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름진 논밭이 가득했던 옥천군 옥천읍 문정2리는 어느새 고층아파트와 학교, 각종 공공기관이 가득 들어선 마을이 되었다. ⓒ
난생처음 아파트라는 집에 살게 된 것이 2004년 2월말부터였으니 지금으로부터 만 6년 하고도 몇 개월 더 되는 셈이다. 짧다고 보면 짧은 시간이고, 20년에서 30년 동안 아파트 생활을 한 분들에 비하면 6년이란 세월은 아무 것도 아닌 것일 게다.

일단 사는 곳을 옮기다 보니 여러 가지가 달라졌다. 주소가 달라졌고, 아이들이 다니던 학교를 옮겨야 했다. 학생 수가 2천여명으로, 옥천군 뿐만 아니라 충청북도 내에서도 큰 학교에 속하는 삼양초등학교에 다녔던 아이들은 구읍 지역 학생수 600여명의 죽향초등학교로 전학을 했다. 사실은 아이들 북적대고 너무 큰 학교여서 제대로 아이들 관리(?)가 될 것 같지 않은 선입견이 있었던 삼양초보다 죽향초를 다녔으면 하는 게 내 마음이었으니 아이들 학교 관계는 잘 된 것이었다.

아무튼 아파트 하면 평소 이웃과도 소홀하고 공동체 생활과는 거리가 먼 것으로만 막연히 생각해왔던 것이 사실이다. 뭐 사실 따지자면 내가 먼저 이웃과 터놓고 친구를 만들고 하는 재주는 없었던 터에 미리부터 그런 생각을 갖고 아파트 생활을 시작한 나로서는 딱히 별 기대를 걸 만한 것은 없었다.

비가 오는 날 나로서는 조금 생소한 풍경을 맞았다. 다른 곳은 그렇지 않지만 단지내 평수가 가장 작은 우리 동은 복도식 아파트로, 알루미늄 새시를 하지 않아 비가 오면 복도로 비가 들이친다. 그런데 그때까지도 안면만 트고 지냈던 옆에 옆집 새댁이 비를 들고 비가 흘러내리는 복도 콘크리트벽 안쪽을 문질러 청소를 하고 있는 것이었다.

“뭐 하는 거예요?”
“복도 청소하는 거예요.”
“아! 아파트 복도는 이렇게 비가 올 때 청소를 하는군요.”
“비가 안 올 때 물을 뿌려서 하려면 어렵잖아요.”

몇 마디 대화를 나누며 나도 함께 복도 안쪽을 비로 쓸어내렸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복도 안쪽 벽을 청소했던 것은 이유가 있었다. 복도 벽은 이불 등 큰 빨래를 걸쳐 말리기가 좋은 장소였기 때문이다.

그때 이후로 복도 안쪽 벽 청소를 많이 하지는 못했다. 비가 오는 날 집에 없거나 있어도 그냥 지나갔으니. 그래도 아파트에 관한 신선한 기억으로 남아 있는 장면이기에 벽에 때가 끼었거나 이물질이 있으면 언제든 해야 할 일이기도 하다.

나중에 아파트 생활에 나름 적응하면서 ‘아파트 주민들은 한 가족이구나’ 하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나는 열심히 복도 벽에 걸쳐 널었던 이불을 털었는데, 아마도 이불 터는 소리가 공명돼 소리가 커지고, 어느 집에서 그리 요란하게 이불을 터는지 자연 관찰 대상이 된 모양이었다. 쓰레기봉투 한 번, 재활용품 분리수거 날에도 어쩌다 한 번 아이들과 함께 나가서 분리수거를 하고 들어오면 아파트에 소문이 퍼진다는 것이었다. 전혀 그렇지도 못한데 졸지에 나는 정말 가정적인 남편이 되는 경우가 종종 생겼다. 아파트에서 나를 아는 이들은, 특히 남편들은 잔소리를 들어야 했다는 후문도 뒤따랐다.

어찌어찌해서 정말 본의아니게 동대표를 하게 되고, 대표회장도 맡아 2년간 활동을 하다보니 아파트 이곳저곳이 이제는 내 집처럼 보인다. 항상 하는 얘기지만 ‘우리 주민들 가운데 너무한 사람도 많아’ 하며 혀를 끌끌 차기도 한다. 아내는 오지랖을 거두라고 성화지만 이왕 내 눈에 보인 것이니 경비실에 전화하는 것은 버릇이 되었다.

그럼에도 엘리베이터에 단 둘이만 탈 경우 아무 말없이 뻘쭘해지는 경우가 여전히 많다. 내가 먼저 인사를 건네고, 말을 걸고, 해야 하는데 성격이 그렇다보니 그런 경우가 발생하나보다.

옥천은 고층 건물이 선 화려한 도심이 있지는 않아도 옥천읍만 해도 아파트에 살고 있는 주민들이 4천 세대가 넘을 정도로 많은 아파트가 있다. 비단 옥천 뿐만 아닐 것이지만 아파트가 현대를 사는 사람들에게 중요한 거주공간으로 자리잡은 지는 오래다. 그래서 아파트 주민들끼리 공동체를 형성하고 공동인식을 공유한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가 되었다.

지금은 비록 나오지 않지만 대전시 판암동 사회복지관을 중심으로 이미 마을신문이 선을 보였고, 오는 8월15일 전주 평화동에 살고 있는 주민들이 학산종합사회복지관 주관으로 ‘평화동 마을신문’을 창간, 주민들에게 선을 보일 예정이다.

이들이 7월1일 낸 창간소식지에는 평화동을 대변하는 시의원들의 인터뷰 기사가 실렸다. 주차장 확보와 관련한 시 조례 개정이 시급하다는 내용의 기사도 실렸다. 평소 주민들이 관심을 잘 갖지 않았다 해도 마을신문 창간을 계기로 마을이 크게 달라질 수 있음을 기대할 수 있다.

따라서 아파트 주민들이 중심이 된 전주 평화동 주민들의 이같은 마을신문 창간 시도는 그 자체로 큰 의미를 갖는다.

마을이 어떻게 자치의식을 갖고 움직이느냐, 마을에 살고 있는 주민들이 내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우리 민주주의 모양새는 크게 달라질 터이다.

지방자치 단위의 가장 실뿌리인 마을에서 주민들이 함께 고민하고 마을이 갈 방향을 정하는 것은 풀뿌리 민주주의의 전형을 배울 수 있는 길이다. 그 길을 마을신문이 안내할 수 있다면 민주주의 학습은 저절로 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마을신문이나 풀뿌리 지역신문이 중요한 이유. 아파트 안에서 공동체 의식을 살리고, 공공성을 높이려는 생각을 함께 공유하는 인식은 그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비가 올 때는 아파트 복도 벽을 청소해서 깨끗하게 이불을 널 수 있도록 하고, 공동으로 사용하는 각종 아파트 기자재 등을 소중하게 다루도록 스스로 훈련하는 것처럼.

각자 가슴속에 커다란 소우주를 품고서 ‘소통’하고 ‘공유’하고 싶어합니다. 그 소통과 공유를 바탕으로 연대의 틀을 마련하여 이 사회를 더 나은 사회로 바꾸고자 합니다. 이제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매개체의 필요성은 두말 할 나위가 없겠죠. ‘작은 언론’입니다. 지역 주민들의 세세한 소식, 아름다운 이야기, 변화에 대한 갈망 등을 귀담아 들으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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