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까지가 끝인지 알 수가 없다. 양승태 대법원이 저질렀던 온갖 사법농단의 증거는 파고 또 파도 나오고, 파면 팔수록 분노를 유발하는 괴담만 쏟아져 나온다. 양승태 대법원은 법의 신도, 국민도 모두 눈을 가리고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라는 법원을 복마전으로 만들었다. 그렇다면 지금의 법원은 과연 얼마나 더 나은지도 사실 의문이다.

31일 공개된 법원 사법농단 의혹이 담긴 196개의 문건은 지나 양승태 대법원이 상고법원을 위해 얼마나 많은 부정한 일들을 해왔는지 여실히 드러냈다. 권력과 언론에 대한 로비를 서슴지 않았으며, 로비를 위해 재판 결과를 왜곡하는 일까지 해왔던 것이다.

문건에 담긴 “정부 운영과 관련한 중요 사건은 대법원이 직접 맡아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내용은 차라리 눈을 의심케 하고 말았다. 사법부가 스스로 삼권분립의 균형을 깨뜨린 것이다. 그 결과 소위 ‘재판거래’라고 이름 붙여진 일들은 지금까지 알려진 것만도 여러 개가 된다. 13년간 투쟁을 이어와야 했고, 그 와중에 한 명의 동료를 잃어야 했던 KTX 승무원 판결도 포함되어 있다.

전방위 로비에 여론 공작, '법복 입은 정치인'들의 민낯 (JTBC 뉴스룸 보도화면 갈무리)

JTBC 뉴스룸은 이런 양승태 대법원에 대해서 “법복 입은 정치인”이라는 표현을 썼다. 법복과 정치인이라는 단어 모두가 부정적일 리 없지만 합쳐지니 처참한 의미가 되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모든 국민이 무관심과 혐오를 극복하고 정치 실천을 넓혀가고 있지만 절대로 정치를 해서는 안 되는 법관이 그리고 언론이 정치를 해왔던 것이다. 국방을 책임져야 할 군인이 정치하는 것만큼이나 위험하고, 금지되어야 할 것이 정치하는 법관이다. 법원이 정치를 하는 동안 판결은 왜곡됐고, 판사를 수입하자거나 알파고에 판결을 맡기자는 말은 유행처럼 번졌다. 스스로 개혁하겠다고 했지만 법원은 그에 합당한 태도를 보인 적이 없다.

그런 양승태 대법원이 표현한 “이기적인 국민”을 상대로 스스로 “지성적”이라고 자평한 법원이 여론조작을 하기 위해 조선일보를 파트너로 택했다는 사실도 해당 문건들 속에서 발견되었다. "또 조선일보냐!"라는 시민들의 반응에는 분노와 한숨이 섞여 있다. 언론들은 대단한 충격이라도 되는 것처럼 엄살을 감춘 비판을 쏟아냈지만, 시민들은 오히려 “정치하는 법원”과 조선일보의 결합은 매우 자연스럽다는 반응이다. 그러나 조선일보만 양승태 대법원에 협조했을 거라고 보기도 어렵다.

“조선일보 통해 상고법원 적극 홍보”…기사 날짜까지 제안 (KBS 뉴스9 보도화면 갈무리)

SBS가 보도한 문건 내용에 따르면 법원은 조선일보 외에도 주로 방송사들을 상고법원 홍보에 끌어들이려고 했다. 해당 문건에는 MBC는 ‘접촉이 불필요’할 정도로 협의가 끝났고, KBS는 ‘긍정 답변’ 그리고 JTBC도 ‘우호적 보도 가능 답변’이라는 내용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 결과에 대해서는 과거의 보도를 살펴봐야겠지만 방송사들이 조선일보만 향해 ‘정치하는 언론’의 혐의를 씌우는 것은 정직해 보이지 않는다.

이처럼 현재 김명수 대법원이 끝끝내 공개하지 않으려 한 문건들에는 하나같이 충격적이고, 분노를 유발하는 내용들로 가득했다. 법원을 개혁한다면 당연히 드러내놓고 비판받고 또 처벌할 것은 처벌해야 그 ‘개혁’이라는 것이 가능할 것이다. 이번 문건 공개 역시도 법원이 자발적으로 한 것이 아니라 전체 판사회의의 의결로 어쩔 수 없이 등 떠밀려 한 것에 불과하다는 것도 김명수 대법원의 개혁 의지를 의심케 하기에 충분하다.

그뿐이 아니다. 검찰의 영장청구 등에 대해서 법원이 잇따라 기각을 통해 수사를 방해한다는 인상을 주고 있다는 것도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오죽하면 특별재판부 구성에 대한 요구 목소리가 커지고 있고, 이를 위해서 더불어민주당 박주민 의원은 사법농단의 책임자 수사와 피해자 구제를 위한 특별법 발의를 준비하고 있다. 법원개혁을 위해 법원에게 주어졌던 시간은 결코 부족하지 않았다. 이제 모든 상황들이 법원이 스스로 개혁할 의지와 능력이 없음이 확인되었다고 할 수 있다. 부끄럼을 모르는 '법복 입은 정치인'에게 개혁을 기대할 수도, 맡길 수도 없다. 검찰도 번번이 영장에 막히는 현실이고 보면 특별재판부의 설치만이 법원 개혁의 근처라도 갈 수 있는 방법이 될 것이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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