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훈장 중 최고 등급인 무궁화장을 김종필 전 총리에게 추서했다. 정부의 방침이다. 독재 정권을 공고하게 한 주범에게 국민훈장을 주는 정부는 무슨 의미를 부여하는 것일까?

김종필 전 총리 훈장 추서 논란, 빛바랜 훈장의 가치

김종필 전 총리가 사망하며 한국 현대사의 대표 정치인들이 이제 모두 고인이 되었다. 그 유명한 '3김 시대'의 마지막 남은 이가 바로 김 전 총리였으니 말이다. 박정희와 함께 5.16 쿠데타를 일으킨 그는 민주주의를 외치던 김대중, 김영삼과는 대척점에 있던 인물이다.

3당 합당을 하고 DJP 연합 등을 통해 김영삼과 김대중은 대통령이 되었다. 하지만 김종필은 마지막까지 대통령의 자리에 오르지 못한 채 2인자로 생을 마감했다. 그가 한국 현대사의 중요한 인물이라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다. 박정희나 전두환, 노태우도 중요한 인물이다. 그 중요성의 방점을 어디에 찍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고 김종필 전 총리가 1973년 당시 박정희 대통령(오른쪽)으로부터 국무총리 임명장을 전달받던 모습. [연합뉴스 자료사진]

김종필은 5.16 군사 쿠데타의 주모자다. 그는 중앙정보부를 창설하고 초대 중앙정보부장을 맡기도 했다. 중앙정보부는 반민주 반인륜적 군사 독재 체제 수립에 앞장선 조직이다. 김기춘이 중앙정보부 대공수사 부장의 자리에서 간첩조작 사건을 주도하며 수많은 이들을 죽음으로 이끈 것은 박정희 독재 정권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악랄한 방식으로 무고한 시민들과 교포들까지 간첩으로 만든 행태는 결코 용서할 수 없는 범죄다.

김종필은 군사 독재 정권 하에서 누릴 수 있는 모든 권력을 다 누린 존재이기도 하다. 국무총리, 집권당 대표 등 박정희의 2인자로서 충실하게 독재 권력을 유지시킨 존재가 바로 김 전 총리다. 굴욕적인 한일협정을 맺은 당사자이기도 하다. 그는 박정희 사후 잔존한 유신 체제 지지 세력의 정치적 구심점 역할도 했다.

"다음 중 김종필이 훈장을 받은 이유는? (1) 쿠데타 주모자라서 (2) 중앙정보부를 창설하고 인권을 유린해서 (3) 한국 민주주의 발전에 기여해서 (4) 유신 체제 지지세력의 정치적 구심점이라서. 훗날 한국사 시험 문제를 미리 내봤다. 학생들이 분명 헷갈릴 것이다. 김종필에게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추서하면, 학교에서 김종필의 탁월한 공훈에 대해 가르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그런 게 뭐가 있는지는 전혀 모르겠다"

역사학자인 전우용 한양대 교수가 페이스 북에 올린 글이다. 촌철살인으로 유명한 전 교수는 김 전 총리 훈장 추서와 관련해 명확한 입장을 밝혔다. 김 전 총리 사망 직후 언론들은 그가 독재시절 2인자였다는 사실을 언급하지 않은 채, 한국 정치사에 대단히 많은 업적을 쌓은 존재라는 사실을 부각했다.

25일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김종필 전 국무총리 빈소에 국민훈장 무궁화장이 놓여있다. Ⓒ연합뉴스

죽은 사람에게 독한 이야기를 할 수는 없다는 온정주의 시각이 만든 결과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김 전 총리가 그렇게 존경 받을 수 있는 존재는 절대 아니라는 것만은 명확하다. 이와 관련해 음식 평론가인 황교익의 발언은 어쩌면 유명 인사 중 처음으로 김 전 총리 훈장 추서에 반대하는 외침이었을 듯하다.

국민들은 김 전 총리 죽음에 애도를 표하기보다는 침묵으로 일관했다. 하지만 훈장 추서와 관련된 이야기가 나오자 분위기는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고인에 대한 평가나 발언을 자제하던 이들은 김 전 총리에게 국민훈장 무궁화장 추서는 말도 안 된다는 주장을 해왔다.

전 교수가 자신의 페이스 북에 올린 4가지 보기 중 답은 존재할 수 없다. 3번을 제외하고 모든 것이 김 전 총리를 상징하고 있지만, 그게 훈장을 받는 이유가 될 수 없다. 3번은 김 전 총리가 살아온 삶과 정반대였다는 점에서 기본적인 오류가 있다. 김 전 총리에게 훈장을 수여할 명분도 의미도 없다는 사실을 전 교수는 한국사 시험 문제 형태로 제시한 것이다. 과연 미래의 학생들은 이 문제의 정답을 맞힐 수 있는 것일까?

김 전 총리에게 추서된 국민훈장 무궁화장은 이미 존재 가치를 잃었다. 지난해 12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역시 이 훈장을 받았기 때문이다. 재직시절 내내 정치적 공정성 시비에 휘말린 자가 국민훈장 중 최고 가치라는 무궁화장을 받았다. 그 역시 관례에 따라 무궁화장 수훈자로 선정되었다.

대통령만 받는다?…무궁화대훈장 '셀프 수여' ( 2016.12.30 SBS 뉴스 보도 영상 갈무리)

청와대는 김종필 전 총리에게도 관례에 따라 무궁화상을 추서했다고 밝혔다. 친박 집회에 나와 막말을 쏟아내던 김평우 변호사 역시 2012년 무궁화장을 받았었다. 이명박근혜 정부에선 셀프훈장으로 논란을 빚기도 했다. 대한민국 국가에서 줄 수 있는 최고의 상인 문화대훈장을 받았으니 말이다. 제작비만 5천만 원이 든다는 문화대훈장을 받은 전직 대통령들이 모두 감옥에 있다는 아이러니한 사실에서 훈장의 가치는 더욱 무의미해진다.

뉴스타파가 제작한 '훈장과 권력'을 보면 대한민국에서 훈장이란 얼마나 무의미한지 알 수 있다. 친일파를 시작으로 군사 쿠데타 주역들까지 그들이 나눠 가진 훈장은 무수히 많다. 훈장은 그렇게 대한민국 사회에서는 무의미한 가치로 전락한 지 오래다. 김 전 총리에게 수여된 국민훈장 무궁화장은 다시 한 번 훈장의 무게를 한없이 가볍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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