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유력 보수신문들. ‘받아쓰기’의 진수를 보이고 있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내놓은 방침들을 그냥 열심히 받아만 적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조직개편부터 경제정책 재검토 그리고 자신들도 반대했던 경부대운하에 이르기까지 받아만 쓴다. 인수위가 내놓는 각종 정책과 방침, 공약들이 문제점은 없는지 ‘문제의식’을 갖고 한번 꼼꼼하게 살펴볼 법도 한데 그렇게 하질 않는다. 인수위 쪽에서 대변인을 따로 둘 필요가 있을지 의문이 들 정도다.

정부조직개편·출총제 폐지 … 열심히 받아만 쓰는 조중동

▲ 중앙일보 2008년 1월7일자 1면.
우선 정부조직개편. 인수위는 지난 5일 현행 18개부를 12개나 15개부로 축소하는 방안을 이명박 당선인에게 보고했다. 12개부로 줄이는 경우 재정경제부를 기획재정부로 개편해 기획예산처 금융감독위원회 등의 기능과 조직을 흡수하고, 통일부와 외교통상부를 합치는 것을 뼈대로 하고 있다. 15개부로 줄이는 방안의 경우 ‘12개부’ 안과 유사하긴 하지만 통일부 외교부 농림부 여성부 해양부가 독립부처로 계속 유지되는 것이 차이라면 차이다.

인수위 쪽의 이 같은 방침에 문제없나. 관점에 따라 없을 수도 있고 있을 수도 있다. 때문에 언론의 포인트는 인수위의 정부조직개편 방침이 가져올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쪽으로 맞춰져야 한다. 조중동처럼 인수위 방침을 일방적으로 받아쓸 게 아니라 전문가의 평가와 함께 긍정적인 점과 부정적인 측면을 ‘공정하게’ 반영해야 한다는 말이다. 특히 정부조직개편 가운데 경제부처 조직 개편에 대해선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기대’와 ‘우려’가 동시에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오늘자(7일) 한겨레에 보도된 내용을 잠시 인용한다.

“우선 기획·조정 기능을 일원화해 경제정책의 효율성을 높이겠다는 데 대해선 대체로 수긍하는 목소리가 많다 … 기획·조정 기능의 강화가 현실적으로 거대 부처의 탄생으로 이어지는 데 대해선 우려의 목소리가 훨씬 높다 … 실제로 과거 외환위기가 닥쳐오는 것을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데는 비대한 재경원 조직에 너무 큰 힘이 실려 견제 기능을 상실했기 때문이라는 비판이 있다.”

출자총액제한제 폐지 … 실효성에 눈감은 보수언론

출자총액제한제도(출총제)를 폐지하고 대기업 집단이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할 수 있도록 지주회사 요건을 대폭 완화하기로 한 인수위 방침 역시 마찬가지다. 출총제 폐지 방침을 밝히면서 인수위가 내놓은 ‘입장’은 이렇다.

▲ 조선일보 2008년 1월7일자 1면.
“기업투자를 가로막는 제도는 폐지하되 시장의 자율적인 감시기능을 강화하면 재벌기업의 경제력 집중에 대한 부작용을 최소할 수 있다.”

반박 들어간다. 지난해 11월 기준으로 출총제 적용을 받는 기업은 7개 그룹 25개 계열사다. 출총제로 출자가 불가능한 기업은 2개사에 불과한 실정이다. 그런데 이들 출총제 적용대상 기업들의 전체 출자여력은 무려 37조4000억원에 이른다. 출총제 때문에 투자를 못하고 있다는 기업들의 논리가 엄살임을 이 같은 ‘통계수치’는 단적으로 보여준다. 인수위는 기업들의 이 같은 엄살에 맞장구를 쳐준 셈인데, 이런 ‘콤비 플레이’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 곳은 경향과 한겨레 등 일부 신문에 불과하다.

재벌들의 순환출자를 막기 위해 지주회사 설립요건을 대폭 완화하기로 한 인수위의 방침 역시 실효성 논란에서 벗어날 수 없다. 오늘자(7일) 경향신문이 지적했듯이 국내 주요 재벌그룹 가운데 삼성과 현대·기아차를 제외하고, 이미 대부분의 재벌그룹이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한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지주회사 설립요건을 완화하겠다는 인수위의 방침이 대체 무슨 실효성이 있을까. 당연히 물음표를 쳐야 하는데 조중동, 열심히 받아만 적고 있다.

