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사람에게 총구를 겨눠야 하는 운명. 그리고 연인의 총구 속으로 들어선 남자. 이제는 돌이킬 수 없는 길을 걷게 된 애신과 유진의 운명은 서러워질 수밖에 없다. 결코 함께 행복해질 수 없는 운명을 타고 난 그들에게 사랑은 죄악이다.

어느 쪽도 아닌 남자;
서글퍼지는 세 남자, 풍전등화 같은 조선과 함께 흐르는 이들의 운명

사라진 김용주의 행적은 찾았다. 무당집에 숨어 있을 것이란 확신 속에서 구동매 부하들이 나서 한성 모든 무당집을 확인해 찾아냈다. 모두의 원수인 김용주는 붙잡혔다. 그렇게 유진은 자신이 죽을 수도 있는 길을 찾아 떠났다. 그가 찾은 곳은 바로 황은산의 거처였다.

의병 대장이 바로 황은산이고 어떻게 조직되었는지 유진은 이미 파악하고 있었다. 군인으로 평생을 살았던 그에게 의병은 쉽게 파악될 수 있었다. 그리고 의병 조직이 자신을 노리고 죽이려 한다는 사실은 이미 들었다. 저격도 당했었다. 그런 점에서 이 길은 자신이 죽을 수도 있는 발걸음이었다.

tvN 주말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

황은산은 잔인하게도 애신을 불러 유진을 저격하라고 지시했다. 애신이 유진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고 있었다. 그런 점에서 잔인하다. 그런 황은산의 요구에도 애신은 총을 들었다. 아무리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이라 해도 조국을 위해서라면 뭐든 할 수 있었다.

죽음을 무릅쓰고 그 길을 걸어 온 남자, 죽일 수도 있음을 알면서도 사랑하는 사람에게 총구를 겨눈 여자, 그리고 그런 그 남자에게 다시 한 번 살 수 있는 기회를 준 남자. 그렇게 지독하게 추운 겨울 언 강을 건넌 남자는 살아서 돌아갔다.

의병을 배신한 김용주를 산 채로 넘긴, 조선인도 미국인도 아닌 경계인 유진은 그렇게 돌아섰다. 어린 자신을 구해주었던 황은산. 그렇게 그를 위해서 뭐든 해주고 싶었던 유진은 조선인이 아닌 미국인이라며 내쳐졌다. 암살 명령까지 내려 자신을 죽이려 한 상황을 누구인들 이해할 수 있을까?

황은산은 선택했다. 자신 앞에 있는 미국인이자 조선인인 최유진을 죽일 수 없다는 것을 말이다. 미국은 유진을 조선인이라 하고 조선은 그를 미국인이라 한다. 그 어느 길도 쉽게 선택할 수 없게 하는 현실에서 유진은 자신의 길을 선택했다.

경계에 선 그는 다시 또 조선을 달려 도망치지 않겠다고 했다. 어린 시절처럼 두려움에 쫓기듯 조선을 떠나지 않겠다는 말은 유진이 풍전등화의 조선에서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키겠다는 의미와 같다. 그 서글픈 다짐을 황은산이 모를 리 없다. 어린 나이에 추노꾼에게 쫓기며 삶을 갈구하던 유진이 돌아왔다. 그리고 선의로 자신들을 도우려 했던 사실을 뒤늦게 안 황은산이 할 수 있는 일이란 많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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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진을 죽이라 명령했던 이정문은 황은산의 요청으로 명령을 거둬들였다. 배신자 김용주를 잡아 건넨 남자를 애써 죽일 수도 없다. 그렇게 다시 유진과 마주한 이정문은 무관학교 교관 자리를 제안했다. 황제의 요청에도 거부했던 유진이 이를 받아들인 것은 오직 하나였다. 애신 때문이었다.

요청을 받아들이면 뭐든 들어주겠다는 이정문에게 작은 야산 하나를 달라는 유진. 그가 그 작은 야산을 요구한 것은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었다. 다시 태어나 꽃이 되고 싶다는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유진은 그것이면 족했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구할 수 있다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할 수 있는 이가 바로 유진이다.

