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핵은 결핵균(Mycobacterium 미코박테륨)에 의해 감염되는 질환이다. 기원전 7천년 경 석기시대 화석에서 발견됐을 정도로 오래된 질병이며 가장 많이 인류의 목숨을 앗아간 질병이기도 하다. 결핵 환자에게서 나온 미세한 침방울 혹은 비말핵(기침이나 재채기를 하면 결핵균이 들어있는 입자가 공기 중으로 나와 수분이 적어지면서 날아다니기 쉬운 형태로 된 것)에 의해 감염된다.

하지만 감염된다고 해서 모두 결핵에 걸리는 건 아니다. 대개 접촉자의 30%가 감염되며, 그중 10%가 결핵 환자가 되고 나머지 90%는 건강하게 지낼 수 있다. 발병하는 사람들의 경우 감염 내 1~2년 내 발병하고, 나머지는 잠복해 있다가 면역력이 저하되는 때에 발병하게 된다. 그러기에 결핵의 발병에는 면역력이 약화되는 조건, 즉 영양 부족 등의 상황이 주요한 변수로 작용한다.

북한의 경우, 생활고로 인한 영양의 부족으로 결핵 감염률이 높다. 인구 10만 명 당 결핵 환자가 550명으로 세계 최고 수준이다. 하지만, 이런 통계조차도 정확하지 않다. 심각한 건 기존 결핵 약에 내성이 생겨 치료가 어려운 슈퍼 결핵, 다제내성결핵 (Multi Drug Resistant Tuberculosis, MDR-TB)환자가 6000여 명에 이르고 있다는 사실이다.

9월 3일 방송의 날 특집으로 방영된 <MBC 스페셜>은 이 '다제내성결핵'을 치료하기 위해 6개월에 한 번씩 북한을 방문하는 유진벨재단의 여정을 그린다.

미국과 남한, 그리고 북한이 함께하는

MBC 스페셜 ‘방송의 날 특집 6개월 후 만납시다 : 북한 결핵병원 이야기’ 편

이 여정을 함께한 사람들은 각별하다. 우선 이 다큐는 북한 출신의 외조부모를 둔 미국 국적의 석혜인 감독의 <OUT OF BREATH> 한국어판이다. 봉사단과 함께 2년에 걸쳐 북한을 방문하여 완성된 다큐는 이미 일본에서도 방영되었고, 조만간 영국에서도 방영될 예정이다. 외조부모가 북한 출신이라지만 북한을 떠난 이후로 단 한번도 다시 고향 땅을 밟아보지 못했던 분들, 그래서 북한에 대해서는 관심조차 없었던 '이방인' 석 감독의 눈으로 본 북한, 그리고 봉사의 여정은 담담하고 객관적이다.

그녀의 눈에 비친 북한은 그녀가 보았던 1950년대 남한의 풍경과도 같다. 민둥산 비포장 도로, 그곳을 달려 도착한 곳은 함경도 시골 마을. 그곳에 북한의 결핵 요양원이 있다. 하지만 말이 요양원이지 수용시설에 가까웠다. 일반 결핵 환자들을 위한 약이 있을 뿐, 다제내성결핵 환자들에 대한 치료는 엄두도 내지 못하는 곳이다. 그나마 약이라도 있으니 다행이다. 말이 뢴트겐이지, 작동되는 자체가 기적이라 할 폴란드에서 1950년대 제작된 기계가 환자들의 X선 촬영을 담당하고 있다.

그곳에서 북한 사람들이 ‘주적’이라 여기는 미국인이 유창하게 북한 사람들에게 '동무'라며 자신들의 방문에 대해 소개를 한다. 스티브 린튼 박사, 한국에 왔던 선교사의 자손. 그는 성경을 손에 들고 온 할아버지처럼, 성경 대신 결핵 약을 바리바리 싣고 북한 함경도 골짜기를 찾았다. 세계보건기구(WHO)에서 다제내성결핵 치료 지침서를 작성한 전문가이자 세계적인 결핵 전문의 한국계 미국인 승권준 박사도 함께한다. 일행은 봉사단의 북한행을 '외계와의 조우'에 빗댄다. '아무 것도 없다'란 전제 하에 그곳에서 봉사를 펼칠 '모든 것'을 준비해 가야 하는 여정. 그곳엔 숨쉬기조차 힘들어 하면서도 기꺼이 쉽지 않은 치료에 합류하고자 하는 환자들이 있다.

봉사단이 아니면 불가능한 치료, 그러나 쉽지 않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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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 169센티, 하지만 몸무게는 46kg에 불과한 김태성 씨. 그는 묻는 말에 대답하기조차 숨차한다. 휠체어에 실려 온 젊은 청년은 잠시 몸무게를 재기 위해 홀로 서는 것도 쉽지 않다. 아내가 끄는 리어카에 실려 먼 길을 온 중년의 환자도 있다. 그들은 모두 '포기된' 사람들이었다. 심각한 건 환자를 건사하다 가족들이 감염되어 아빠와 어린 딸, 엄마와 어린 아들이 함께 찾아오는 사례이다. 마치 권정생의 동화 <몽실언니>에서 어머니 북촌댁의 폐결핵을 전쟁 통에 끼니조차 챙기기 힘들던 몽실언니의 동생 난남이가 이어받듯이 말이다. 그래서 승권준 박사는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옮기는 결핵이 가장 치료하기 힘들고 어려운 질병이라 말한다. 그렇게 갖가지 증상과 상태로 모인, 기존의 결핵약으로는 치료가 더 이상 불가능한 다제내성결핵 환자들. 그들에겐 진단을 위한 객담 조사조차 버겁다.

