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방송된 <로드넘버원> 9회를 보면, 재미는 있으되 긴장감이 연속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눈으로 즐길 수 있지만 마음까지 흔들기엔 2% 부족하다. 드라마의 재미는 매회 진화하고 있음에도, 긴장감은 단편적으로 끝나고 다음에 대한 기대치로 발전하는데 있어, 한계점을 노출한다.

재미의 살점을 붙여 갈 구심점, 바로 뼈대가 튼튼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2중대의 뼈대는 탄탄하지만, '소지섭-김하늘-윤계상'의 멜로 뼈대는 여전히 부실하다. 회를 거듭할수록 느껴지고 지속되어야 할 긴장과 갈등, 기대의 살점을 붙여 나갈 멜로가, 인큐베이터안에서 나오지 못하는 형국이다. 특히 삼각멜로의 중심인 김수연(김하늘)이 영양실조에 걸려 버렸다.

이장우(소지섭)와 신태호(윤계상)의 살점은, 초반 부진에도 불구하고 토실토실하게 붙었다. 그러나 제자리걸음 중인 김수연은 <로드넘버원>에 최대 희생양으로 전락하고 있다. 좀처럼 존재감을 보여주지 못한 채, 오히려 역주행도 마다 않으며, '장우-태호'의 앞길을 가로막는 장애물 덩어리로 비춰질 지경이다.

로드넘버원, 멜로의 블랙홀에 빠진 김하늘?

<로드넘버원> 9회에는, 중대장 장우의 지시를 거부한 태호로 인해, 장두식(김동현)을 잃은 아픔을 겪는다. 태호의 빗나간 판단은, 또 다시 장우에 대한 콤플렉스를 키우고 만다. 명령불복종의 이유로 태호에게 자결을 주문한 장우의 지시에, 자신의 머리를 향해 방아쇠를 당긴 건 태호의 마지막 자존심이었다.

태호에겐 전술실패의 대가로 '자존심'을 세워 준다. 태호의 캐릭터가 오히려 탄탄해지고, 장우와 대립해도 부족함이 없도록 적당한 각을 유지시킨 좋은 장면이었다. 한편 장우는 태호뿐 아니라, 자신에게 늘 불만과 시기를 표출했던 오종기(손창민)에게도 따뜻한 손을 내밀면서, 사람냄새 나는 모범적인 리더의 전형을 보여줬다.

이렇듯 장우와 태호뿐 아니라 오종기마저 빈번한 마찰을 겪는 와중에서도, 상황에 따라 훈훈한 전우애로 호감도를 높여가며 극적 재미를 불어넣고 있는 가운데, 유독 김수연만 길을 잃어버린 듯 하다. 장우와 태호가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약한 존재감. 의사 김수연이 아닌, 군대 간 애인이 제대하길 목빠지게 기다리는 수동적인 여자에 불과하다.

오빠 수혁을 위해 평양까지 왔다. 그것도 사랑하는 애인 장우까지 버리고 말이다. 그렇다면 수연이 평양에서 겪어야 할 일은, 불쌍한 아이와 밥을 나눠 먹는 게 다 여서는 곤란하다. 총은 없지만 메스가 있다. 또한 부상당한 병사에게도 사연이 있고 사건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수연을 감싸는 사건이라 함은, 오직 장우안에 갇힌 평면적인 모습뿐이다. 더군다나 곧 죽을 것 같았던 오빠가, 아직도 멀쩡하게 살아있다는 게 그녀에겐 아킬레스다.

오빠를 택한 수연의 선택이 빗나가야, 장우를 그리워하는 모습도 보다 애틋하게 보였을 법 했다. 수연이 겪을 내적인 갈등과 외부적인 요소들이 그녀를 괴롭혀도 모자랄 판에, 임신했다는 사실 하나로 말년병장의 모습을 하고 있다. 한가하게 어린 아이와 밀담을 나누고, 인민간호사(김예리)가 다가오면 급정색. 약혼했던 태호는 안중에도 없고, 오직 장우만을 떠올리며 세월아 네월아... 이런 수연을 찾아가 대답을 듣겠다는 태호의 캐릭터마저 잡아먹는 자충수.

언니를 사랑하는 태호에게 매달리는 수희(남보라)나 '웰컴투동막골' 강혜정이 강림한 광녀 (황보라)도 존재감을 보이는데, 여주인공 수연은 분량도 얼마 되지 않을 뿐더러, 등장해도 미친존재감이 아닌 안습존재감에 머문다. 장우와 태호사이에 불꽃튀는 연기대결속에, 두식과 종기의 에피소드로 9회내내 지속됐던 재미가, 수연에 이르러 거품처럼 빠졌다는 게 안타깝다.

<여명의눈동자>, <모래시계>와 같은 작품은 시대상황을 극적으로 잘 구현하기도 했지만, 그 안에 사람냄새가 났고 적절한 멜로라인을 그려 넣었기 때문에, 시너지를 내고 심금을 울릴 수 있었다. 시청자의 감정이입은 시대상황에 앞서, 극중 인물에게 하기 때문이다.

특히 때와 장소에 구분 없이 사람의 감정을 가장 쉽게 요동치게 하는 '사랑'은, 모든 드라마의 핵심이다. <로드넘버원>이 '장우-태호'를 중심으로 아무리 전우애를 다진다 해도, 결국 수연이 살지 못하면, 시청률과 관계없이 기획의도를 못 살린 반쪽짜리 작품에 머물고 만다. 현재 2중대의 에피소드는 재미가 붙은 상황이다. 이제는 블랙홀에 빠진 멜로구하기에 나서야 한다. 이를 위해선 김수연의 캐릭터를 멜로가 아닌 방향에서 살려놔야 한다.

김수연도 밥 값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전쟁 통에 난리가 나고 부상자가 속출하는 가운데, 의사 수연이 제일 한가한 게 말이 되나. 지금의 수연은 의사가 아니라 환자 같다. 짧은 분량마저 장우를 그리워하는 수연으로 채우는 건 악수다. 수연은 추억에서 벗어나, 좀 더 잔혹한 현실과 부딪힐 필요가 있다. 장우와 재회할 때, '왜 이제왔어, 얼마나 기다렸는데.'의 느낌이 아니라, '꿈인가, 생시인가'로 보여야 감동도 커지기 마련이다. '예정된' 만남의 느낌을 줄 것이 아니라 '예상 못한' 만남을 기대케 하는, 그녀를 위한 사전 작업이 이뤄진다면 <로드넘버원>의 죽은 멜로도 숨을 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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