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조정되는 학생들

지난 주말 저녁 저는 중앙대 앞 흑석동의 한 골목에서 이 학교의 한 동아리에서 활동하는 학생들과 술을 마시고 있었습니다. 우연히 아동복지학과 새내기 학생이 저와 술잔을 기울이게 되었습니다. 그는 제게 하소연 했습니다. 학교 들어오자마자 과가 없어진다는 얘기를 듣고 괴롭다는 것이었습니다. 자신은 수능 점수에 맞춰서 들어온 학과가 아니라 중앙대에서 아동복지학을 전공하고 싶어서 입학한 것인데 학교가 왜 이 학과를 없애버리려 하는 지 모르겠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중앙대학교가 취업이 잘 되는 학과들 위주로 구조조정을 하고 있는데 여기서 소외된 학생들은 이렇게 자신이 배우고 싶은 학문이 곧 사라질 것 같아 불안해하고 있었습니다. “대학은 취업학원이 아닌데 지금 당신 학교의 총장은 대학의 존재 이유를 잘못 이해하고 있는 듯하다”고 위로를 해주었습니다.

술잔이 끊임없이 오고가고 대화가 무르익어 갔지만 학생들의 얼굴도 발갛게 익어 갔습니다. 취한 학생들을 택시에 태워 학교의 숙소에 데려다주었습니다. 그리고 이 학교를 터벅터벅 걸어 나오는데 얼마 전 이 학교에서 구조조정 반대 시위를 하다 퇴학당한 한 학생을 캠퍼스 안에서 마주쳤습니다. 서로 안면이 있었기에 반갑게 인사를 나누는데 이 분. 눈을 커다랗게 뜨고 제게 할 말이 있다며 입을 제 귀 가까이 대었습니다.

▲ 노영수씨 사찰 문건 ⓒ중앙대학교 총학생회

“두산중공업 직원이 학생 사찰”

“무슨 일을요?”

“오늘 오후에 두산타워 인근에서 제적생 규탄 집회를 준비하는데 어떤 사람이 우리를 보면서 뭔가 기록하고 있는 거에요. 우리가 다가가서 확인하려 하자 막 도망가더라고요. 30분 넘게 좇아가서 겨우 잡았는데 알고 봤더니 두산중공업의 이 아무개 대리였어요. 그 사람이 갖고 있던 문서를 경찰의 도움을 받아 살펴봤는데 우리의 활동 내용이 세세하게 적혀 있었어요. 우리가 누구를 만나고 있고 어디서 뭘 할 건지 빼곡히 적혀 있더라고요. 문서 이름은 ‘노영수 동향 보고’였어요.”

“그 사람 신분을 정확하게 확인한 거에요?”

“경찰이랑 같이 확인했어요. 학생처 직원이 우리를 감시해도 놀라운 일인데 어떻게 일반 기업의 직원이 우리를 감시할 수 있지요?”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두산중공업의 직원이 왜 중앙대 학생을 감시할까. 두산그룹이 중앙대의 재단인 건 맞지만 이건 중공업 회사의 직원들이 할 일이 아니지 않은가. 학생에게 언론사에 제보를 하라고 일러주었습니다.

26일 오후가 되자 학생들이 각 언론사에 보도자료를 보내기 시작했습니다. 조용히 동향을 주시하고 있던 저도 그제서야 트위터에 글을 올렸습니다. 중앙대학교 직원들이 제 트위터를 팔로잉 하고 있기 때문에 뭔가 알려줘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학교의 학생들이 어떤 일을 당하고 있는 지 말입니다.

“중앙대 제적생이 두산그룹의 사찰의 받았습니다. 사찰문건까지 확보된 상태이니 중앙대학교는 재단에 강력히 항의하고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하시기 바랍니다.”

그 때까지만 해도 저는 두산중공업의 직원이 벌인 황당한 해프닝인 줄 알았습니다. 이윤 창출이 최우선인 집단이니 자신들에게 해가 될 수 있는 행동을 하는 사람들을 감시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자본은 그렇게 늘 천박한 유혹에 시달리는 편이니까요.

그런데 26일 저녁. 각 언론사에서 기사가 나오기 시작하면서 저는 더욱 황당해졌습니다. 학교가 스스로 벌인 일이었습니다. <한겨레> 보도를 보니 이 아무개씨는 두산에서 2008년 파견된 직원으로 재단 사무처에서 일해 왔던 분이었고 학교 쪽은 “노영수씨가 학교와 두산그룹의 명예를 해치는 활동을 해 주시했던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결국, 이 모든 일은 박범훈 총장이 지시한 일로 밝혀졌습니다. 학교가 스스로 자본 앞에 머리를 조아린 것입니다.

