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왕사신기>에 이어 <대조영>이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면서 끝났다. 반면에 <로비스트>와 <인순이는 예쁘다>는 신통치 않은 시청률로 막을 내렸다. 이렇게 2007년 이런저런 이유로 화제를 모았던 드라마들이 모두 마무리되었다. 그리고 2007년이 저물어가고 있다. 여기저기서 2007년을 결산하느라 여념이 없다.

2007년 드라마 결산의 정점은 각 방송사마다 별도로 준비하고 있는 ‘연기대상’일 것이다. 하지만 연기자를 중심으로 한 연기대상이다 보니 작품의 완성도보다 ‘시청률’을 기준으로 연기자의 논공행상이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아 한 해의 드라마를 결산하기에 별로 객관적이지 않다. 그래서 다소 관습적이기는 하지만, 2007년도에 방송된 드라마들의 경향을 정리하면서 2008년도 드라마의 관전 포인트를 짚어본다.

사극 열풍과 전문·시즌 드라마의 정착 가능성

▲ MBC <태왕사신기> ⓒMBC
2007년 벽두부터 수많은 화제 속에 방영되었던 <하얀거탑>부터 ‘고구려’ 시리즈의 마지막을 장식한 연말의 <대조영>에 이르기까지 2007년을 수놓았던 많은 드라마들은 대략 네 가지 측면에서 예년과 다른 모습을 보였다.

첫째, 사극 열풍이다. 2006년에 점화되어 2007년 상반기까지 방송되었던 <주몽>과 <연개소문>, <대조영>, <태왕사신기> 그리고 <왕과 나>와 <이산>에 이르기까지 멈출 줄 모르는 사극 열풍은 2008년에도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사극은 크게 두 가지 경향으로 분류할 수 있다. 중국의 동북공정에 맞서 기획된 고대사 배경의 사극들이 민족의 영웅을 전면에 내세웠던 반면, <왕과 나>와 <이산>은 군왕을 주인공으로 내세우면서도 절대 권력 자체에 집중하지 않음으로써 ‘영웅’ 담론에서 빗겨 서 있는 차이를 보인다. 고대사의 영웅들이 21세기의 새로운 CEO형 영웅으로 변신하는 과정에서 혹시라도 배타적 민족주의가 발동한 것은 아닌지 되돌아보아야 한다. 그리고 조선조 영․정조 시대의 당쟁을 묘사하는 과정에서 21세기 대한민국의 정치 현실을 기계적으로 대입하는 것은 아닌지도 고민할 필요가 있다.

이 같은 관점을 토대로 2008년 방영 예정인 <세종대왕>과 <쾌도 홍길동>이 극과 극의 신분으로 갈라지는 ‘세종대왕’과 ‘홍길동’을 어떻게 묘사하는지 비교하는 것도 또 다른 관전 포인트가 될 것이다.

▲ MBC <하얀거탑> ⓒMBC
둘째, 전문드라마와 시즌드라마의 정착 가능성, 그리고 트랜디드라마의 새로운 변화이다. 2007년은 의학전문드라마 <하얀거탑>과 <외과의사 봉달희>, 수사전문드라마 <히트>의 성공으로 전문드라마가 한국드라마의 지평을 확대할 수 있는 가능성으로 평가받은 해이다. 하지만 <에어시티>와 <로비스트>의 실패로 전문드라마가 ‘전문직’을 빙자한 ‘연애’ 이야기일 뿐이라는 예전의 비난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상황이 벌어지면서 ‘전문드라마’는 여전히 가능성으로만 남아 있다. 2007년 말 방영을 시작한 <뉴하트>와 2008년 방영 예정인, 방송사를 배경으로 한 <스포트라이트>와 <온 에어>가 전문드라마의 성공적인 정착을 가늠할 수 있는 시금석이 될 것이다.

그리고 <옥션하우스>는 비록 시청률은 저조했지만 ‘미술품 경매사’라는 전문직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일정한 성과를 거둔 시즌드라마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2008년 방영 예정인 <비포 앤 애프터>가 <옥션하우스>의 성과를 어떻게 이어갈 지 눈 여겨 볼 필요가 있다. <경성스캔들>, <커피프린스 1호점>, <메리대구 공방전>, <얼렁뚱땅 흥신소>, <인순이는 예쁘다>도 등장인물의 내면심리를 섬세하게 묘사한 감각적인 연출로 한동안 자기 복제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던 트랜디드라마의 새로운 변화를 이끌어낸 드라마로 시청률과 상관없이 높이 평가할 만하다.

블록버스터 드라마의 실패 … 정형화된 인물과 엉성한 구조가 원인

셋째, 블록버스터 드라마와 스타급 연기자를 전면에 내세운 드라마의 실패이다. 평균 제작비를 훨씬 상회하는 블록버스터 드라마 <에어시티>와 <로비스트>가 정형화된 등장인물과 엉성한 이야기 구조로 시청자들의 외면을 받은 것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또한 <사랑에 미치다>, <푸른 물고기>, <마녀유희>, <케세라세라>, <문희>, <못된 사랑> 등 스타급 연기자를 전면에 내세운 드라마들도 시청자의 외면을 받기는 마찬가지였다.

