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용자동차 사태’가 1년을 지나고 있습니다. 노동자 대량 해고와 77일간 옥쇄 파업으로 요약되는 쌍용자동차 사태는 우리 사회의 여러 구조적인 문제들을 집약해 보여준 안타깝고 상징적인 사건이었습니다.

‘먹튀자본’에 함부로 회사를 매각하면 그 결과가 어떤 지. 충분한 대화없이 노동자들을 대량 해고하면 노-사가 어떤 갈등을 겪게 되는 지. 사회 안전망이 충분하지 않은 우리 사회에서 해고자들의 삶은 어떻게 망가지는 지.

쌍용자동차를 둘러싸고 벌어진 지난 1년의 일들을 통해 살펴볼 수 있었습니다.

1년 전 해고된 노동자들은 과연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요. 보름 가까이 이들의 일상을 좇아다니며 그들의 현재를 되짚어보았습니다. 아마 많은 분들이 보셨을 겁니다. (관련기사 ▷: 정신병에 자살까지 내몰려…“해고는 살인이었다”)

▲ 쌍용자동차 해고자가 되면서 정신질환을 앓은 계영대씨는 자택에 파업 준비 물품을 잔뜩 쌓아둔 채 외부와 단절된 생활을 하고 있었다. ⓒ허재현 기자
해고 노동자들, 가계 파산에 정신병까지…

기사에서 보신 것처럼 이들의 삶은 ‘절망’적인 상황이었습니다. 금속노조 쌍용차지부가 해고자 106명에 대해 조사한 결과를 보면, 이들의 평균 빚은 파업 이전의 5500만원에서 6047만원으로 평균 500만원이 늘었고, 이들 중 빚을 갚을 능력이 없는 2명의 해고자가 최근 파산 신청을 했습니다. 64.2%가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채 놀고 있었습니다. 또 지난 1년간 쌍용차 해고자와 가족 등 6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기사를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취재하면서 가장 가슴이 아팠던 건 파업에 참여했다가 정신질환을 앓게 된 계영대(37)씨를 만났던 일입니다. 계영대씨는 옥쇄파업에 참여했다가 67일만에 공장을 나온 해고 노동자입니다. 그런데 그는 파업 후유증을 심하게 앓았습니다.

평택시의 한 아파트에 혼자 살고 있던 영대씨는 파업이 끝난 1년 뒤 집을 파업 현장처럼 꾸며놓고 있었습니다. 방에는 라면과 햇반, 생수 등 비상식량을 산처럼 쌓아두었습니다. 영대씨는 아직도 자신이 해고된 것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왜 이렇게 됐을까.

정신적 충격이 컸던 것이겠죠. 77일간 옥쇄 파업은 정말 해보지 않은 사람들은 잘 모릅니다. 파업 후반기에는 회사 쪽이 물과 식량마저 반입을 중단해 그 안에서 정신적 고통은 극심했습니다. 그래서 파업에 참여했던 노동자 대부분은 외상후 스트레스 증후군에 시달렸습니다. 영대씨는 이게 극단적으로 나타난 경우라고 보면 됩니다. 영대씨는 결국 정신 병원에 입원해야 했습니다.

취재 시작하자 쌍용차 “기사 안내면 안되냐”

쌍용차 사태 1년 기획 보도를 준비하면서 노사가 상생하기 위해 그간 어떤 노력을 기울여 왔는 지 객관적으로 취재해 보려고 했습니다. 기본적으로 생존의 벼랑에 내몰려 있는 해고자들의 고충을 많이 들으려고 노력했지만 쌍용자동차가 해고자들을 위해 노력해왔던 것들 역시 충분히 소개해주려고 했습니다. 극심한 노-사 갈등을 겪은 쌍용자동차가 노-사 화합의 모델로 거듭나고 있길 바랐습니다.

쌍용자동차 역시 그런 보도가 나가길 원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이런 취지로 취재하겠다고 하자 쌍용차는 적극 취재를 도와주기도 했습니다. 실제 쌍용차 노-사는 서로 상생의 길을 걷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었습니다. 논란이 되고 있는 ‘타임 오프제’도 가장 먼저 타결을 보았더군요. 회사의 발전을 위해 노-사가 힘을 모으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좀 주의해서 볼 게 있었습니다. 쌍용차에는 두 개의 노조가 있습니다. ‘회사 안 노조’와 ‘회사 밖 노조’. 회사 안 노조는 파업 이후 민주노총을 탈퇴하고 새로 만들어진 노조입니다. 회사 밖 노조는 지난 해 파업을 주도했던 금속노조 쌍용차지부입니다.

회사는 회사 안 노조와는 협력하고 있지만 회사 밖 노조와는 아무런 대화를 하고 있지 않았습니다. 민주노총 쌍용차지부(회사 밖 노조)는 엄연히 쌍용차 조합원들이 가입되어 있고 지난 해 ‘노사 대타협’의 한 축이었던 노조인데 쌍용차는 이들의 협상 제안에는 지금까지 단 한 차례도 응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갈등은 그래서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었습니다.

