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의 현 사태에 관해서다. 결론부터 말한다. 사측은 임금단체협약 체결, 공정방송위원회 설치 등을 주된 내용으로 하는 노측의 요구조건을 즉각 수용하라. 그래서 파업하는 노동자들이 공영방송 강화의 일정 성과를 갖고 현장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하고, 사측의 입장에서도 타협과 화해라는 상식을 되찾아가는 모습을 보이라. 그럼으로써 영점으로 치달은 KBS의 신뢰성, 정당성 회복의 기회를 놓치지 마라. 일석이조, 일석삼조다. 수신료를 포함해 KBS의 모든 문제를 풀 열쇠는 아니지만, 그래도 실마리가 될 끈임에는 틀림없다.

▲ 김인규 KBS 사장 ⓒ KBS
그러하니 또 다른 우를 저지르지 마라. 특히 김인규 사장에게 말하고 싶다. 변화하는 안팎의 동정을 명확하게 읽어, 노사합의의 결론을 서둘러 도출하라는 것이다. 그게 정답이다. 이렇게 말하고 싶은 것이다. 그런데 현실은 어떠한가? 노사간 물밑 비공식 접촉이 있었다지만, 무슨 이유인지 다시 교착 상태다. 대화의 실마리를 찾지 못해, 이번 사태가 자칫 장기화 국면으로 들어설 수 있다는 우려마저 제기되고 했다. 사측의 ‘강경파’가 사장의 결단을 막고 있다는 보도까지 있다.

22일의 고등법원은 분명하게 결정을 내렸다. 사측이 제기한 단협 가처분 이의신청에 대해 기각결정을 내린 것이다. 1심에 이어 2심에서도 언론노조 KBS본부의 손을 번쩍 들어주었다. 미적거리는 KBS 사측에 대해 한 마디로 이유가 없다고 판단했고, 따라서 노조(헷갈릴 수 있으니 전국언론노조 KBS본부라고 해야겠지만)와의 단체협상체결에 성실하게 임할 것을 법의 이름으로 명령한 것이다.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 일은 보다 합리적이고 상식적인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는가?

오늘까지는 별로 그렇지 않은 것 같다. 바람직한 방향으로 정리되지 않고 있다. 대화와 타협의 마무리를 짓지 못한 상태다. 정확하게 말해, 답을 못 찾은 게 아니라, 또렷하게 제시된 정답을 아직까지도 사측이 최종적으로 택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 누가 어떤 연유로 이렇게 주저하고 있는 것인가? KBS 파업의 평화적 해결을 기대하는 시청자의 목소리, 바로 지금 당장의 합리적인 타협이라는 사회의 요구를 누가 요상하게 회피하고 있는가?

‘사측은 단체교섭을 성실히 응하라’라고 입장 밝힌 ‘새노조’가 발목을 잡는 주범일리는 없다. 이제 그 수가 1000여명이 이른 전국언론노조 KBS본부 노조원들은 내게 매우 대화적으로 보인다. 지난 몇 차례 문화제에서도 사측에 대해 타협안을 내놓으라고 공개 요구하는 것을 들었다, 26일 성명서에서 다시 이들은 “사측이 지금이라도 사실상 법원 판결을 무시하며 KBS본부를 단협의 상대로 인정하지 않는 탈법적 태도를 버리고 단협 체결에 응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고 밝혔다.

이처럼 진지하게 협상에 임하고 있는 노조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것은 전혀 옳지 않다. 그렇다면 성실한 대화의 원칙을 기피하는 책임을 누구에게 돌릴 것인가? KBS 사측인가? 26일의 보도 자료를 통해 KBS 사측은 단체교섭 응낙 가처분 2심 결정을 존중하겠다고 밝혔다. 전국언론노조 KBS본부와의 단체교섭에 성실히 응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마땅한 일이고 당연한 말이다. 이것만 보면 일이 잘 풀릴 것 같다. 문제는 그 다음에 있다. “그러나 이번 가처분 결정이 KBS본부가 벌이는 파업의 불법성 여부를 결정해 주는 것은 아니다.”

대체 무슨 말을 하려는 건가? 법원의 판단을 존중해 성실히 단체교섭에 응하겠다고 해놓고는, 파업이 불법이기 때문에 대화할 수 없다는 논리의 교착으로 빠진다. 뭘 어쩌자는 건가? 결국 이런 생각인가? “이번 파업은 노조 측이 공정방송, 조직개편 등의 경영사항을 놓고 벌이는 것으로 임단협과는 관련이 없기 때문에 불법이다.” 따라서 먼저 “노조 측이 파업을 거두고 조속히 제작 현장으로 복귀해야 할 것”이다. 그러면 혹 대화가 가능할 수 있겠지만, “내부 논의를 거쳐 재항고를 신중히 결정할 예정”이기도 하다.

