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루킹 특검은 어디로 가는 것일까? 노회찬 정의당 의원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후 화급히 김경수 경남도지사 쪽으로 칼끝을 돌린 특검팀의 행보가 심상치 않다. 무엇보다도 진상을 밝혀내는 것이 우선인 상황인데 목표를 이룰 수 있을지 우려된다.

노회찬 의원이 사망한 것은 허익범 특검으로서도 당황스러운 일이었을 거다. 유족들에게 드리는 인사라며 허리를 굽히는 등의 ‘퍼포먼스’를 굳이 감행했다는 점이 이를 뒷받침한다. 이 당혹스러움의 근본 원인은 무엇일까?

노회찬 의원과 드루킹들 관계의 가장 중요한 보도는 중앙일보를 통해 나왔다. 노회찬 의원이 직접 느릅나무 출판사를 찾아가 돈을 받은 정황을 언급했기 때문이다. ‘관계자 발’ 기사일 수밖에 없는 보도가 이런 식으로 나온 것은 특검이 분위기 조성에 들어갔음을 의미한다. 아마도 노회찬 의원이 극단적 선택을 하지 않았더라면 포토라인에 세우는 소환조사와 정의당과 드루킹 일당들에 대한 이런 저런 추측성 보도가 이어졌을 것이다.

그러나 사태가 이렇게 되면서 특검이 그렸을 이런 시나리오는 불발됐다. 노회찬 의원의 비극 뒤에도 특검 측은 일명 드루킹이 트위터 등에 남긴 글을 근거로 심상정, 김종대 의원 등에 수사 협조를 요구했다. ‘미련’이 남았다는 사실을 재확인한 것이다. 앞뒤도 없는 이 ‘미련’의 정체는 무엇인가?

언론은 경찰의 부실한 초동수사가 사건의 진실을 드러내는 걸 한층 어렵게 만들었다고 지적한다. 실력 부족이든 권력의 눈치를 본 것이든 이런 지적은 사실에 가까운 걸로 보인다. 특검은 진실을 밝히는 일을 애초에 반쯤은 포기한 상태였는지도 모른다. 지난달 31일 SBS의 ‘취재파일’을 보면 그렇다.

이 보도에 따르면 허익범 특검은 드루킹 일당의 재판을 연기하라는 취지의 의견서를 법원에 제출해달라는 검찰의 요구를 사실상 거부했다. 드루킹 일당의 댓글조작과 관련한 부분은 검찰이 추가 기소 등의 조치를 취하라는 거였다. SBS는 이를 두고 “당시 특검은 드루킹 일당이 2016년 11월부터 올해 3월까지, 기사 7만 5천여 개, 댓글 117만 건에 대해서 8,650만 번의 ‘공감/비공감’ 조작을 했다는 경찰의 수사 자료를 확보하고 있었다”며 “해당 수사 자료는 검찰도 확보하고 있었는데, 특검이 검찰에 추가 기소를 요구한 것은 해당 기간 동안, 해당 범위에 대한 수사를 포기하겠다는 것과 다름없는 것이었다”고 평했다. 특검이 드루킹 댓글조작 문제가 아니라 노회찬 의원의 정치자금 문제에 집중하고 있었다는 얘기다.

칼을 뽑았으면 호박이라도 잘라야 한다고 생각한 것인지, 아니면 노회찬 의원의 정치자금 문제를 수사한 후 이를 징검다리 삼아 김경수 지사의 자금 문제 등으로 옮겨 가려고 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하여간 특검의 1차적 목표가 드루킹이 아니라 노회찬 의원이었음은 분명해 보인다. 특검은 노회찬 의원이 사망한 다음날에야 드루킹 일당들의 댓글 조작 문제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그 결과가 요 며칠 사이의 김경수 지사 관련 보도들이다.