"조선 놈도 일본 놈도 아닌 놈들이 결국 일본의 약점이 된다"

이완익의 운명은 하야시 공사가 구동매에게 건넨 발언 속에 있었다. 외부대신이 되고 싶어 온갖 악행을 서슴지 않았던 이완익은 그렇게 자신이 원하던 자리를 얻었다. 자신의 이익에만 눈이 먼 이완익의 탐욕은 채워지려는 순간 깨어질 수밖에 없다.

유진과 마찬가지로 이완익 역시 그 어느 쪽도 아닌 존재다. 일본인도 조선인도 아닌 이완익은 스스로 경계인이기를 원했다. 그리고 그 경계에서 철저하게 자신의 이익만을 쫓는 이완익을 바라보는 하야시의 시각은 명확했다. 이완익과 같은 존재는 결국 일본에게도 약점이 될 수밖에 없다는 말이 그의 최후일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구동매는 유진에 의해 목숨을 건졌다. 유진은 자신만이 아니라 애신과 희성도 그를 구하기 위해 노력했다는 말을 건넸다. 그 고마움을 어떻게 갚아나갈 수 있을지 고민하겠다는 동매의 마음은 결국 그가 어떤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지 잘 보여준다.

전혀 어울리지 않는 그래서 더 서글퍼지는 유진과 동매, 그리고 희성이 꽃잎 날리는 길 위에 서서 꽃 이야기를 하는 모습은 낯설다. 도원결의를 하던 그들처럼 혹은 애신의 아버지와 동지들처럼 그 앞에 섰지만 그들에게 결의라는 대단한 행위는 없었다. 하지만 그들은 이미 한 길을 걷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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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신을 향한 세 남자의 마음이 같은 길을 걷게 만들었다. 조선을 증오해 미국인이 되고 싶었던 유진, 조선을 증오해 일본인이 되고 싶었던 동매, 조선의 할아버지가 증오스러워 조선을 떠났던 희성. 그들이 모두 비슷한 시기 조선으로 들어와 한 여자를 사랑하게 되었다. 그 지독한 운명 속에서 이들은 그렇게 의도하지 않는 동지가 되어가고 있었다.

유진은 애신과 황은산을 지키기 위해 이정문의 무관학교 교관 자리 요구를 받아들였다. 구동매는 이완익을 무너트리기 위해 하야시 공사와 손을 잡았다. 그리고 하고 싶은 일이 없어 룸펜을 자처했던 희성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찾았다. 신문사를 차리겠다는 희성까지 이들 셋은 모두 애신과 조선에 모든 것을 던졌다.

애신을 더는 이렇게 둘 수 없었던 고 대감은 혼사를 서둘렀다. 하지만 이런 움직임은 격한 반응을 불러왔고, 애신은 자신이 결코 희성과 혼사를 치를 수 없다며 다른 사람을 마음에 품고 있다는 말까지 했다.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애신의 행동에 분노한 고 대감이 원하는 것은 마지막 핏줄인 애신이 천수를 누리며 편하게 살기를 바라는 것 외에는 없다.

두 아들을 먼저 보내고 이제 남은 애신마저 의병 활동을 하는 현실. 이해하지만 받아들이기 어려운 현실로 인해 고 대감은 힘겹기만 하다. 그렇게 혼사를 하지 않겠다며 무릎을 꿇은 애신 옆에 함께 무릎을 꿇은 희성은 나쁜 짓을 하겠다는 말을 했다.

아버지가 보낸 '납채서'를 들고 그가 애신의 집을 찾은 것은 분명한 의도가 있기 때문이다. 애신 옆에 나란히 무릎을 꿇은 희성의 그 선택은 어떤 결과를 가져올까? 누구보다 애신을 사랑하는 희성의 독한 선택은 결국 그녀를 가지겠다는 의미는 아닐 것이다.

세 남자는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일을 찾기 시작했다. 그 길은 모두 애신이 행복해지기 원하는 선택이었다. 비록 조선을 구하겠다는 대단한 사명감은 없었지만 그렇게 그들은 의도하지 않은 의병과 같은 존재가 되어갔다. 그래서 더 현실적인 <미스터 션샤인>은 이제 본격적인 이야기 속으로 들어서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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