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송창한 기자] KBS가 제기된 성폭력 사건에 대해 피해자 중심의 조사를 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제식구 감싸기 논란의 소지가 다분한 상황이다.

백 모 기자로부터 성폭행 피해를 입었다는 피해 호소인 A씨의 폭로 이후 KBS가 관련 감사를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A씨는 KBS가 '소송'을 이유로 돌연 감사를 보류했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백 기자는 지난 3월 A씨를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한 바 있다.

A씨는 22일 미디어스에 "KBS 감사실에 연락해 감사과정을 물어보니 백 기자가 고소를 했기 때문에 법적 절차가 마무리될 때까지 감사를 보류하겠다고 답했다"고 토로했다. 이어 A씨는 "감사는 KBS 직원의 추행혐의에 대한 것으로 해당 소송과 감사의 연관성이 떨어진다고 KBS 감사실에 주장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KBS 사옥 전경(KBS)

A씨는 지난 2월 자신의 SNS를 통해 KBS 백 모 기자에게 과거 강제 추행을 당했다고 폭로했다. 2011년부터 2013년까지 보도국에서 리서처로 일한 A씨는 2012년 6월, 부서 차원으로 간 MT에서 백 기자에게 강제 성추행을 당했다고 폭로했다. 또한 A씨는 회사 간부들이 이를 알고있었음에도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회사 내부로부터 2차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했다.

KBS는 A씨의 폭로 내용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자 "이미 감수에 착수했다"며 피해 내용과 더불어 2차 피해 여부에 대해서도 철저히 조사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백 기자는 지난 3월 A씨를 허위사실 유포 및 사실적시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 KBS 감사실이 A씨에게 감사 지연의 이유로 든 소송에 따라 A씨는 현재 경찰 조사를 받은 상태다.

A씨의 주장에 대해 KBS 감사실은 23일 자사 홍보실을 통해 "감사 '보류'나 '중단'은 아니다. 신중하게 판단하고 있고 조사도 진행중"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성폭행 사건과 관련한 직장 내 감사는 소송과는 별개로 진행되어야 한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남정숙 미투연대 대표는 23일 미디어스와의 통화에서 "미투는 emergency, 비상 응급상황"이라며 "피해자가 '나 좀 살려주세요'하고 응급 요청을 한 것인데 회사가 신중하게 판단하겠다는 것은 가해자에 대한 처벌을 신중하게 하겠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비판했다.

특히 남 대표는 "성폭력 사건에 대한 사내 감사는 법원의 판단과 별개로 진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남 대표는 "내가 그랬다. 대법원 결과는 3년도 더 걸린다. 저는 1심만 3년이 걸렸다"며 "그건 회사가 (가해자로 지목된)사람을 처벌하지 않겠다는 이야기다. 저의 경우 1심에서 이겼는데도 아직 복직이 안됐다. 학교는 대법원까지 가면 결과가 뒤바뀔 것이라며 가해자를 파면시키지 않았다"고 말했다.

남 대표는 성균관대 교수 재직 시절인 2014년 당시 문화융합대학원장이던 이 모 교수에게 강제 추행과 성희롱을 당했다고 폭로하고 이를 학교측에 알렸으나 오히려 재임용 탈락 공문을 받았다. 지난 2월 법원은 남 대표를 성추행한 이 모 교수에 대해 1심에서 유죄 판결을 내렸지만 남 대표는 복직되지 않았고, 이 모 교수는 파면되지 않았다.

김영순 한국여성단체연합 대표는 "보통 미투가 발생하면 전형적으로 가해자의 명예훼손·무고죄 고소가 이어진다. 성폭력 사건을 물타기하는 것"이라며 "소송과 감사는 별개다. 피해자가 실명을 밝히고 SNS에 피해 내용을 폭로했으면 사업주는 빨리 사실관계를 파악해 판단을 해야한다. 소송 결과를 기다리는 것은 전형적인 2차 가해"라고 지적했다.

김 대표는 "직장 내 성희롱의 진상규명 책임은 사업주가 진다"며 "KBS는 '신중한 판단'이 아니라 사실관계를 빠르게 파악해 발표해야 한다. 명예훼손·무고죄 결과가 나오기 이전에 감사를 실시해 적절한 처분을 내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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