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N <나의 아저씨> 마지막 회, 우연히 오랜만에 길거리에서 마주친 이지안과 박동훈이 밝게 웃으며 손을 마주 잡는다. 반갑게. 그리고 잘 지냈노라 서로의 안부를 전한다. 드라마를 완주해왔던 시청자들은 안다. 저 마주 잡은 손이, 눈으로 묻는 안부가, 그리고 기꺼이 답하는 서로의 안위가 어떤 의미인지를. 이 험난한 세상에서 서로가 다리가 되어 이 자리에 건재할 수 있었던, 그 곡진한 감정이 그 짧은 안부를 통해 전해지고, 두 사람은 다시 서로의 갈 길을 향한다.

후계동으로 한번 놀러오라는 당부를 더하고 기꺼이 그 청을 받아들이며. 그렇게 모처럼 만나 반가웠던 이지안과 박동훈처럼 <유희열의 스케치북> 400회가 6월 3일 찾아왔다. 400회라 하여 주말의 피로를 견디며 닥본사한 <유희열의 스케치북>은 <나의 아저씨>의 후계동처럼 여전히 그곳에 있었다.

400회의 여정

KBS 2TV <유희열의 스케치북>

<노영심의 작은 음악회>, <이문세 쇼>, <이소라의 프로포즈>, <윤도현의 러브레터>, <이하나의 페퍼민트>에 이어 2009년 4월 24일부터 방영한 <유희열의 스케치북(이하 스케치북)>이 400회를 맞이했다. 햇수로만 9년차이다.

<스케치북 >100회는 떠들썩했다. 지상파 유일의 정통 음악 프로그램이란 자부심을 한껏 내보인 4주간의 특집. 국내 정상의 프로듀서들을 한자리에 모은 1탄 '더 프로듀서', 2탄 자신의 음악적 색깔을 고수하는 뮤지션들의 '더 레이블', 드라마의 들러리에서 당당하게 음악으로 길어낸 OST의 3탄 '더 드라마', 그리고 기타리스트 함춘호, 베이시스트 신현권, 아코디언의 거장 심성락 씨와 함께했던 '더 뮤지션' 등을 통해 가수를 통해 표현되던 음악의 또 다른 주인공들이 무대를 빛냈고, 정통 음악 프로그램이라는 자부가 빈 말이 아니었음을 한껏 드러냈다.

200회. 정통 블루스&컨트리의 김태춘, 진보 하드록의 로맨틱 펀치, 실험적이고도 독창적인 이이언, 블루스계의 싸이 김대중, 작곡자이자 재지한 뮤지션 선우 정아까지. 당대 최고의, 혹은 인기 뮤지션으로 대접받는 '이효리, 윤도현, 장기하, 박정현, 유희열'이 자리를 바꿔 누군가의 '팬'이 되어 무대를 함께하며 실력파 뮤지션을 세상에 재조명했다.

KBS 2TV <유희열의 스케치북>

300회. <불후의 명곡>과 <나는 가수다> 등 각종 편곡 프로그램이 성황을 이루는 가운데, <스케치북>은 이런 유행의 트렌드를 역발상으로 활용하여 본연의 정통 프로그램으로서의 위엄을 드러낸다. '선택 2015 발라드 대통령' 특집, 대통령 선거의 모양새를 내며 유희열이 공을 뽑아 출연자를 정하는 방식을 택하지만, 결국은 남들 노래의 재편집이 아닌, 윤종신, 박정현, 거미, 김범수, 백지영, 자이언티까지 '발라드'계의 내로라하는 가수들의 본연의 매력을 한껏 조명하는 자리를 통해 음악의 자리를 묻는다.

후계동 같던 400회, 음악의 '아버씨'가 된 유희열

그리고 400회. 이렇게 떠들썩했던 지난 특집에 비하면 400회 <스케치북>은 어쩌면 상대적으로 조촐해보일지도 모른다. 뒤늦어 버린 인생처럼 너무 늦게 시작하는 <스케치북>을 졸린 눈을 비비며 굳이 지켜낼 성의 대신, 손쉬운 편집 영상들이 '닥본사'를 대체한다. 스케치북하면 떠오르던 대명사였던 유희열을 사람들은 이제 <알쓸신잡>이나 <슈가맨>의 MC로 떠올린다. <스케치북>이 아니라면 볼 수 없었던 기획이나 뮤지션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이 프로그램마저 떠들썩한 아이돌 그룹의 무대가 선점하면서 굳이 그 늦은 시간을 기다릴 이유를 잃었다.

KBS 2TV <유희열의 스케치북>

400회는 그렇게 희석되어가는 <스케치북>의 의미를 점검하는 시간이 되었다. 윤종신, 이적, 아이유, 다이나믹 듀오, 오혁, 10cm, 조현아x멜로망스, 오연준까지. 한 시대를 풍미했던, 혹은 여전히 풍미하고 있는 그리고 이제 막 풍미하는 뮤지션들의 색다른 조합이야말로 9년 여정의 <스케치북>이 되었다.

‘Thank You For The Music’이라는 부제로 시작된 조촐한 무대. 뮤지션 혼자, 혹은 콜라보로 엮어지는 무대, 그리고 언제나처럼 유희열의 썰렁한 농담과도 같은 '역주행 좋니 좋아 상', '내가 니 애비다' 등의 기발한 하지만 적확했던 '땡스 투' 시상을 관통하는 건 이들 뮤지션의 존재를 세상에 알리는 데 일조했던 <스케치북>의 자화자찬이다. 2017년을 울려 퍼졌던 '좋니'를 다시 불렀던 무대. 멜로랑스라는, 10cm, 오혁, 심지어 아이유라는 신인을 자신 있게 소개했던 프로그램. 그리고 링거를 맞은 다이나믹 듀오를 여전히 '노예'로 부릴 수 있는 존재감이다.

즉, <스케치북>은 토요일 밤 자정을 넘겨 '쭈그러져' 있는 듯하지만, 이 프로그램이 길어 올린 음악들이 여전히 이 세상 속에 화려하게 회자되고 있다는 소박하지만 당당한 '자부심'이다. 아버지 같은 아저씨 유희열이 있기에 가능한.

KBS 2TV <유희열의 스케치북>

그래서 400회를 맞이한 <#유희열의_스케치북>은 마치 아저씨 세대와 젊은 세대가 정희네서 한데 어우러져 술 한 잔 하며 기꺼이 '인생'을 논할 수 있었던 후계동과도 같았다. 그곳엔 '아버씨' 유희열이, 여전히 윤종신과 이적이 있지만, 오혁과 멜로망스, 10cm를 세상으로 인도할 여유가 있고, 이제 오연준이라는 신인이 그가 팬이라던 아이유와 함께 평생 잊지 못할 첫 무대를 가질 수 있는 '새로운 추억'이 생성 중이다.

우리가 세상사에 지쳤을 때 찾아가고픈 후계동처럼, 그래서 <스케치북>도 오래오래 그곳에서 음악의 후계동으로, 우리의 아저씨가 되어 버텨 줄 것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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