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토 전 파키스탄 총리가 테러로 숨진 뒤 방송3사들이 보이고 있는 보도의 초점은 대략 3가지로 나뉜다. △상황 전달 △원인 분석 △향후 파키스탄 정국 전망. 전반적인 방향과 기조는 크게 문제될 것이 없다. 하지만 원인 분석과 향후 전망 부분에 있어 핵심이 빠져 있다.

방송3사는 원인 분석에 있어 ‘테러범이 누구인가’ ‘이번 테러를 배후에서 지시한 세력이 누구인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필요한 부분이다. 하지만 ‘테러의 주체’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은 미국의 대테러전쟁에 대한 점검이다. 현재 파키스탄 정국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부분에 대한 언급이 가장 중요하지만 유감스럽게도 방송사들의 부토 전 총리 사망 관련 리포트에는 이 부분이 빠져 있다.

▲ 12월29일 KBS <뉴스9>, MBC <뉴스데스크>, SBS <8뉴스>(왼쪽부터).
“부토 전 총리 암살과 미국의 원죄”

우선 경향신문 12월29일자 사설 <부토 전 총리 암살과 미국의 원죄>의 일부를 인용한다.

“부토 암살 소식에 섞여 풍겨오는 것은 미국 패권주의의 악취다. 미국은 1999년 쿠데타로 권력을 잡은 무샤라프에게 9·11 테러 이후 100억 달러의 원조를 퍼부었다. 핵무기 증강도 문제 삼지 않았다. 파키스탄 안정을 통해 대테러 전쟁의 전위대로 활용하려 한 것이었지만 부토 사망으로 벽에 부딪혔다. 알 카에다나 탈레반은 어떤가. 알 카에다 지도자 오사마 빈 라덴은 79년 소련의 아프간 침공 때 미국 중앙정보국의 전폭적 지원을 받았다. 미국은 94년 결성된 탈레반에도 초기에 지원했다. 자신이 키운 것들에 발목을 잡히는 형국이다.”

▲ 경향신문 12월29일자 사설.
한 마디로 미국의 대테러전쟁과 현재의 파키스탄 상황은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다는 말이다. 현재의 파키스탄 정국을 분석·설명하는데 있어 미국의 대테러전쟁을 언급하지 않고서는 제대로 된 분석이 가능하지 않은 것도 이 때문이다.

현재 방송사들은 이번 암살범의 배후와 관련한 보도에 있어 알 카에다나 무샤라프, 파키스탄 정보부 등에 초점을 맞춰 보도하고 있다. 철저히 이번 테러를 파키스탄과 이슬람권의 문제로 이번 사안을 사실상 ‘축소’시키고 있는 셈이다. 결과적으로 미국의 대테러전쟁은 부각되지 않았다.

부토 전 총리 암살, 파키스탄과 이슬람권만의 문제인가

‘반쪽자리’다. 현재의 파키스탄 정국을 보도·분석하는데 있어 미국의 대테러전쟁에 대한 언급은 필수적이다. 한겨레 12월29일자 사설 <대테러 전쟁 모순 드러낸 부토 피살>을 보자. 현재 파키스탄 정국을 가로지르는 핵심이 무엇인지 함축적으로 제시돼 있다.

“이번 사태는 미국이 주도하는 대테러 전쟁의 모순을 그대로 보여준다. 미국은 이 전쟁에 필요하다는 이유로 페르베즈 무샤라프 군사정권을 적극 지지해 왔다. 민심이 이반하는 등 무샤라프 정권의 권력 기반이 흔들리자, 망명 중이던 부토를 최근 귀국시켜 권력을 분점하도록 종용한 것도 미국이다. 친서방적인 부토를 통해 이슬람 무장세력에 대한 공세를 강화하겠다는 미국의 구상은 이번 사태로 근본적 수정이 불가피하게 됐다.”

▲ 한겨레 12월29일자 사설.
이번 부토 전 총리의 암살로 인해 “망명 중이던 부토를 최근 귀국시켜 (파키스탄) 권력을 분점하도록 종용한” 미국의 의도는 실패로 귀결됐다. 미국의 의도가 실패했다는 것은 향후 파키스탄 정국에 대한 미국의 ‘장악력’이 불완전해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미국이 현재 진행 중인 테러와의 전쟁도 일정부분 ‘전략수정’이 불가피하다는 말이기도 하다.

파키스탄 정국이 급속도로 혼란상황을 겪게 되면 미국이 현재 파키스탄과 접경한 아프가니스탄에서 벌이고 있는 알카에다와의 ‘전쟁’ 자체가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지도를 펴놓고 파키스탄의 지정학적 위치를 한번 보자. 파키스탄은 걸프 지역에 들어가는 입구에 있다. 바로 이 전략적·지정학적 위치의 중요성 때문에 파키스탄의 핵무기까지 용인한 미국이다. 그런데 만약 파키스탄의 정국이 악화돼 이 지역에 대한 미국의 영향력이 약화된다면? 단순히 파키스탄 뿐만 아니라 중동 지역 자체에 대한 미국의 통제력이 급속도로 상실될 우려가 있다.

파키스탄과 중동지역에 대한 미국의 장악력 축소와 대테러전쟁

“앞으로 미국과 무샤라프 정권은 파키스탄내 대테러 전쟁에 더 많은 병력과 자원을 투입하려는 유혹에 빠질지 모른다”는 한겨레 사설(12월29일자)의 지적을 유의미하게 들여다 볼 필요가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는 향후 파키스탄을 둘러싼 정국이 내분으로 빠져들 가능성이 높다는 말이고 이는 국제사회의 평화를 위협할 수 있는 상황으로까지 연결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앞으로 미국과 무샤라프 정권은 파키스탄내 대테러 전쟁에 더 많은 병력과 자원을 투입하려는 유혹에 빠질지 모른다. 이는 이슬람 세력 전체의 반발을 불러 모순을 더 심화시킬 것이다. 그래서는 안 된다. 그보다는 지속적인 민주화를 통해 국민 통합을 유도하고, 직접적 범죄 혐의가 있는 조직이나 개인으로 대테러 전쟁 대상을 최대한 줄여가야 한다. 전화위복을 이뤄낼 미국과 무샤라프 정권의 결단이 요구되는 때다.”

한겨레 12월29일자 사설 가운데 일부다. 현재 파키스탄 정국을 전하는데 있어 언론보도의 방점이 어디에 찍혀야 하는지를 이 사설은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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