를 거둘 가능성은 적다고 보는 편이 맞을 것이다. 한편 더불어민주당 소속 법사위 위원들은 기자회견을 열고 국정조사를 촉구했지만 이 또한 자유한국당 등의 반대에 뜻을 이룰 가능성은 희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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