자본에 영혼을 팔아버린 대학

▲ 26일 오전 서울 혜화경찰서에서 중앙대 퇴학생 노영수씨와 중앙대 총학생회가 '사찰행위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오마이뉴스 이미나
‘창녀언론’(Brass check)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1919년 업톤 싱클레어라는 작가가 기자들이 대기업이나 광고주의 이익을 옹호하는 기사를 쓰는 것을 사창 행위에 비유해 고발한 책의 이름입니다. 싱클레어는 기업의 부도덕한 모습을 감시하고 견제해야 할 책무를 지닌 언론인들이 스스로 몸과 영혼을 팔아버린 것을 고발했습니다. 그 후 ‘창녀언론’ 이란 말은 자본에 종속된 슬픈 언론의 모습을 상징하는 말이 되었습니다.

중앙대가 “모기업의 명예를 보호하기 위해” 스스로 자신의 학생들을 감시하고 사찰한 뒤 어딘가에 보고하는 행동을 해왔다는 것을 자백한 뒤 제 머릿 속에는 ‘창녀 언론’과 비슷한 비유가 떠올랐습니다. 기업에 올바른 경영철학을 제시하고 부도덕한 행위를 감시해야 할 상아탑이 되레 학생들이 기업에 해가 되는 일을 하지는 않는 지 감시하는 일에 나서고 있었다니. 학문의 전당으로서 양심을 팔아버린 것처럼 보이는 중앙대의 행동은 실망스럽기 그지 없었습니다.

노영수씨의 싸움은 우리 지성인들의 싸움

노영수씨는 이 학교 독문과 학생이었습니다. 지난 해 진중권씨가 겸임교수로 있다가 쫓겨난 그 학과의 학생입니다. 학교는 올 해 구조조정을 선언하면서 독어독문학과를 그 대상에 올렸고 학생들은 반발했습니다. 여기에 적극 나섰던 학생이 노영수씨입니다. 하지만 학교는 학생들의 이야기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올 봄에 이사회를 열어 구조조정안을 통과시켜버렸습니다. 수십 년간 존재해왔던 학문이 불과 수개 월만에 사라질 위기에 놓였습니다. 노영수씨는 결국 학교 앞 공사장에 놓인 기중기 위에 올라가서 시위를 벌였습니다. 그리고 결과는 ‘퇴학’이었습니다.

노영수씨는 행정 소송을 준비중입니다. 물론, 수년이 흐른 뒤 결국 승소할 겁니다. 징계의 수위가 너무 과하거든요. 예전 고대 출교생들도 수년간의 싸움 끝에 결국 학교로 돌아갔듯이 이 학생도 학교로 돌아갈 겁니다. 그런데 이 분이 학교를 졸업하면 이미 삼십대를 훌쩍 넘깁니다. 과연 어디에 취업할 수 있을까요. 과연 이 친구의 젊음은 누가 보상해줄 것인가요.

노영수씨는 외로운 싸움을 벌이고 있습니다. 두산그룹과 관련 있는 공장 근처에서 삼보일배도 해보고 했지만 학교는 제적결정을 철회하지 않고 있습니다. 다행히도 한 젊은 다큐멘터리 작가가 그의 일상을 묵묵히 기록해주고 있는 모양입니다.

그의 싸움이 잊히지 않길 바랍니다. 자본에 몸과 영혼을 팔아버린 우리 대학의 슬픈 자화상이 잊히지 않고 기록되길 바랍니다. 이런 천박한 흐름을 내버려두고 있는 우리 사회 구성원들이 스스로 낯 뜨거워할 때까지 말입니다.

노영수씨가 꼭 이 싸움에서 이기길 바랍니다. 그의 싸움은, 추운 ‘지성의 겨울’에서 ‘학문의 양심’을 지키려 싸우는 모든 지성인들의 싸움이기도 하니까요. 당신을 응원하겠습니다.

#노영수 씨 행정소송 돕기 계좌번호
우리은행 1002-809-570-151 (예금주 노영수)

#‘창녀’라는 표현은 ‘창녀 언론’에서 가져온 말로 사용하였을 뿐, 특정 인물과 성을 폄하할 의도가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현재 한겨레 방송부문 뉴스팀에서 취재를 하고 있는 기자다.
영상 카메라와 취재수첩을 함께 들고 현장을 누비는 우리나라에서 제일 앞선 멀티형 기자가 돼려고 노력중이다. 우리 사회 경제권력과 정치권력을 감시하는 사명을 놓는 그 순간, 기자가 아닌 단순 직장인이 된다는 생각을 갖고 산다. 그저 그런 기자가 되느니 문제적 기자가 되는 게 차라리 낫겠다고 생각하고 살기도 한다. 한겨레와 한겨레 독자들을 무지지 사랑한다. 개인 블로그 http://blog.hani.co.kr/catalunia



“그 소식 들었어요? 오늘 정말 황당한 일을 당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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