▲ SBS <로비스트> ⓒSBS
이 같은 상황은 시청자의 공감을 이끌어내기 위해서 개성 있는 등장인물과 그럴 듯한 이야기 구조가 절대적임을 반증한다. <태왕사신기>는 블록버스터와 스타급 연기자가 출연하여 절반의 성공을 거둔 드라마라는 점에서 다소 예외적인 경우이다. 역대 최고의 제작비와 톱스타 배용준의 출연으로 방영 전부터 화제가 됐던 <태왕사신기>는 컴퓨터 그래픽 기술로 상상의 세계를 현실화시키면서 판타지 사극이라는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는 성과를 올렸다. 하지만 후반부로 가면서 극에 몰입하기 어려울 정도로 흐트러진 이야기 구조 때문에 작품의 완성도에 균열이 발생한 것은 참으로 아쉬운 일이다.

마지막으로 2007년 드라마를 결산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케이블TV드라마의 약진이다. <막돼먹은 영애씨>와 <별순검> 그리고 <정조암살미스터리 8일>과 <메디컬 기방 영화관> 등은 특정 시청자를 소구대상으로 하는 케이블TV의 장점을 살린 드라마들이다. 케이블TV드라마는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하는 공중파 방송에서 소화하기 어려운 소재를 통해 기존 공중파 방송과 차별화된 드라마를 선보임으로써 결과적으로 한국드라마의 지평을 확대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시청률을 의식한 선정성과 폭력성이 시청자의 호기심을 잠시 충족시킬 수 있겠지만, 궁극적으로 케이블TV드라마의 앞날에 먹구름을 드리우는 자충수가 될 수 있음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막돼먹은 영애씨>의 시즌3과 <별순검>의 시즌2가 예정되어 있는 2008년에도 케이블TV의 장점을 살린, 작지만 알찬 드라마가 많이 방영되기를 기대해본다.

케이블TV 드라마의 '약진'

2007년 드라마를 관습적으로 결산하는 과정에서 언급하지 못한 드라마들도 많이 있다. 한국드라마에서는 보기 힘들었던 액션 느와르 장르를 개척한 <개와 늑대의 시간>, 뫼비우스의 띠처럼 얽힌 등장인물의 관계를 통해 새로운 이야기 구조를 선보인 <마왕>, 한국드라마의 빼놓을 수 없는 소재 ‘불륜’을 정면으로 다루면서 사랑과 결혼, 가정의 의미를 천착한 <내 남자의 여자>, 다소 폭력적이고 선정적인 이야기 구성과 연출에서 무리수가 있었지만 우리 사회에 만연한 천박한 자본주의 실상을 성공적으로 보여준 <쩐의 전쟁>, 예인 황진이의 삶을 성공적으로 재구성한 <황진이> 등이 대표적이다. 일일연속극 <하늘만큼 땅만큼>, <미우나 고우나>와 주말연속극 <행복한 여자>와 <며느리 전성시대> 등도 시청자의 이목을 집중시킨 드라마들이다. 하지만 상반되는 가정의 모습을 대비시켜 가족 구성원 간의 갈등을 치유하고 화해를 모색한다는 기존의 일일연속극과 주말연속극의 정형화된 틀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2007도는 등장인물이 살아 있고 이야기 구조가 탄탄한 극본과 그것을 영상으로 형상화시키는 연출력이 뛰어난 드라마만이 시청률이나 작품성 측면에서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다는 평범한 사실을 확인시켜준 한 해였다. 2007년도 드라마의 성과와 한계를 차분히 되돌아보면 2008년도 드라마들의 성공 가능성도 비교적 쉽게 예측할 수 있을 것이다. 2008년에는 정형화된 등장인물과 관습적인 이야기 구조에서 벗어나 참신한 내용과 새로운 형식 실험으로 무장한 드라마가 많이 나오기를 기대해본다.

윤석진 교수는 2000년 여름 한양대에서 <1960년대 멜로드라마 연구-연극·방송극·영화를 중심으로>로 문학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2004년 가을 <시사저널>에 '캔디렐라 따라 웃고 웃는다'를 발표하면서 드라마평론 활동을 시작했다. <김삼순과 장준혁의 드라마공방전> <한국 멜로드라마의 근대적 상상력> <한국 대중서사, 그 끊임없는 유혹> 등의 저서와 <디지털 시대, 스토리텔러로서의 TV드라마 시론> <극작가 한운사의 방송극 연구> 등 다수의 논문이 있다. 현재 충남대 국문과에서 드라마 관련 전공 과목을 강의하면서 한국 드라마의 영상미학적 특징에 대해 연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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