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연이 사망한 지 9년이 되어서야 진실 규명이 다시 시작했다. 부실 수사로 검찰 조직 자체에게도 오명이 된 이 사건이 제대로 수사가 될 수 있을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사법부 전체의 판을 갈지 않으면 안 된다는 불신이 팽배한 상황에서 과연 그들이 진실 규명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니 말이다.

죽음으로 외친 진실;
거대 권력이 막아섰던 진실, 국민의 분노가 뒤늦게 재수사를 이끌었다

故 장자연 사건이 중요한 이유는 무엇일까? 최근 거세게 일었던 '미투 운동'의 진정한 시작점은 장자연 문건이었다. 사회적 파장까지 일 정도로 엄청난 사건이었지만 거대 권력은 그 누구도 처벌하지 않았다.

검경이 외면했던 사건. 아니 철저하게 부실 수사로 일관했던 이 사건은 재벌과 언론, 그리고 우리 사회의 지도층이라는 자들이 모두 연루된 사건이었다. 연기자가 되겠다는 꿈을 채 피우기도 전에 탐욕에 눈이 먼 기획사 대표는 권력을 가진 자들에게 접대를 요구했다.

MBC PD수첩 ‘故 장자연’ 1부

신인 여배우는 기획사 대표에게는 너무나 손쉬운 먹잇감이었다. 부모도 없고, 돈도 권력도 없는 장자연은 그렇게 기획사 대표의 성공을 위해 희생양이 되어야 했다. 그 자가 꾸었던 꿈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알 수는 없지만, 재벌 회장과 언론사 사주 아들, 유명 드라마 피디 등 온갖 남자들에게 성상납을 하도록 강요했다.

추악한 요구는 시도 때도 없이 이어졌다. 이제 막 주목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왔던 그 시점에도 기획사 대표는 소속 배우를 위해 노력하지 않았다. 촬영 일정마저 취소시키고 태국 접대 여행을 잡을 정도로 기획사 대표에게 故 장자연은 자신의 성공을 위한 노리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용기를 내서 힘겹게 카메라 앞에 섰던 고인의 같은 소속사 후배의 증언은 그래서 더욱 아프게 다가왔다. 고인과 함께 접대 자리에 불려가야만 했던 그녀 역시 연예인이 꿈이었다. 그렇기 기획사에 들어가 열심히 꿈을 위해 노력했지만 그녀에게 돌아온 것은 두려움 외에는 없었다.

김지연(가명)이 당한 것은 부당한 접대 자리에 불려나가야 했던 것이 전부였다. 하지만 故 장자연은 그 행위가 발톱의 때 정도로 취급될 정도로 잔인한 착취를 당하고 있었다. 지연 씨는 부모님들에 의해 그 지옥과 같은 곳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하지만 故 장자연은 그럴 수 없었다. 그녀를 그 지옥과 같은 곳에서 구해줄 수 있는 이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녀가 그 부당한 행위에 맞서지 못하고 그곳을 벗어날 수 없었던 것은 위약금 1억 때문이었다. 부모도 없고 서울로 올라와 연기자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그녀에게 1억은 너무 큰돈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지연 씨가 소속사를 나간 것을 부러워했다고 한다. 故 장자연의 꿈은 어쩌면 그 지옥에서 벗어난 지연 씨였을지도 모르겠다.

MBC PD수첩 ‘故 장자연’ 1부

평생 나이 들어서도 연기자로 남고 싶다고 했었던 장자연은 그렇게 지옥이나 다름없는 소속사로 인해 모든 것을 접어야 했다. 평생 연기자가 아니라 소속사를 벗어나는 것이 일생일대의 꿈이 되어버린 그녀는 2년이나 남은 그 시간을 버틸 수 없었다.

조선일보 기자 출신의 가해자는 여전히 당당하다. 취재를 나간 제작진에게 법정에서 보자며 위협하는 모습에서 무엇이 그리 당당한지 되묻고 싶게 한다. 당시 한나라당 소속으로 선거에도 나섰던 조 씨는 함께 술집에 있었던 것은 부정하지 못했지만, 그 외의 모든 것은 모른다로 일관했다.

조 씨 아내는 현직 검사였다. 그리고 그 검사는 최근 서지현 검사 사건 조사단 일원이기도 했다. 9년 전 故 장자연 사건과 안태근 전 검사장의 성추행과 직권남용 사건은 그래서 더욱 섬뜩하게 다가온다.

많은 이들이 검찰 내부의 조사단을 비난한 것은 너무 당연했다. 아무런 결과도 내지 못한 채 검찰 내부에서 감싸기만 한다는 비판을 초래했으니 말이다. 검찰 개혁은 자체적으로 이뤄질 수 없음을 그들은 서지현 검사 사건을 통해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故 장자연 사건 당시에도 검찰 가족이 연루되었다는 이유로 부실 수사를 했다는 여론의 질타는 거셌고, 그랬을 가능성이 높음을 <PD수첩>은 다시 상기시켰다.

하이트 진로 박 회장과 故 장자연의 필리핀 동반 여행, 그리고 고인의 계좌에 입금된 거액은 모두가 의심할 수밖에 없는 조건들이었다. 수사 당시 박 회장은 천만 원이라는 거액을 김밥 값이라는 말도 안 되는 말을 했다고 하니 당혹스럽기만 하다.

MBC PD수첩 ‘故 장자연’ 1부

고인의 통장에 들어온 1억여 원의 돈과 20여명의 남자. 그들은 모두 용돈이라고 주장했고 검경은 이에 대한 제대로 된 수사조차 하지 않았다. 이제는 변호사가 된 故 장자연 사건 검사나 담당 수사관 역시 자신들은 아무런 잘못이 없다고 강변할 뿐이다.

사건 당사자가 사망한 상태에서 무슨 조사가 가능하냐는 그들에게서 수사 의지는 찾아볼 수도 없었다. 문화 경제 정치권력까지 개입된 이 거대한 성접대 사건은 묻히고 말았다. 조선일보 사장 언급에 전사적으로 사건을 막기 위해 노력하고 검찰 가족이라는 이유로 알아서 움직이는 이 집단에 의해 故 장자연의 마지막 외침은 사라지는 듯했다.

하지만 국민들은 잊지 않고 있었다. 부패한 권력이 붕괴하고 새롭게 출범한 정부가 내세운 검찰 개혁에 맞춰 청와대 국민청원에 올라온 '故 장자연 사건 재수사' 요구가 받아 들여졌기 때문이다. 그렇게 시작된 재수사가 어떤 결말을 맺을지 알 수는 없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그녀가 죽음으로 증명하고 싶었던 진실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PD수첩>은 다음 주 2부에서 조선일보 방 사장을 집중적으로 다룰 것을 예고했다. 말미에 방송은 조선일보를 정면으로 다뤘다. 이 보도가 나가면 어떤 입장을 취할지 충분히 알 수 있음에도 실명을 공개하며 사건에 깊숙하게 다가서는 <PD수첩>의 용기는 결국 故 장자연 사건의 실체를 좀 더 명확하게 볼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진실을 찾기 위한 여정은 고되고 힘들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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