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소원은 통일” 한때는 이 노래를 부르는 것만으로도 벅찬 감동에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지난 시절의 일이다. 물론 아직도 이산가족들이라든지, 유독 통일에 강한 의지를 가진 사람이라면 다를 수 있다. 그러나 아쉽게도 우리 주변에 그리 강렬한 통일주의자를 찾아보기란 어려운 시대가 되었다. 지난 평창 동계올림픽 때 남북 단일팀 결성에 쏟아진 젊은층의 반발은 상징하는 바가 컸다.

세대가 변화하고 거기다가 너무 오랜 분단은 우리를 통일의 당위로부터 점점 멀어지게 한 것만 같다. 물론 통일이 불편한 국내외 세력들의 존재에 지레 겁을 먹어야 했던 사실도 모른 체할 수는 없다. 통일비용 논란은 그렇게 쌓여온, 우리 속의 분단인자를 웃자라게 한 것도 크다. 그러나 한 가지 몰랐던 것이 있다.

MBC 스페셜 ‘방송의 날 특집 6개월 후 만납시다 : 북한 결핵병원 이야기’ 편

북한은 꼭 통일이나 혹은 분단의 대상일까? 갈라져 수십 년, 북쪽은 군사력으로, 남쪽은 경제력으로 크게 성장했다. 그러는 과정에서 남과 북 모두가 서로 다른 사정으로 잃고 있는 것도 분명 존재할 것이다. 우리가 잃은 것 중 가장 큰 것은 무엇일까. 그것 중 하나에 대해서 진지한 고민을 안겨준 것이 MBC에서 방영된 북한 결핵병원 다큐멘터리였다.

한 청년이 있었다. 얼핏 봐도 20대로 혈기왕성한 나이다. 그러나 그는 혼자서는 서지도 못했다. 키 169cm에 체중은 고작 43kg에 불과했다. 다제내성결핵(MDR-TB·중증결핵) 때문이겠지만, 북한의 식량난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그 후 봉사단이 다시 병원을 찾았을 때 그 청년이 홀로 서고, 걷는 것을 보았다. 체중도 52kg으로 아직 충분치는 않아도 청년다운 모습을 조금씩 되찾아가고 있었다.

MBC 스페셜 ‘방송의 날 특집 6개월 후 만납시다 : 북한 결핵병원 이야기’ 편

그러나 봉사단이 늘 이런 희소식만 접하는 것은 아니다. 봉사단은 6개월 간격으로 북한을 방문한다. 환자들에게 나눠줄 약을 한 번에 충분히 가져다줄 수도 없거니와 적어도 6개월에 한 번은 환자들을 직접 진료해야 하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그 6개월 만의 방문이 언제나 가능한 것은 아니었다고 한다. 당연히 정치문제이다. 자기 전까지는 매시간 약을 먹어야 하는 사람들에게 몇 달씩 혹은 그 이상 약이 공급되지 않는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좋을 것이다. 또한, 이들의 노력에도 결국 치료를 할 수 없어 병원을 나가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그리고 다큐가 보여준 한 장면은 그냥 흘려보낼 수 없는 의미를 전달해준다. 북한 결핵병원에서 사용하는 엑스레이 기계는 얼핏 보아도 어디 박물관에나 있어야 할 정도로 낡았다. 봉사단은 기계가 낡았다는 낙후의 문제가 아니라 그것을 아직까지 사용하는 북한의 관리능력을 치켜세웠지만, 팩트는 그걸로는 난치병 환자들에 대한 진단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봉사단은 남한으로 돌아와 엑스레이 기계를 콘테이너에 실었다 다시 내려야만 했다. 다큐가 그 이유에 대해 상세하게 설명하지는 않았지만 대북제재문제 때문일 것이라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다.

이들 봉사단을 이끄는 인세반 회장은 한국말을 유창하게 사용하는 미국계 한국인이다. 20여 년간 북한 결핵환자를 돕고 있는 그는 “어떤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나서 이 환자들이 6개월 후에도 모두 살아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라고 했다. 그의 말에는 북한 결핵환자들에 대한 그의 애정과 절망이 담겨 있다. 그리고 중요한 또 하나의 말. “질문이 있으면 6개월 후에 할 수 있어요”라는...

MBC 스페셜 ‘방송의 날 특집 6개월 후 만납시다 : 북한 결핵병원 이야기’ 편

남한의 의사들은 불친절하다. 그렇지만 적어도 자주 만날 수는 있다. 게다가 최신 의학에 대한 경험과 지식이 풍부하다. 반면 북한의사들은 매우 헌신적이라는 인상을 준다. 그러나 국제교류가 차단된 그들에겐 지식도, 약도 부족하다. 그래서 봉사단의 더 잦은 방문이 절실하다. 의사나 어떤 환자가 질문을 하고 싶을 때 적어도 ‘당장’은 아니더라도 6개월은 너무 길지 않은가. 그 6개월을 3개월, 1개월 아니 전화로도 할 수 있는 환경의 변화가 필요하다.

한국계 미국인인 석혜인 감독이 2년여 동안 북한을 방문해 기록한 ‘북한 결핵병원 이야기’는 감정을 빼려는 독한 노력이 역력했다. 그래서 꽤나 충격적인 사연과 장면들을 감정적 요동 없이 끝까지 지켜볼 수 있었다. 그러나 후에 남는 인상은 시간으로 희석되지 않을 무거운 반성이 되었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의 3차 남북정상회담이 곧 열리게 된다. 시급하고 무거운 어젠다들이 산적해 있지만 사람을 살리는 일을 결코 작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정부차원의 관심과 지원이 시급하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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