'드루킹' 특별검사팀 관계자들이 2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김경수 경남도지사가 의원시절 사용했던 사무실을 압수수색하고 압수물을 들고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김경수 지사 관련 의혹은 최근 중앙일보, 동아일보, 한국일보 등을 통해 자세하게 전해졌다. 일명 드루킹이 숨겨놨던 USB를 특검에 제출하면서 김경수 지사와 비밀 메신저 등을 통해 나눈 대화의 상당 부분이 복원됐다는 것이다. 이에 따르면 김경수 지사는 드루킹들에게 대선공약에 대한 자문을 구하고 실제 만나기도 한 걸로 추정된다고 한다. 또 김경수 지사가 지방선거 출마를 앞두고 드루킹 일당에게 도움을 요청했다는 보도도 있다. 자유한국당 등은 이를 통해 드루킹이 문재인 정권의 남자 최순실이 될 뻔했다며 침소봉대했다.

과연 그런 것일까? 두 사람 사이가 김경수 지사가 애초에 해명한대로 일방적인 연락을 받는 것에 그치는 관계는 아니었던 것으로 보이기는 한다. 그러나 그게 의미하는 바는 정치인과 지지자의 관계가 애초 알려진 것보다 더 밀접했다는 것 이상이 될 수 없다. 일명 드루킹이 재벌개혁이나 개성공단 관련 정책 제안을 했다고 하지만, 드루킹만이 제안할 수 있는 내용도 아니고 이미 예정돼 있는 계획도 있다. 예를 들면 개성공단은 2000년 착공 당시 계획에 이미 4천만평 규모의 공업지구를 건설한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었다.

특검 수사에서 중요한 것은 김경수 지사가 드루킹 일당에게 댓글 조작 등을 의뢰하거나 방조하였는지 여부이다. 물론 김경수 지사와 드루킹 일당의 관계가 ‘정황’을 따져볼 수 있는 근거 중 하나가 될 수는 있다. 하지만 마치 드루킹 일당이 문재인 캠프의 비선 실세였다는 듯의 표현은 사실과 맞지 않는다.

김경수 지사가 의원 시절 사용하던 컴퓨터에 대한 압수수색 관련 중앙일보의 보도는 이런 사실왜곡의 결정판이다. “김경수 PC ‘완전 삭제’…드루킹 연루 핵심 증거 ‘증발’”이란 기사 제목만 보면 마치 김경수 지사 측이 적극적인 증거인멸에 나선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 내용은 국회사무처가 절차에 따라 컴퓨터를 초기화한 것에 다름 아니다.

더군다나 그 PC에 ‘핵심 증거’가 애초에 있었을지도 의문이다. 국회 PC가 중요한 것은 드루킹 일당들이 ‘킹크랩’ 작동 시연회를 열었다고 주장하는 일정을 확인해야 하기 때문일텐데, 이미 김경수 지사는 드루킹들과 만난 것 자체는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인데도 중앙일보가 이런 제목으로 기사를 게재한 것은 물론 조회수를 노린 측면도 있겠지만 김경수 지사를 소환조사 하기 위한 분위기를 조성하자는 의도에 부응하자는 것 아니었을까 한다.

이런 저런 오류가 있었지만 뒤늦게라도 특검이 수사를 제대로 해서 이 사건의 전모를 밝힐 수 있다면 그나마도 다행일 것이다. 숱한 잡음만 남긴 채 명확한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특검 수사가 마무리 되는 게 최악이다. 특검은 드루킹들의 일방적 진술을 끼워 맞추는 방식으로 김경수 지사의 범죄 혐의를 재구성하고 있는데, 이미 후자의 길로 들어서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허익범 특검은 기간 연장을 요청하지 않는 것을 전제로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는데, 남은 시간 동안의 성과를 지켜보는 게 먼저지만 기간 내에 제대로 진실이 규명되지 않는다면 연장을 심각하게 고려해야 한다. 그러려면 지금 시점에 불필요한 논란을 자꾸 생산해 편향돼있다는 평가를 스스로 자초하지 말아야 한다. 지금 분위기를 보면 쉬운 일이 아닌 것 같지만, 만일 연장 요청이 현실이 된다면 대통령도 세간에 ‘최측근’으로 알려진 인사가 휘말린 문제인 만큼 대승적으로 결정했으면 한다. 의문만 남기는 게 아니라 어떤 방향으로든 문제가 해소되는 기회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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