▲ 경향신문 2008년 1월7일자 1면.
‘받아쓰기 저널리즘’의 전형을 보여주는 조중동

이쯤 되면 조중동이 인수위의 대변지로 나섰다는 말을 들을 법도 하다. 사실 조중동의 이명박 당선인과 인수위에 대한 ‘어정쩡한 태도’는 한반도 대운하 논란이 불거졌을 때 집약적으로 표출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대선 이후 유력 3대 보수지가 일제히 한반도 대운하 재검토를 사설을 통해 주문하고 나섰음에도 이 당선인 쪽에서 강행의지를 밝히자 ‘유야무야’ 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 한겨레 2008년 1월7일자 1면.
사설 통해 ‘한번 질렀으니’ 이제 임무 완수했다는 것일까. 조중동은 현재까지 그런 ‘낮은 수준’의 검증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 같다. 인수위나 당선자 쪽에서 ‘오기’를 부리고 있다고 판단되면 오늘자(7일) 한겨레처럼 기자 ‘풀어서’ 르포 기사 등을 통해 후속기사를 내보내야 하는데 지금까지 태도를 보면 유력 3대 보수신문은 그럴 생각이 없다.

오히려(?) 동아일보는 B6면 <대운하 터미널 예정지 땅값 술렁>에서 이렇게 전하고 있다.

“동아일보가 6일 부동산정보업체인 부동산써브와 공동으로 경부운하 터미널 거론 지역의 부동산 동향을 조사한 결과에서도 토지시장이 술렁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부 지역은 대통령 선거 이후 매도 호가가 70% 가까이 뛰는 등 투기조짐도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터미널 거론 지역의 상당수는 가격 변동이 별로 없고 대체로 조용한 분위기다.”

오늘자(7일) 한겨레와 지난달 28일자 경향신문이 1면에서 전한 내용과는 차이가 크다. 경향신문 2007년 12월28일자 1면 기사를 잠깐 인용한다.

“27일 한국토지공사에 따르면 이 당선자가 한반도 대운하 사업 중 1단계로 추진하겠다고 밝힌 경부대운하가 통과하는 주요 지역의 외지인 토지매입 비율은 전국 평균(31.5%)을 웃돌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낙동갑문에서 출발하는 경부대운하가 조령산맥을 넘어 남한강 줄기와 만나게 되는 충북 충주시의 경우 올해 10월에 거래된 1674필지의 토지 가운데 절반가량인 814필지(48.6%)가 충북지역 주민이 아닌 외지인들이 매입한 것으로 드러났다. 또 경부대운하가 통과하는 경북 상주시도 올해 10월에 거래된 토지 768필지 가운데 336필지(43.8%)를 외지인이 사들였고, 문경시에서 거래된 470필지의 토지 중 232필지(49.4%)도 외지인의 소유로 넘어갔다.”

▲ 한국일보 2008년 1월7일자 2면.
‘반시장·반기업적인’ 방침도 이명박 당선인이 한다면 괜찮다?

경부대운하가 건설될 경우 막대한 토지보상비와 부동산 개발이익이 지역주민들보다는 외지의 투기세력에 돌아갈 가능성이 그만큼 커질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경향신문 기사는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사실 조중동 입장에서 가장 크게 문제 삼고 나서야 하는 건 인수위 쪽에서 내놓은 이동통신 요금 인하와 신용불량자 대사면과 같은 ‘정책’들이다. 이동통신 요금 인하에 정부가 왜 이래라 저래라냐, 이게 친기업 정부를 표방한 인수위 쪽에서 할 일이냐며 대들어야 마땅한데 어떤 일인지 별다른 말이 없다. 오늘자(7일) 중앙일보가 본지가 아니라 경제섹션에서 ‘부드럽게’ 한 마디 하는 정도다.

신용불량자 대사면 역시 마찬가지. 정부 예산까지 동원해 720만 신용불량자를 ‘대사면’하겠다는 인수위 쪽의 방침에 ‘절대불가’ ‘결사항전’을 외쳐야 하는데 오늘자(7일) 조선일보처럼 경제셕션에 ‘슬쩍’ 한마디 걸치고 넘어가는 수준이다. 나중의 비판을 감안해 ‘우리 나름 문제제기했어’를 위한 알라바이성(양문석 언론연대 사무총장은 이를 알리바이 저널리즘이라고 규정했다) 보도 성격이 짙다.

오죽했으면(?) 한국일보가 오늘자(7일) 기자칼럼을 통해 인수위와 당선자 진영을 비판하고 나섰을까. 조중동은 인수위 출범 이후 ‘친여지’를 자임하고 나서려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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