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한겨레신문은 자유한국당의 전신인 한나라당과 새누리당 시절 당 조직에서 매크로를 이용해 여론조작을 했었다는 사실을 단독으로 보도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언론들은 이 사건을 외면하고 있다. 한겨레신문의 보도가 사실이라면 민주당과는 직접 연관이 없는, 민간인 신분의 드루킹의 매크로 조작과는 차원이 다른 대형사건이다. 언론의 침묵은 이해할 수도, 용납할 수도 없는 문제다. 누군가 그랬다. 뉴스를 내는 것보다 내지 않는 것이 권력이라고.

5일 당일에는 방송사들 중에는 JTBC만 짧게 한 꼭지를 할애했으나 다른 방송사들은 보도조차 하지 않았다. 한겨레의 첫 보도가 아침 7시에 나온 것을 감안한다면 취재할 시간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다른 매체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드루킹이 민주당 당원이었다는 사실에 방점을 찍으며 모든 언론이 엄청난 양의 기사를 쏟아냈던 때와는 너무도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5일자 한겨레 1면.

한겨레와 인터뷰한 모 씨는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드루킹이 일본총영사를 요구했다면 나는 총리 요구할 정도겠다”고 했다. 당시 한나라당이 운용했던 매크로의 규모를 짐작케 하는 발언이었다. 드루킹 사건이 특검까지 간 상황에서 한나라당과 새누리당의 매크로에 대해서 언론이 침묵하는 것은 국민의 알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다.

하루가 지나도 대부분의 언론들은 이 사건을 보도하지 않거나 다루더라도 주요 기사 바깥에 배치하는 소극적 태도를 보였다. 방송사의 경우 JTBC가 두 꼭지를 구성했으나 전체 시간은 2분이 채 되지 않았고, KBS와 MBC는 한 꼭지씩을 배치했으며 문제의 심각성을 전달하려는 의도는 보이지 않았다. 드루킹 사건 초기에 없는 사실까지 만들어가며 보도에 열을 냈던 것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기타 종편들은 이 사건에 대해 입을 다물고 있다.

박근혜 대선 캠프도 '매크로 의혹'…민주당 "고발할 것" (JTBC 뉴스룸 보도 영상 갈무리)

게다가 보도 내용도 이 사건의 실체에 대한 것보다는 여야의 공방으로 핵심을 흐리려는 의도마저 보였다. 본질을 피해가려는 의도가 아니라면 처음부터 이런 식의 보도를 하지는 않는다. 그나마 CBS가 5일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의 박범계 민주당 의원과의 인터뷰와,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2012년 새누리당 선대위 디지털종합상황실장을 지냈던 박철완 교수와 인터뷰를 통해 한겨레가 보도한 내용 이상을 전달하려는 노력을 보였을 뿐이었다.

'김현정의 뉴스쇼'와 인터뷰한 박철완 교수가 “2012년 당시에 불법적인 온라인 선거운동을 했던 사람들 중에서 상당수가 BH 홍보수석실로 흘러 들어갔다”라고 한 부분은 매우 중요한 증언이었다. 최순실-박근혜 게이트에서 자주 이름이 거론됐던 김한수 씨도 그런 경우에 속한다는 말도 했다. 자유한국당이 아닌 한나라당과 새누리당에만 국한시켜도 큰 선거가 여러 번 있었다는 점에서 이번 폭로의 심각성이 얼마나 큰지를 말해준다. 언론의 침묵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는 것이다.

보도의 소극성을 떠나 드루킹 사건으로 한 달 이상 온갖 기사를 쏟아낸 언론이 자유한국당의 과거에 관심을 두지 않은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심지어 드루킹이 옥중편지를 통해 “이름을 밝힐 수 없는 한나라당 측 선거관계자로부터 2007년 대선에 사용되었던 ‘댓글기계’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를 입수하게 됩니다”라는 진술을 했음에도 언론들 중에 한겨레신문만 이 사실을 알게 됐다는 것도 믿을 수 없는 일이다.

자유한국당 김성태 원내대표(왼쪽)가 16일 오후 국회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특검법안과 관련해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언론들이 한나라당 매크로를 보도하지 않는 이유가 지방선거를 의식한 것 아니냐는 의심도 제기되고 있다. 남북정상회담과 북미정상회담이라는 역사적 사건 앞에도 한 달이 넘도록 드루킹에 전념했던 것과는 너무도 다른 모습이다. 사건을 먹고 사는 언론이 드루킹보다 더 큰 사건에 눈과 귀를 막고 있는 이유가 무엇인지, 이유가 있다면 이슈를 외면해도 되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한편, 드루킹 사건과 마찬가지로 이번 한나라당과 새누리당 매크로 사건의 본질은 네이버에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네이버가 드루킹의 매크로 조작을 알았다면 한나라당과 새누리당의 매크로도 모를 리가 없다. 민주당 박범계 의원도 “이게 다 포털하고 관련이 있기 때문에 이제는 네이버 측이 밝힐 때가 됐다”는 말을 했다. 근본적으로 포털이 나서지 않고는 매크로 문제는 해결될 수 없음을 의미한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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