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는 그저 드라마일 뿐이다. 하지만 드라마에는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이 담긴다. 아무리 다양한 장르의 색다른 소재를 사용해 이야기를 한다고 해도 현실과 동떨어진 드라마는 존재할 수 없다. 막장극도 웰메이드도 현실에 바탕을 두고 시청자와 긴밀하게 소통을 한다.

시대착오적, 젠더 감수성 찾아볼 수 없는 이야기의 연속

과거와 미래를 오가는 이야기는 특별하지 않다. 미래 사회를 표현하기 어려워 드라마 속 시간 여행은 근 과거로 가는 경우가 많다. 크게 배경에 돈을 쓰지 않고 시간 여행으로서 재미를 느끼게 하는 장치이니 말이다. 그런 설정 자체는 문제가 될 수 없다.

왜 과거로 돌아가거나 현재를 바꾸려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중요하다. <아는 와이프>는 신기하게 남자 주인공인 차주혁이 현실을 바꿔보기 위해 꿈만 꾸었던 상상의 세계를 직접 경험하는 방식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 모든 것은 불가능한 현실이라는 점에서 충분히 감안하고 볼 수 있는 정도는 되었다.

tvN 수목드라마 <아는 와이프>

차주혁의 현실은 은행 직원이지만 억척스런 아내 서우진과 두 아이로 인해 자신의 삶이 존재하지 않는 소시민의 모습이었다. 작은 사치인 게임기로 게임을 하는 것도 허락되지 않을 정도다. 얼마 되지 않은 용돈을 모으고 모아 중고게임기를 사서 행복해 하던 차주혁의 모습에 무한 공감을 한 이들도 많았을 것이다.

직장에서 집에서 쌓인 스트레스를 게임으로 풀어내고자 하는 그 마음을 이해 못할 것은 없으니 말이다. 이는 차주혁의 시점에서 가지는 고민이다. 하지만 아내 서우진의 시각으로 보면 차주혁의 고민 그 이상이다. 어린 나이에 결혼해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두 아이를 키우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다. 하지만 남편의 월급만으로는 생활비와 양쪽 집안의 부모에게 용돈을 드리는 것도 쉽지 않다. 그렇게 서우진은 두 아이를 키우면서도 일을 한다. 피부 미용실에서 여유 있는 여성들의 온갖 조롱을 받아내며 일하는 그녀에게 육아는 힘겨움으로 이어질 뿐이다.

독박 육아다. 남편은 퇴근 후 제대로 집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온갖 핑계들이 존재하니 말이다. 그렇게 술에 취해 집에 들어오면 아이가 잠에서 깬다며 조용하라고 외치는 아내만 있다. 남편 입장에서 왜 자신을 이해해주지 못하고 구박하느냐고 주장할 수는 있다.

tvN 수목드라마 <아는 와이프>

우진은 남편의 쥐꼬리만 한 월급으로 살기 힘들어 밖에서 일하면서 아이들 육아와 집안일까지 모두 해야만 한다. 그런 상황에서도 남편이라는 자는 자신에게 제대로 된 밥도 해주지 않는다고 성질을 낸다. 그런 상황이 일상이 되어 더는 참을 수 없는 상태가 되어 큰 목소리를 내고 과격한 행동을 하기도 하는 것은 그녀가 이상한 것이 아니다.

모든 상황은 그렇게 위기로 몰아넣었고, 이를 회피하기 위해 남자는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그것도 모자라 자신의 삶 자체를 바꿔버렸다. 왜 이 상황에서 아내인 우진은 능동적으로 바꾸지 않았을까?

고등학교 졸업도 하기 전에 사고로 아버지를 잃었다. 갑작스런 아버지 부재로 인해 재수를 해야 했고, 공부에 집중할 수 없을 정도로 집안 사정이 어려워 알바도 해야 했다. 이런 상황에서 자신에게 큰 힘이 된 것은 지금의 남편 주혁이었다. 버스에서 성희롱 하던 남자를 잡는 것을 도와주고, 과외 선생님이기도 한 그와 사랑했고 그렇게 부부가 되었다.

