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들 사이에서 자주 쓰이는 용어 가운데 엠바고(embargo 특정 시점까지 보도 유예)라는 게 있다. 당초 엠바고는 스페인어 ‘embargar’에서 나온 말로, 한 나라가 상대편 나라의 항구에 상업용 선박이 드나드는 것을 금지하도록 법으로 명령하는 국제법 행위를 의미했다. 그러나 현재는 취재 대상이 기자들을 상대로 보도 자제를 요청하거나, 기자실에서 기자들 간의 합의로 일정 시점까지 보도를 자제하는 행위를 뜻하는 언론계 용어로 사용된다.

청와대를 비롯한 정부 부처와 출입 기자단 사이에서 자주 쓰이는 엠바고는 이명박 정권 뿐 아니라 이전 정권부터 유지돼온 그들만의 오래된 관행 가운데 하나다. 그러나 지금, 엠바고는 단순한 보도 유예를 의미하는 것을 넘어 현 정권의 언론관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하나의 상징이 됐다. 정권이 바뀐 뒤, 청와대를 비롯한 각 정부 부처는 언론을 향해 잦은 엠바고 요청을 했다. 언론계 뿐 아니라 출입 기자단 내부에서조차도 잦은 언론 마사지, 잦은 엠바고 요청 등 정권의 언론관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 대통령 특사 자격으로 리비아를 방문했던 이상득 전 국회부의장이 13일 오전 인천공항을 통해 귀국한 뒤 최근 영포회 의혹과 관련한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 ⓒ연합뉴스

이런 가운데 또 다시, 엠바고 논란이 일고 있다. 최근, 한국 정부와 리비아 정부가 외교적 갈등을 빚고 있는 것이 제대로 보도되지 않은 주요한 이유가 국익을 고려한 외교통상부의 ‘엠바고’ 요청이 있었기 때문인 것으로 드러났다.

외교통상부가 엠바고 요청을 하고, 외교부 출입 기자단이 이를 받아들이면서 국내 언론에는 한국과 리비아와 관련된 보도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 MBC를 비롯한 일부 언론만이 한국과 리비아 정부의 이상 기류를 전하며 그 이유로 ‘한국 기독교인들의 선교’를 언급했으나, 실상은 달랐다. 아랍 현지 언론은 “한국인이 리비아에서 간첩 활동을 벌이다 체포됐다” “리비아 정부가 간첩 활동을 벌이던 한국인들을 체포했다”고 대대적으로 보도했으나, 국내 언론들은 이를 알지 못했다.

28일 <동아일보> 보도에 따르면, 지난 6월초, 주리비아 한국대사관 소속 국가정보원 요원이 리비아 현지 정보원에게 돈을 건네는 장면이 리비아 당국에게 포착됐다. 리비아 정부는 이 직원을 구금 조사한 끝에 ‘페르소나 논 그라타’(기피인물)로 통보, 지난달 18일 추방했다. 이후, 사태의 심각성을 느낀 정부는 지난 6일부터 13일까지 이상득 한나라당 의원을 대통령 특사로 리비아에 보냈으나 실익을 얻지 못했다. 이후 외교통상부는 지난 16일, 기자들에게 관련 사항을 전하며 “협상이 원만히 끝날 수 있도록 국익을 위해 보도를 자제해 달라”며 엠바고를 요청했다. 외교부 기자단은 이를 받아들였다.

▲ 리비아의 한국 외교관 추방사건으로 양국간 외교갈등이 우려되고 있는 가운데 28일 서울 세종로 정부중앙청사에서 정운찬 국무총리가 리비아 인접국가인 주한 수단대사와 만나 대화하고 있다. 이자리에는 김은석(왼쪽) 국무총리실 외교안보정책관과 이욱헌(왼쪽 네번째) 외교통상부 아프리카중동국 심의관이 배석했다. ⓒ연합뉴스

그들만의 오래된 관행, 엠바고

지난 26일 저녁 무렵, 트위터에는 한국인이 리비아에서 추방된 것과 관련한 트윗이 돌기 시작했다. “리비아 현지에 있는 이들에게 들었는데 한국인이 ‘스파이’ 활동을 하다 추방됐다고 한다”는 등, 아랍 현지 언론 보도 내용이 트위터리안들에 의해 계속 리트윗(퍼나르기) 됐다. 그리고 27일, <미디어오늘>이 아랍 현지 언론의 보도를 전하면서 외교통상부와 출입 기자단 사이에 존재했던 엠바고는 깨지게 됐다.

인터넷을 비롯해 트위터, 페이스북, 유투브 등 대안미디어(소셜네트워크)에는 오늘도 갖가지 소식들이 넘쳐난다. 지금도 실시간으로 갖가지 정보들이 올라온다. 이 정보는 또 다른 이용자에 의해 확산된다. 이러한 정보들은 나라, 공간을 초월해 수없이 돌고 돈다. 주류 언론사에 속했다는 이유로, 출입 기자단에 속했다는 이유로, 때로는 ‘기자’라는 이름을 갖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정보를 독점하고 소유했던 과거와는 너무 다른 요즘이다. 넘쳐나는 정보 가운데 더 이상 ‘기자’라는 이름만으로 독점하고, 유예할 수 있는 것은 그다지 많지 않다.

빠르게 돌아가는 세상의 변화 앞에, 기자들은 무엇을 하고 있을까? 기자들은 어떤 모습으로 취재를 하고 있을까? 안타깝게도, 기자들은 기자실 내부에서 오래전부터 계속되어 온 관행에 익숙한 듯하다. 사안의 민감성에 따라 갖가지 이유를 들어 온더레코드(공식 브리핑), 백그라운드 브리핑(취재원을 밝히지 않는 것을 전제로 한 배경 설명), 딥 백그라운드 브리핑(사안에 대한 심층 배경 설명), 오프더레코드(비 보도 전제 브리핑), 엠바고(특정 시점까지 보도 유예) 등으로 나누는 것 또한 여전하다.

과거처럼, 그들의 ‘합의’ 만으로 관련한 모든 정보가 통제될 수 있을까? 이제 더 이상의 엠바고는 의미가 없다. ‘출입처’라는 끈끈함으로 뭉쳐있는 정부 부처와 출입 기자들이 시대의 흐름에 맞춰 변화해야 할 때다. 그들이 갖고 있던 오래되고 묵은, 쾌쾌한 관행을 기자들 스스로 벗어버려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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