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8 개각 브리핑을 취재하는 청와대 출입기자 모습, KBS뉴스캡처
이명박 대통령은 8일, 국무총리 후보에 김태호 전 경남 도지사를 내정한 것을 비롯해 10개 부처 장·차관급 인사 후보를 발표하는 등 개각을 단행했다. 8일 오후 2시, 청와대가 개각 인사를 발표하고 나서야 개각과 관련한 언론 보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김태호 전 경남 도지사의 과거 업적 등을 상세히 다룬 보도에서부터 김태호 전 지사의 고향 풍경을 전하는 보도까지… 관련 보도는 넘쳐나고 있다.

그러나 개각 단행을 바로 앞에 둔 지난 7일만 해도, 개각과 관련한 하마평 보도는 전무했다. 청와대의 개각 관련 엠바고 요청을 철썩 같이 지킨 언론 덕분이었다.

“결과적으로 청와대와 출입기자단이 ‘개각 이벤트’를 합작하는 꼴이다.” 개각 관련 하마평 보도에 대해 엠바고(특정 시점까지 보도 유예)를 요청한 청와대와 이를 수용한 청와대 출입기자단을 향해 <한겨레>가 지난 7일치 사설을 통해 날린 뼈 있는 한 마디다.

▲ 한겨레 8월7일치 사설
청와대는 지난달 29일, 청와대 출입기자단을 향해 개각과 관련한 하마평 보도에 대해 엠바고를 요청했다. 출입기자단은 청와대 쪽의 요구를 수용했다. <미디어오늘>에 따르면, 이와 관련해 청와대 쪽은 “이름이 돌아다니면 거명된 인사도 불편하고, 기자들도 과도한 취재 경쟁을 하는 것 같아 출입기자단과 출혈 경쟁을 자제하자고 협의한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지난 7일, 대다수 언론들이 개각 관련 소식을 전했으나 △개각 발표 일정 △개각 대상 △후임 총리 인선 기준 등이 전부였다. 개각과 관련해 KBS, MBC, SBS등 방송3사를 비롯해 신문들이 가장 많이 보도한 부분이 “이르면 9일, 늦어도 10일까지 개각을 단행할 것”이라는 개각 발표 일정이다. 구체적으로 국무총리를 비롯해 개각 대상으로 누가 거론되고 있는지에 대한 보도는 전혀 없었다. 기껏 한 발 나아간 게 “국무총리에 40대 인사를 기용하는 방안도 고려중이다”는 조선일보 보도 정도였다.

지난 6·2 지방선거 이후, 그리고 정운찬 국무총리가 사퇴 의사를 밝힌 직후부터 숱하게 개각 가능성을 언급하며 관련 소식을 전했던 언론. 그러나 정작 개각을 코 앞둔 시점에서는 ‘엠바고’라는 이유를 들어 제대로 된 보도를 하지 않았다.

권력을 비판하고 감시할 언론으로서는 개각 대상 후보로 오른 이들에 대한 검증을 하는 것이 마땅하다. 국민들의 관심이 높은 사안을 미리 보도하는 것이 공익을 해하고, 국익에 손해를 끼치는 것일까? 더군다나, 엠바고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이유가 중차대해야 한다. 단순히 언론의 ‘출혈 경쟁’을 막겠다는 이유로 엠바고를 요청한 청와대의 행보는 언론을 통제하려는 의도의 연장선일 뿐이다.

사실, 잦은 엠바고 요청과 언론 마사지 통해 드러난 정권의 언론관을 짐작했을 때, 이번 개각과 관련한 엠바고 요청은 그리 놀라운 일도 아니다. 어쩌면, 청와대의 엠바고 요청보다 더 심각하게 봐야 할 것은 이러한 엠바고 요청을 쉽게 수용한 청와대 출입기자단이 아닐까 싶다. 기자단이라는 이름으로, 기자실 안에 갇혀 청와대가 불러주는 발표에 익숙해진 기자들이 정작 이 시점에서 감당해야 할 언론의 사명을 잊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 “언론의 자유는 언론 스스로 지키려고 노력할 때만 보장된다는 걸 잊어선 안 된다”는 한겨레의 당부도 이 같은 맥락이었을 거다. 사회 곳곳에서 벌어지는 부조리한 일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이를 끊임없이 비판하는 언론이 정작 자신의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부조리함에 대해 침묵으로 동의하는 것은 엠바고에 대한 ‘수용’ 보다는 그들만의 ‘담합’에 더 가깝지 않을까 싶다.

문제는 엠바고와 관련한 논란이 처음이 아니라는 거다. 최근 들어 엠바고 논란이 점점 더 잦아지고 있다. 갖가지 그럴듯한 이유로 포장해 언론 보도를 통제하려는 청와대, 이를 아는 듯 모르는 듯 청와대의 주장에 쉽게 동의하는 언론. 지금과 같은 이들의 공범 관계가 계속 된다면, 청와대 그리고 청와대를 출입하는 언론을 향한 깨어있는 시민들의 불신은 지금보다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청와대의 개각 인사 명단이 발표된 이 시점에서, 언론이 비록 지금이라도 날카로운 시선을 유지한 채 ‘불편한 진실’을 밝혀주길 기대한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