가난한 두 사람이 만나 열심히 살았다. 두 아이를 낳고 평범하게 살아가던 그들의 삶은 언제나 불안했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었고, 두 아이를 키우는 것도 쉽지 않다. 퇴근 후 아이들을 돌봐주는 자상한 남편도 아니다. 집안일을 함께하는 남편도 아니다.

tvN 수목드라마 <아는 와이프>

이런 상황에서 홀로 사는 엄마가 이상해졌다. 치매 증세가 의심되어 남편에게 이야기해보려 해도 관심이 없다. 기회를 놓친 상태에서 엄마는 치매 환자가 되었다. 독박 육아에 홀로 집안일을 하고, 그것도 모자라 밖에 나가 돈도 벌어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남편은 도와주지도 않고 이해하려 하지도 않는다. 모든 것을 내던지고 현실을 바꾸고 싶은 간절함은 차주혁보다는 서우진이다.

서우진이 변화의 중심이 되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쉽지 않았을 것이다. 이 드라마가 난관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는 아내 우진의 변화가 아니라 남편 주혁의 변화를 꾀한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이다. 우선 아이를 버릴 수 없다. 절대 무슨 일이 있어도 아이를 버릴 수 없는 것이 모정이다. 가정을 지키고자 하는 엄마의 힘은 그렇게 남편보다 간절하다.

남자의 삶을 작가는 비난하고 싶었던 것일까? 현실을 도피해 얻은 새로운 삶에는 부잣집 외동딸이자 짝사랑하던 이혜원과의 꿈같은 삶이 있다. 하지만 예쁘고 우아한 아내와 멋진 집에서 사는 것도 하루이틀일 뿐이다. 운명처럼 우진과 다시 만나자마자 주혁은 혜원과 사는 삶이 지겹다고 느끼기 시작한다.

자신이 경험하지 못한 우진의 색다름에 이끌려 다시 그녀에 대한 집착이 커지는 과정은 기이하다. 어린 나이의 우진과 결혼했으니, 그녀가 결혼하지 않았다면 어떤 삶을 살았을지 주혁은 알 수 없다.

주혁의 간절함이 만든 현실 속에서 '아는 와이프'가 된 우진에게 다른 마음을 품는 것은 외도다. 혜원은 모든 것을 다 가진 듯하지만 인형과 다를 바 없다. 어린 남자가 돈만 보고 접근해도 이를 알아차리지 못하고 사랑이라 착각한다.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도 좋지 않다. 어울리지 못하고 그저 돈에 휩싸인 여자로 정형화된 혜원은 최악의 캐릭터다.

tvN 수목드라마 <아는 와이프>

혜원이라는 수동적이고 무지한 캐릭터는 여성 비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형적인 남성 사고 체계에서 등장하는 가상의 피상적 존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니 말이다. 과거 남성적 사고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아는 와이프>는 그래서 답답하게 다가온다.

아는 아내가 친구와 사랑을 시작하자 분노한 주혁은 다시 돌아가기 위해 사력을 다한다. 특정한 연도에 나온 500원 동전을 찾는 것은 도저히 이 상황을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이다. 아이는 바뀐 후 잠시 생각이 났지만, 이후 그를 흔든 것은 삶에 찌든 아내가 아닌 커리어우먼으로 세련되고 자기주장 강한 우진이었다.

치매를 앓는 장모가 자신을 알아본다는 것에 감동한다. 모든 것을 갖춘 혜원의 가족은 안중에도 없다. 혜원이 주혁의 부모에 관심이 없듯, 주혁 역시 혜원 부모에게 관심이 없다. 이런 남자가 이 삶이 싫다고 다시 돌아가려 한다. 돌아가서 남의 여자가 되려는 '아는 와이프'를 '내 와이프'로 다시 돌려놓고 싶다는, 치졸함이 가득한 행동을 보이기 시작했다.

<아는 와이프>는 전형적인 남자 시각의 드라마다. 언뜻 풍자와 비틀기가 존재하는 듯하지만, 일관되지 못하다는 점에서 비틀기가 아닌 뒤틀린 감성의 결과물로 다가올 뿐이다. 결과가 어떻게 되든 그건 그저 자기합리화에 그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아는 와이프>는 젠더 감수성이 가장 크게 부각되는 시대 가장 부적절한 드라마가 되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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