봉사단은 북한의 결핵 전문가, 그리고 현지 의료진과 함께 환자들의 실태와 상태 조사부터 시작한다. 전기조차 여의치 않은 요양원의 처지로 인해 발전기까지 구비해야 하는 진료 과정, 그 과정은 늘 예기치 않은 변수와의 실랑이이다. 하지만, 그 변수들을 극복해내며 봉사단이 애를 쓰는 건 바로 북한 내에서는 약조차 구할 수 없는 다제내성결핵 환자들에 대한 치료와 교육이다.

봉사단이 약을 가져가지만, 약만으로 모든 것이 해결되지 않는다. 기존 결핵 약으로 치료가 되지 않는 다제내성결핵을 치료하기 위한 약은 치료만큼 '독성'도 강하다. 우울증이 생기기도 하고, 청력을 잃을 수도 있고, 신부전의 부작용이 생기기도 한다. 약 자체를 먹는 것이 힘들다. 그래서 환자들이 그 어려운 투약과정을 이겨낼 수 있게 만드는 '정신 무장'도 방문단의 주요한 일정이다. 하지만 이 여정은 '6개월 후에 만나요'라는 기약할 수 없는 인사를 남겨야 하는 안타까운 여정이다.

6개월, 하지만 기약할 수 없는

MBC 스페셜 ‘방송의 날 특집 6개월 후 만납시다 : 북한 결핵병원 이야기’ 편

이 봉사단의 여정을 기약할 수 없는 이유는 두 가지이다. 그중 중요한 건 요동치는 한반도의 정세이다. 그저 치료받지 못한 결핵 환자들을 돕고자 하는 이 인도주의적 여정은 언제나 남북한의 정치 정세에 가장 민감한 영향을 받는다. '무슨 충돌이 있더라도 환자는 같이 살리자.' 그래서 '성숙된 인도주의 정책'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스티브 박사는 강변한다.

그 다음은 6개월에 한번이라는 이 상시적이지 않은 인도주의적 봉사가 북한의 환자들에 대한 지속적인 보살핌을 할 수 없도록 만든다는 것이다. 6개월 후에 꼭 봤으면 좋겠다고 했지만, 그곳을 떠나는 봉사단을 그 말이 얼마나 기약할 수 없다는 걸 안다. 분명 차도가 있고 열의가 있던 환자였지만, 봉사단이 6개월 후에 그곳을 찾았을 때 그 환자가 유명을 달리하거나, 더는 효험을 기대할 수 없는 상태가 되어 있기도 하다.

그래서 요양원을 떠나는 사람들은 두 부류이다. 더는 이곳에서도 치료의 기대를 할 수 없어, 혹은 스스로 치료를 포기하여 떠나는 사람들이 눈물을 흘리며 떠나는가 하면, 어려운 치료 과정을 거뜬히 이겨내고 건강인으로 다시 사회에 복귀하는 경우이다. 그들은 모두 오래오래 건강하게 살라는 종이학 목걸이를 걸고 그곳을 떠난다. 몇 번의 방문에서 정이 든 봉사단은 완치가 못되어 떠나는 이들에겐 포기하지 말라는 간곡한 인사와, 건강해서 떠나는 이들에겐 앞날의 행복을 기원하며 그간의 정을 다한다.

MBC 스페셜 ‘방송의 날 특집 6개월 후 만납시다 : 북한 결핵병원 이야기’ 편

다시 돌아온 남한, 봉사단은 다시 분주하게 자신들의 인도주의적 봉사를 위한 도움을 요청하고, 북한의 환자들을 위한 약과 의료 기기를 준비하고 그들의 방문에 맞춰 서둘러 보내고자 한다. 하지만 여전히 방북이 쉽지 않은 상황, 인도주의적 봉사의 여정은 갈 길이 멀다. 현재 북한의 결핵 환자는 해마다 4만5천 명 규모로 발생하는 상황, 공식적으로 집계된 환자수는 11만 명. 하지만 이 공식 집계는 비공식적 집계의 10%에 불과하다는 주장도 있다. 해마다 2백만 명 가량이 결핵으로 사망하고, 그중 상당수가 어린이와 청소년이다.

어린 시절 해마다 크리스마스 때면 크리스마스 씰이라는 기념우표를 샀던 기억이 있다. 그 크리스마시 씰을 처음 발행한 사람은 1928년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결핵 요양소를 세운 캐나다의 선교사 셔우드 홀이다. 그렇게 남한의 결핵 퇴치에 앞장섰던 선교사들처럼, 그들의 후예들은 여전히 북한의 결핵 퇴치와 치료에 힘쓰고 있다. 유진벨재단의 스티븐 역시 그런 사람이고, 그의 활동은 그의 선인들의 활동과 다르지 않다. 이제 북한 결핵 봉사에 대해서도 다른 어떤 상황이 아니라 ‘인도주의적 관점’으로 접근해야 할 때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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