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윤수현 기자] MBC 전참시에 최고의 과징금을 줘야 한다는 방송소위 위원들의 결정이 한순간에 바뀌었다. 최승호 사장이 방송통신심의 위원에게 항의 전화를 했고 이후 제재 수준이 낮춰졌다.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 격이다.

MBC ‘전지적 참견 시점’은 이영자 씨의 ‘어묵 먹방’을 보여주는 과정에서 세월호 참사 당시 뉴스 보도 화면을 사용했다. 일간베스트 저장소를 위시한 일부 인터넷 사이트에서 어묵이 어떤 의미로 통용되는지 알고 있었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전참시는 대중의 공분을 샀다. 이에 MBC는 진상조사위원회를 꾸렸고, 최승호 사장이 거듭 사과를 하기도 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미디어스)

방통심의위도 나섰다. 방송소위는 지난 10일 긴급심의를 열어 MBC에 의견진술을 결정했다. 그리고 17일 방송소위는 위원 만장일치로 과징금을 건의했다. 당시 허미숙 부위원장은 “최고 수준의 제재를 가해도 과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심영섭 위원은 “지상파 방송사업자에게 과징금 처분이 아프냐는 생각을 한다”면서도 “진상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책임을 지는 사람이 없다”고 과징금 결정의 이유를 밝혔다.

28일 방통심의위 전체회의가 열렸다. 이날 MBC ‘전참시’ 과징금 건의가 안건으로 올라와 있었다. 이날 전체회의에서 과징금 결정이 나올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4기 방통심의위 들어서 방송소위에서 전원합의로 올라온 사안이 전체회의에서 바뀐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상에서 벗어났다. 방통심의위는 MBC 전참시에 대한 징계를 '관계자 징계 및 해당 회차에 대한 프로그램 중지'로 결정했다. 과징금보다 한단계 낮은 수준의 징계다. 방송소위에서 위원들의 강한 발언을 들어본 바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당시 위원들은 “과징금이 과연 공중파에 실효적인 제재인가, 더 강한 제재는 없는가”를 고민했다.

최초의 이탈자는 허미숙 부위원장이었다. 28일 전체회의에서 조능희 MBC 기획편성본부장의 추가 의견진술 이후 허미숙 부위원장은 “고의성은 발견하지 못했다, 유족들이 MBC에 대한 이해와 수용을 했다”면서 관계자 징계와 해당 회차에 대한 프로그램 중지를 결정했다. 이후 ▲강상현 ▲허미숙 ▲이소영 ▲김재영 위원은 관계자 징계로 뜻을 모았고, ▲전광삼 ▲심영섭 ▲윤정주 ▲박상수 ▲이상로 위원은 과징금 의견을 냈다. 다수인 5명의 의견에 따라 과징금이 결정될 수 있었다.

분위기는 10여 분의 쉬는 시간 후 180도 변했다. 심영섭 위원이 관계자 징계로 의견을 바꿨고, 이후 윤정주 위원도 관계자 징계로 수위를 낮췄다. 전광삼, 박상수, 이상로 위원은 과징금 결정을 유지했고 결국 6:3으로 ‘관계자 징계’ 및 ‘해당 회차에 대한 프로그램 중지’가 결정됐다. 공교롭게도 과징금으로 의견을 남긴 3명의 위원은 야당 추천 위원들이다.

최승호 MBC 사장(영화 '자백' 스틸화면)

28일 전체회의에서 윤정주 위원은 관계자 징계로 의견을 바꾸면서 “방송소위가 끝난 직후에 (MBC로부터) 거친 항의를 받았다”고 밝혔다. 이에 윤정주 위원은 “MBC 제작진들의 진정성에 대해 의구심을 갖고 있다”고 지적했다. 다만 “MBC의 거친 항의 때문에 의견을 바꾸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17일 방송소위에서 과징금 결정이 내려진 이후 MBC 측에서 ‘거친’ 항의를 윤정주 위원에게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29일, 미디어오늘의 보도를 통해 ‘거친’ 항의를 한 주체가 최승호 MBC 사장으로 밝혀졌다.

최승호 사장은 “우리가 분명히 큰 잘못을 한 건 맞지만 후속 조치가 있었고, 지상파가 역대 가장 잘못한 정도로 보고 제재해야 하는지 의문이 들었다. 회사를 대표하는 사장으로서 과징금 제재는 지나치다는 의견을 전한 것”이라고 미디어오늘에 밝힌 바 있다. 그렇다면 과연 회사를 대표하는 사장으로 방통심의위 위원에게 의견을 전한 것이 타당한 일일까.

방통심의위는 수많은 방송사 및 홈쇼핑사에 과징금 결정을 내린다. 모두 저마다의 타당한 이유가 있다. 방송법에 근거해 징계 수위를 정하는 방통심의위에 ‘사장’이 직접 전화를 걸어 항의한다면 외압으로 보일 소지가 다분하다. 더욱이 작은 언론사도 아니고 MBC라는 지상파 방송사 사장이다. 윤정주 위원은 “(회의 때 해당 발언을 한 이유가) 다시는 그런 외압을 행사하지 말라는 방송사 측에 대한 강력한 메시지를 주기 위함”이라고 말했다.

공교롭게도 최승호 MBC 사장은 야당 추천 위원인 ▲전광삼 ▲박상수 위원에게는 항의 전화를 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그리고 이들은 과징금 의견을 바꾸지 않은 위원들이기도 하다.

MBC 전지적 참견시점 조사위원회 기자회견 모습(MBC)

이번 사건은 방통심의위, MBC의 신뢰도에 심각한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과징금 건의 결정이 내려진 이후, 최승호 사장이 일부 위원에게 항의 전화를 했다. 또 전체회의에서 전원합의로 올라온 과징금 건의가 뒤바뀌었다. 그리고 전화를 받지 않은 위원들은 의견을 바꾸지 않았다. 최승호 사장의 항의 전화로 심의 결과가 바뀌었을 가능성은 적어 보이지만, 의혹을 낳기에는 충분하다.

앞으로 어느 사업자가 방통심의위 결정을 신뢰할 수 있을까. 특히 종편이 이번 사태를 어떻게 바라볼까. 앞으로 종편을 중징계하면 위원들에게 항의 전화가 폭주할 수 있다. 또 ‘MBC 만큼의 방송사가 아니어서 이러나’라는 불만이 생길 수 있다.

MBC는 2차례 의견진술 때마다 “중한 징계를 내려달라”고 말한 바 있다. 하지만 과징금 징계는 수용할 없다는 입장인 게 분명하다. MBC 재심청구설까지 회자됐다. 세월호 유족에게 “해서는 안 될 실수로 깊은 상처를 드려 죄송하다”고 거듭 사과의 뜻을 남긴 것과는 대조적이다. MBC 진정성에 의문이 달린다.

전화 한 통이 MBC와 방통심의위에 자충수로 다가올 가능성이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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