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 KBS 9시 뉴스가 단독 보도한 국회의원 연구단체의 활동은 크나큰 충격을 줬다. 이들 연구단체들 중에서 ‘우수단체’ 대부분이 표절과 짜깁기한 보고서로 예산을 축내왔던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무려 10년간 114억 원이 이들 단체에 지원됐다. 도덕적으로 절대 용납할 수 없는 표절·짜깁기 보고서에 국민혈세가 녹아버린 것이다.

KBS 탐사보도부는 지난 10년간 제출된 국회의원 연구단체의 보고서 152건을 분석했다. 표절 프로그램을 통해 1차 검증을 하고, 논문 컨설팅 전문업체를 통한 교차검증으로 객관성을 확보했다. 그 결과는 참담했다. 전체의 2/3가 표절과 짜깁기로 구성된 부실 보고서였다.

더 충격적인 것은 이런 부실 보고서들로 우수단체 선정이 이루어졌다는 사실이다. 도대체 ‘우수’의 기준이 무엇이었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국회의원 연구단체는 하루도 다툼 없이 지나는 일이 없는 국회에서 보기 드물게 초당적 구성을 자랑한다. 우수단체의 ‘우수’가 실체보다 친목에 의해 결정됐을 거라는 합리적 의심이 가능하다.

[탐사K/단독] 예산 114억 쓴 ‘국회의원 연구단체’…보고서는 표절·짜깁기 (KBS 뉴스9 보도영상 갈무리)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국회의원 연구단체는 해마다 60여 개가 늘어난다고 한다. 누군 주고 누군 안 줄 수 없는 나눠먹기식 우수단체 선정일 가능성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 관행 속에서 바쁘신 국회의원들이 보고서를 진지하게 만들 이유를 찾지 못했을 것이기도 하다.

그보다 더 최악인 것은, 이번 KBS가 고발한 국회의원 연구단체 보고서의 실상은 소위 전체의 20%에 해당하는 우수단체의 현황이라는 것이다. 우수단체에 선정되지 않은 더 많은 80%의 경우는 검증조차 되지 않았다. 그 모두를 전부 분석하고, 검증한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 알 수 없다. 차라리 하지 않고 모르는 편이 속이 편할 일이 될 것도 분명하다.

이런 말뿐인 우수단체에 들어간 예산이 114억 원이었다. 그중 절반이 국회 특수활동비였다. 돈이 돈도 돈이지만 더 무게를 두어야 할 것은 도덕성의 해이다. 국가와 국민의 운명을 결정하는 입법과 정부 감시 역할을 이토록 비도덕적 집단이 맡고 있음에 소름이 돋을 지경이다. 그것도 모자라 국회의원들의 자화자찬은 한심하다 못해 끔찍한 수준이었다. 이들 국회의원 연구단체에 전하는 동업자의 칭찬은 비극에도 웃을 수밖에 없는 블랙코미디 그 자체였다.

[탐사K/단독] 예산 114억 쓴 ‘국회의원 연구단체’…보고서는 표절·짜깁기 (KBS 뉴스9 보도영상 갈무리)

지난 2월 박주선 전 국회부의장의 말이다. “내실 있는 연구보고서가 눈에 띄는 것이 많이 있더라는 말씀을 주시면서 역시 국회의원들은 다르구나”라고 했다. 물론 할 일 많은 국회 부의장이 해당 보고서들을 직접 읽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국회에 수두룩한 국회의원 연구단체의 실체를 모를 리 없는 다선의원이라면 이는 국민 기만행위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렇듯 또 다시 국회의원들의 추한 민낯이 백일하에 드러났지만 누구 하나 사과하는 사람이 없다. 누워서 침 뱉기가 될 테니 비판하는 국회의원도 없다. 이런 현실을 보고도 분노하거나, 하다못해 부끄럼을 느끼는 의원 한 명이 없다는 것이 더욱 참담하다. 계류법안이 1만여 건을 넘겨도 세비는 꼬박꼬박 챙겨가는 분들이니 부끄럼을 기대한다는 것 자체가 무리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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