해고 노동자들을 만나보았습니다. 그들은 제게 합의 내용이 지켜지지 않고 있다고 성토했습니다. ‘8.6 노사 대타협’을 가능하게 했던 합의문의 자세한 내용은 그간 언론의 큰 관심이 아니었는데 하나 하나 점검해보면 제대로 지켜진 게 하나도 없다고 불만을 털어놓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지난 1년간 합의사항들이 얼마나 잘 지켜졌는 지 점검해 보기로 했습니다. 쌍용자동차 쪽에도 기사 계획이 좀 변경될 것 같다고 알려주었습니다. 그간 쌍용차는 제게 예의를 갖추어 취재를 도와주었기 때문에 이걸 알려줘야 될 것 같았습니다.

그러자 쌍용차 쪽에선 무척 곤란해 했습니다. 매각 국면에서 예민한 기사가 나가면 안되는데 ‘기사 안내면 안되냐’고 부탁해왔습니다. 물론, 그런 부탁은 저희 <한겨레>에 통할 리 없지요. “‘노사 합의문’을 잘 지키고 있다면 쌍용차 쪽에 결코 불리한 기사가 나갈 리 없다”며 쌍용차를 설득하고 안심시켰습니다.

하지만 이후 쌍용자동차는 제 질문에 답변을 잘 해주려 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계속 설득해야 했습니다. ‘노동자들의 주장만 일방적으로 전달되지 않도록 기사를 쓰려고 하니 답변할 건 해달라’고 말이지요. 간신히 답변을 얻어 취재를 했습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쌍용자동차 쪽에는 좀 곤란한 기사가 나갔습니다. 어쩌겠습니까. 쌍용자동차가 노사 합의문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고 있었고 이것이 취재된 팩트이니 말입니다. 정확한 확인을 위해 노-사 합의문 원본을 입수하고 당시 협상 중재단 활동을 했던 권영길 의원과 구치소에 수감중인 한상균 전 금속노조 쌍용자동차 지부장을 만나 세부적인 내용을 확인 했습니다.

노사 합의 이행 경과를 정리한 기사는 “쌍용차 사태 1년...노사 대타협은 대국민 사기극이었다” 를 보십시오.

권영길 의원은 제게 “노동자들이 속았다고 생각할까봐 걱정”이라고 우려했습니다. 그리고 이 우려는 현실이었습니다. 해고 노동자들은 실제 ‘속았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저를 만나면 ‘대타협은 파업을 풀게 만들려는 허울 좋은 구실이었다’고 말했습니다. 한 해고 노동자는 “그 때 아예 불싸지르고 모든 것을 끝냈어야 한다”고까지 얘기했습니다.

▲ 쌍용자동차 해고자들이 경기도 평택시 쌍용자동차 본사 앞에서 출근 투쟁을 벌이고 있다. ⓒ허재현 기자
재판부도 ‘노-사 대타협’ 권했다

여러분은 쌍용자동차 사태 1년을 어떻게 바라보고 계십니까. 쌍용차를 둘러싸고 일어나는 일들은 여러모로 상징적입니다. 이들의 문제가 어떻게 해결되는 지에 따라 구조조정을 계획하고 있는 기업들의 노-사 관계도 영향을 받을 것입니다.

만약 쌍용자동차 노사가 이뤄낸 대타협이 허구에 불과했던 것으로 결론나면 이후 구조조정 위협에 시달리는 노동자들이 어떤 선택을 할 지 눈에 보입니다. 그들 역시 대화보다는 쌍용차 해고자들을 교훈 삼아 무조건 파업과 같은 극단적인 방법으로 끝장을 보려고 하지 않을까요. 그렇기 때문에 쌍용자동차 노-사가 1년 전 이뤄낸 대타협 합의문은 반드시 이행되어야 할 것입니다.

다행인 건 평택시의 태도가 긍정적이라는 점입니다. 김선기 평택시장은 “중재단을 꾸려서 노-사가 다시 대화를 할 수 있도록 주선해보겠다”고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관계자들과 약속을 했습니다. 부디 지역사회와 정치권이 이 문제에 관심을 갖고 양쪽의 갈등을 잘 다듬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한상균 전 지부장 등의 재판을 맡은 재판부는 지난 9일 한 전 지부장의 양형을 감형하면서 “파업 농성의 책임을 꼭 노동자에게만 지울 수 없고 평화적인 노-사 관계가 만들어지길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또 “쌍용차 근로자들에게 해고의 의미는 단순히 직장을 잃는다는 것을 넘어 생존에 직접적 위협이 돼 ‘정리해고는 살인이다’라는 구호가 과장된 것이라고 볼 수만은 없다”고 밝혔습니다.

같은 생각입니다.

부디 쌍용차 노-사가 다시 대화에 나서고, 쌍용차가 정상화 되어 해고된 노동자들이 다시 회사에 복직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들이 함께 웃는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현재 한겨레 방송부문 뉴스팀에서 취재를 하고 있는 기자다.
영상 카메라와 취재수첩을 함께 들고 현장을 누비는 우리나라에서 제일 앞선 멀티형 기자가 돼려고 노력중이다. 우리 사회 경제권력과 정치권력을 감시하는 사명을 놓는 그 순간, 기자가 아닌 단순 직장인이 된다는 생각을 갖고 산다. 그저 그런 기자가 되느니 문제적 기자가 되는 게 차라리 낫겠다고 생각하고 살기도 한다. 한겨레와 한겨레 독자들을 무지지 사랑한다. 개인 블로그 http://blog.hani.co.kr/catalun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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