논리적으로, 현실적으로 잘 이해되지 않는다. 패러독스도, 아이러니도 아니다. 논리적이지 않은 모순, 억지스러운 궤변으로 들린다. 법원 판단을 정말로 존중하겠다면, 단협 가처분 이의신청을 기각한 결정을 겸허히 받아들이는 게 상식적이다. 진정 단체 교섭에 성실히 임할 계획이라고 한다면, 그 다음에는 바로 그렇게 행동으로 옮기는 게 논리적이다. 지금 당장 노조와의 단체협상에 책임감 있게 임하고, 이들과의 대화를 통해 상호 인정 가능한 타협안을 찾으며, 그래서 누구도 원치 않는 파업을 끝내고 상황을 정상으로 돌리면 된다.

그런데 대체 무슨 말이 그렇게 많은지 모르겠다. 파업은 불법이고, 불법집단과는 대화하지 못하겠다는 건가? 단협이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에 불가피하게 파업을 선택한 노조에게 ‘불법’ 딱지를 붙여놓고, 그런 ‘불법파업’을 접은 후에서야 법원 결정을 따라 단협을 하자는 것 아닌가? 대체 그래서 한 달이 가까운 KBS 사태가 절대 해결될 수 없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이런 억지 논리를 고집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아니 이런 타협불능, 협상불가의 목청을 높이는 자, 그래서 KBS를 계속해 불안케 만드는 집단은 누구인가?

법보다는 공권력에 더 충실코자 하는 억지 논리다. 정권 초기에나 가능했을, 이미 현 정권에서조차 더 이상 통하지 않을 낡은 패러다임이다. 구태의연함 그 자체이고, 현 정권도 이제는 별로 원치 않은 카드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한참 전에 버렸어야 할 후진 카드다. 대신에 이미 서로에게 슬쩍 깐, 시민사회와 시청자들도 벌써 대충 눈치 챈 협상과 해결이라는 새 카드를 용기 있게 짚어들어야 한다. 사실 누구나 봤을 때 ‘그 정도면 됐다’는 사태정리의 카드는 테이블에 나온 지 한참 오래지 않은가?

▲ 15일 저녁 7시, 서울 여의도 KBS본관 앞에서 개최된 '제2차 KBS 개념탑재의 밤'에는 주최측 추산 2000여명이 참석했다. ⓒ곽상아
‘불법’ ‘불법’이라고 하지만, 중앙노동위원회가 KBS본부와 사측의 조정 중지를 결정한 것 아닌가? 그런 결정에 따라 결국 합의점을 찾기 어려운 KBS본부는 합법적으로 파업의 길을 택하게 된 것 아닌가? 따라서 ‘불법파업’이라는 표현은 적절치 않은 말 그대로 ‘공권력’적 마인드이며, 지금이라도 당장 합의점을 찾으면 파업은 중지될 수 있는 것이다. 요컨대 합의할 수 있느냐 없느냐가 핵심인 것이고, 불법이냐 아니냐는 부차적이거나 핵심의 본질이 아니다. 원인과 결과를 잘 구분해야 하고, 원인을 찾음으로써 문제를 풀어야 한다.

문제를 제대로 파악해 정답을 찾아내는 것이다. 그 길 외에 KBS 사태해결의 답은 없음을 단언한다. 개인적으로 봤을 때, 엄경철 위원장이 원칙 없이, 그리고 투쟁에 나선 대의를 일정하게 관철시키지 않고 파업을 접을 것 같지 않다. 개념 탑재된 노조 구성원들이 비굴하게 사측의 복귀 명령에 순종할 것 같지 않다. 공정성, 공익성, 공영성의 차원에서 결정적 정당성의 위기에 처한 KBS에 공정성 회복의 채널, 공정성 실현의 장치를 두자는 게 과연 무리한 이른바 ‘정치적’ 주장인가?

‘강경파’가 문제해결을 막고 있다는 말이 떠돈다. 개인적으로 통화한 KBS 내부의 몇몇 사람들에게서도 그런 말이 들린다. <미디어스>의 곽상아 기자는 지난 22일 “김인규 타협하고 싶어하나 ‘강경파’가 막는다”는 제목으로 핵심을 찔렀다. 사실인가? 타결을 가로막는 ‘강경파’는 대체 누구인가? 공영방송 KBS와 시청자 대중, 그리고 위기에 빠진 정치권력 중 과연 누구의 이익을 위해 열심히 뛰는 자들인가? 아니면 정당성 상실한 내부 노동 기득권과 결탁된 세력인가? 무슨 연유, 무슨 정신에서 그렇듯 강경할 수 있는가?

권력 수구적인 태도, 정치 공학적인 자세를 버려야 한다. 민주주의 즉 정치를 회피하는 무원칙적 ‘강경파’는 판에서 빠지는 게 맞다. 그래서 사장이 현명하고 냉정하게, 무엇보다 현실적으로 결정을 내리도록 하라. KBS 전체의 이익을 위해 협상카드를 택해야 한다. 김인규 사장은 더 이상 회피하거나 눈치 보지 말라. 대화와 타협 밖에 없다. 자신을 포함한 KBS 전반의 위기를 해결해 가는 최소한의 노력부터 시작해야 한다. 공정방송을 요구하는 시민, 시청자 ‘강경파’의 눈치를 먼저 살펴, 지금 당장 ‘결단’을 내리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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