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정은 일상이 소멸하는 시간이다. 팽팽하게 긴장됐던 일상은 공교롭게도 하루가 시작되는 자정이라는 시간에 이르는 순간, 전날의 긴장을 접고 평온한 어둠으로 사라진다. 자정에 이르러 이성과 감성은 스며들 듯 교차한다. 그런 의미에서 자정은 하루의 죽음을 알리는 시간이다. 하루의 시작이 오전 9시가 아니라 자정인 건 삶이 죽음에서 기원해 죽음으로 돌아가는 찰나의 순간임을 암시한다는 점에 닿아 있다.

▲ 심야식당 캡처.
자정부터 아침 7시는 일상에서 소외된 시간이기도 하다. 이 소외된 시공간에 깨어있어야만 하는 사람들은 일상성에서 벗어난 지점 어딘가에 위치해야만 하는 존재들이다. 잠들 수 없거나 혹은 잠들기를 거부하거나, 팍팍한 일상이 그들을 잠들 수 없도록 강요하는 건 마찬가지다. 자정부터 아침 7시까지의 시간은 그래서 일상에서 유리되거나 소외된 자들의 것이다. 잠들지 않거나 잠들지 못함은 이대로는 눈감고 죽음에 이를 수 없는, 비루했던 삶에 대한 끈질긴 회한과 닮아 있다.

여기 이 소외된 시간에 소외된 자들에게 문을 여는 가게가 있다. 이름은 그냥 밥집. 하지만 도쿄 신주쿠 골든가 구석에 위치한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이 밥집을 '심야식당'이라고 부른다. '하루가 끝나고 귀가를 서두르는 사람들. 단지 뭔가 찜찜한 기분이 들어서 어디로 새고 싶은 기분이 드는 밤도 있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여기 모여든다. 그 중엔 야쿠자도 있고, 동성의 이 야쿠자를 사랑하는 게이도 있다. 엔카 가수가 되기 위해 매일 밤 가라오케에서 노래를 부르는 지망생, 뮤지컬 배우가 되려다 실패한 스트립퍼, 포르노에 출연한다는 이유로 고향 집에서 배척당한 AV 배우, 끝내 챔피언이 되지 못하는 복싱 선수, 어느덧 퇴물이 된 아이돌 가수 출신의 여배우, 신문 배달로 고학하는 대학생 등이 여기를 찾는다. 이들은 언제나 그 자리에서 팔짱끼고 묵묵히 서서, 이야기를 들어주면서도 그들의 고민에 개입하지 않는 지점에 머물러 있는 마스터(식당 주인)와 대면해 일상을 위로받는다.

마스터는 소외된 자들을 깊은 우물처럼 흡수하는 존재다. 10부작 드라마의 마지막 장면에서 암시하듯 마스터에겐 얼굴에 깊이 베인 흉터만큼이나 깊숙이 가려진 과거가 있다. 하지만 이 드라마는 그 과거를 털어놓지 않는다. 식당을 찾는 소외된 자들은 그래서 그에게 의지하는 지도 모른다. 만약 그들이 마스터의 과거를 모두 알게 된다면, 자신의 사연과 개별적 상처가 가진 무게감을 그의 과거와 견주며 때론 위축되지 않았을까. 그런 점에서 그는 우물과 같이 소외된 자들의 목을 가볍게 축여주며 그들을 위무하는 존재다.

인간은 자신의 삶에 타인의 존재를 개입시키는 것으로 삶의 상처를 위로받을 수 없다. 상처는 끝내 개별적으로 존재할 뿐이다. 고통을 겪고 있는 타인에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옆에 있어주는 것 밖에 없다. 때론 섣부른 개입과 개입 이후 발생할 수 있는 동정이 폭력이 되기도 한다. 게다가 개별적 욕망이 교차하며 혼재된 도시라는 공간 속의 인간은 끝없이 자신의 욕망 안에서 고독할 수밖에 없고, 자본주의라는 체제 안에서 이뤄지는 인간관계는 온전히 주체적으로 관계를 인식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그래서 마스터는 고독한 개별적 존재들과 그 관계의 인식 지점으로 개입하기 직전의 경계 그 어딘가에 서 있다.

