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초만 하더라도 영화관을 찾는 관람객들은 자신이 관람한 영화의 표를 버리지 않고 포켓북에 고스란히 모을 수 있었다. 관람한 영화에 대한 추억을 되살릴 수 있는 영화티켓 수집은, 디지털로는 충족할 수 없는 아날로그적 감수성을 충족시키는 콜렉션이었다.

하지만 21세기 들어 도입된 CGV 티켓은 아날로그 감성을 말살시킨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영화관 입장에서는 기존 티켓에 비해 발권비가 줄어드는 비용 절감 효과를 가져왔지만 영화 관객의 입장에서는 아날로그 감수성을 빼앗기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멀티플렉스 1위 업계인 CGV가 이 정책을 도입하자 롯데시네마 등 다른 멀티플렉스 상영관도 CGV의 정책을 따라하며 영화 티켓의 아날로그 감수성은 비용 절감이라는 명분 아래 사라졌다.

세종문화회관 [세종문화회관 제공=연합뉴스]

최근 세종문화회관 및 예술의전당과 같은 대형 공연장에서도 멀티플렉스 상영관처럼 실물 티켓 대신 디지털 시스템 도입을 검토 중에 있다고 알려졌다. 뮤지컬 같은 경우 입장하기 10분 전이나 인터미션 후 2막이 열리기 직전 10분 전에 안내원이 티켓을 검수하고 있다.

하지만 대형 공연장에서 디지털화가 이뤄지면 온라인 수표 시스템, 혹은 바코드나 QR 코드 등의 디지털 시스템이 아날로그 감성의 티켓을 대체할 것이다. 그렇다면 공연장에서조차 아날로그 티켓은 사라지고 바코드와 QR 코드만 남게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에 대한 부작용을 살펴보도록 하자. 공연은 영화에 비해 지출이 높은 분야다. 연극 가격만 해도 아이맥스 영화관 관람 비용과 맞먹거나 비싸다. 고가의 뮤지컬은 일반 영화관에서 관람하는 가격에 비해 14배 이상 비싸다.

한데 이런 고가를 지불함에도 불구하고 디지털화가 진행된다면 뮤지컬을 관람한 다음에 실물 티켓을 모으는 아날로그적 감수성을 포기해야 한다는 결과가 도출된다.

A라는 뮤지컬을 B라는 공연장에서 C라는 친구나 애인이랑 함께 보았다는 추억의 자료가 될 수 있는 아날로그적 감수성의 상징인 실물 티켓을, 편의성이라는 명분 아래 사라지게 만든다는 패착을 저지르게 될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이다.

또 하나 지적할 점은 각 공연기획사에서 제공하는 재관람 이벤트를 앗아갈 우려가 있다는 점이다. 공연계에는 ‘회전문 관객’이 있다. 한 번의 관람에 만족하지 않고 다른 캐스팅이나 마음에 드는 배우의 캐스팅을 여러 번 관람하는 관객을 위해 연극이나 뮤지컬 기획사는 티켓북 이벤트를 진행한다.

가령 10번 이상 관람한 관객에게는 기획사에서 특전을 제공하는 것인데, 만일 공연 티켓이 영화처럼 디지털화가 이뤄진다면 관객의 재관람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는가 하는 기술적인 문제가 초래될 수 있다. 최근 모처럼 공연계의 분위기가 되살아나고 있지만, 재관람 미인증으로 말미암아 공연기획사의 회전문 관객에 대한 이벤트가 축소될 우려가 상존한다.

세종문화회관과 예술의전당 등의 대형 공연장이 티켓 전산망의 디지털화를 계획하고 있다면 이 정책이 누구를 위한 정책인가를 필히 재고해야 한다. 대형 멀티플렉스 상영관이 저지른 아날로그 감수성의 말살을 대형 공연장이 디지털화라는 명분으로 답습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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