▲ 심야식당 캡처.
내가 이성의 부딪힘들에 지쳐 어디론가 돌아가고플 때 '심야식당'은 죽음과 같은 평온함, 유리된 일상들의 비루한 소소함, 존재 자체로 건네는 따뜻한 위무로 거기 있었다. 거대 서사에 매료된 우리의 눈으로 보기엔 사소하기 이를 데 없는, 그래서 발로 툭 건드리면 허물어질 것 같은 이야기들이지만, 이 이야기들은 그 자체로 거대한 톱니바퀴의 틈새를 틈입하고 들어오는 힘이 있다. 이건 사실 천편일률적인 연애 이야기를 다루는 한국 드라마나 거대 서사로 물든 한국의 소설, 영화에선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요소라고 할 수 있겠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전공투 세대의 어느 지점의 이야기에서 끊임없이 공전함에도 그의 소설이 거대 서사로만 우리를 압도하고 있지 않은 것처럼 느껴지는 건, 그의 소설에 촘촘히 박혀 있는 일상에의 농밀한 관찰에 그 까닭이 있다는 점에서 이는 일본 문화의 특징으로 포괄되기도 한다.

▲ 심야식당 캡처.
그런 점에서 감성의 향유로 잠시나마 일상을 위로받고 싶을 때, 나는 자정이 지난 심야식당의 문을 열 듯 반복적으로 이 드라마를 찾았다. 가끔은 일본 문화 특유의 과도한 몸짓으로 실소를 자아내기도 하고, 사소한 것에 대한 과도한 진지함이 의아함을 낳기도 하고, 결국 돌아가는 곳이 세속적인 성공에의 꿈과 가족이라는 점에서 아쉬움도 남지만, 그래도 스스럼없이 식당의 미닫이문을 열었던 건 삶이 직선주로 위에서 치달릴 때 인간은 때로 일상에서의 소외를 스스로 선택하기도 한다는 점을 깨달아서다. '하루가 끝나고 사람들이 귀가 길을 서두를 무렵 나의 하루가 시작된다. 돈지루(돼지고기 된장국) 정식, 맥주, 일본 술, 소주. 메뉴는 이것 뿐. 나머지는 맘대로 주문해주면 가능하면 만든다는 게 나의 영업 방침이야. 영업시간은 밤 12시부터 아침 7시쯤까지. 사람들은 심야식당이라 부르지. 손님이 오냐고? 그게 꽤 많이 와.' 왠지 '심야식당'같은 시공간이 거기 있다는 것만으로 위로가 될 법하지 않은가.

추신) '심야식당'은 2009년 일본 마이니치-TBS에서 인기리에 방영됐던 드라마다. 한국에서도 블로그 등을 통해 입소문이 나면서 존재감을 조용히 넓혔다. 아시아드라마전문채널 AsiaN HD(http://www.asiantv.co.kr)는 지난 19일 첫 방송을 시작으로, 오는 30일까지 밤 12시에 이 드라마를 방영하고 있다. 스카이라이프(67번), 쿡 TV(107번), Btv(409번)에서 볼 수 있다.

서울신문과 메트로신문에서 7년쯤 줄곧 사회부 기자로 일을 하고 있다. 문화부에서 영화에 대한 글을 쓰고 싶다고 심각하게 말해왔지만, 주변에선 코웃음치며 농담으로 받아들여 좌절해왔다.

19년 동안 87년 민주화운동을 '빨갱이들의 폭동'이라고 일컫는 곳에서 자랐고, 20대는 그런 10대에 대한 극렬한 반동으로 살았다.

지금은 10대의 '나'와 20대의 '나'를 해체하고 나와 타자의 관계를 재설정하는 작업을 하며 살고 있다. 관조와 몰입은 분절된 자아의 간극, 그 어딘가에 있다. http://nomad-crime.tistory.com/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