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_ 과거 텐아시아, 하이컷 등을 거친 이가온 TV평론가가 연재하는 TV평론 코너 <이주의 BEST & WORST>! 일주일 간 우리를 스쳐 간 수많은 TV 콘텐츠 중에서 숨길 수 없는 엄마미소를 짓게 했던 BEST 장면과 저절로 얼굴이 찌푸려지는 WORST 장면을 소개한다.

이 주의 Best: 줄줄 새는 저출산 예산, 차라리 <SBS 스페셜> 제작비로! (5월 13일 방송)

SBS 스페셜 ‘앵그리맘의 반격’ 편

<SBS 스페셜> ‘앵그리맘의 반격’ 편은 이렇게 시작한다. 담당 피디는 ‘최초’라는 수식어를 가진 여자 피디라고. 그 ‘최초’라는 타이틀은 ‘시사교양본부에서 최초로 아이를 가진 여자 피디’라는 표현 앞에 붙었다.

왜 방송국 내부 사정을 오프닝으로 삼았을까. 여전히 우리나라는 ‘아이 가진 여성’이 일하기 어렵다는 환경이라는 것을, 상대적으로 진보적이라고 알려진 방송국에서조차 엄마의 자리는 위태롭다는 것을, 육아 관련 다큐를 만드는 방송국에서조차 육아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씁쓸하면서도 흥미로운 오프닝이었다.

SBS 스페셜 ‘앵그리맘의 반격’ 편

워킹맘 피디의 사례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정부지원 베이비시터 지원 서비스’인 아이돌봄 서비스 신청이 얼마나 불가능에 가까운 도전인지를 직접 보여줬다. 원하는 시간에 언제든지 이용할 수 있다는 홍보 문구와는 달리, 2시간 내내 이곳저곳에 전화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저희는 안 한다’. ‘방법이 없다’는 말뿐이었다.

아이를 키우는 엄마 50여 명의 이야기가 나왔지만, 감성적인 스토리텔링이 아니었다. 이성적, 구조적, 거시적, 객관적 접근이었다. 임신과 출산으로 인한 경력 단절부터 워킹맘의 현실, 황혼육아까지 이어지는, 생애 주기별로 육아를 전담하게 되는 엄마의 알고리즘을 ‘맘고리즘’으로 표현한 것이 대표적인 예다. 개인적인 육아가 아니라 구조적, 거시적으로 짚어보는 구성이 <SBS 스페셜>의 가장 큰 장점이었다.

SBS 스페셜 ‘앵그리맘의 반격’ 편

가장 돋보인 건, 지난 12년간 저출산 정책과 예산을 모두 분석한 대목이었다. 저출산 정책의 면면이 얼마나 황당하며, 지난 12년간 126조가 쓰인 저출산 예산이 얼마나 허투루 쓰이고 있었는지, 홈페이지만 봐도 알 수 있는 내용을 ‘육아법’ 발의한 국회의원들이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SW 대학 지원 사업, 청년 해외취업 추진, 유해행태 예방사업, 직원 생일파티에까지 저출산 예산이 사용됐고, 담당 피디가 정부 육아 서비스 홈페이지에서 발견한 내용을 정작 ‘육아 트리플 법’을 발의한 국회의원은 모르고 있었다. 현실과 동떨어진 정책, 현실을 모르는 정치인을 조목조목 밝혀냈다.

한 엄마, 한 가정 이야기에 포커스를 맞춘 뒤 이를 통해 우리나라 육아 현실을 짚어보는 것이 기존 다큐 구성 방식이었다면, 이번 <SBS 스페셜>은 총 50개의 이야기 그리고 육아 정책 담당자들의 인터뷰를 통해 이것이 일부의 특별한 이야기가 아니라 모두의 이야기임을 강조했다.

이 주의 Worst: 시청자 출제위원 없었으면 어쩔 뻔! <뜻밖의 Q> (5월 12일 방송)

MBC <뜻밖의 Q>

지난 12일 방송된 MBC <뜻밖의 Q> 2회는 변화의 역효과를 보여준 회차였다. 첫 회 이후 음악 관련 소품이 늘었다. 2인 1조로 팀이 되어서 퀴즈를 푸는 구성으로 바꿨다. 첫 회에서 유일하게 반응이 좋았던 이모티콘 퀴즈의 분량이 확 늘었다. 제작진은 “싹 다 고쳤다”라는 자막으로 자신들의 노력을 표현했다.

너무나 많은, 너무나 급격한 변화였다. 반응이 좋은 퀴즈였던 이모티콘 퀴즈는 방송 시간의 절반인 40분을 할애하고, 나머지 퀴즈들은 한 문제씩만 배치했다.

MBC <뜻밖의 Q>

가지와 말 이모티콘을 연속 배치한 브라운아이즈의 ‘가지마가지마’, 코가 길어지는 이모티콘으로 보여준 빅뱅의 ‘거짓말’ 같은 이모티콘 노래 퀴즈 자체는 재미있었다. 하지만 이것에만 의존하는 퀴즈 예능이라면, 곤란하다. 처음 1~2문제는 재밌었으나 계속 가다 보니 이게 퀴즈인지 코인 노래방인지 헷갈릴 정도였다. 일상에서 친구들끼리 재미 삼아 풀 수 있는 퀴즈를 방송의 주된 소재로 삼는 건 너무 안일한 생각이다.

밴드 칵스가 편곡한 노래들 속 제목과 가수 맞히기 코너를 제외한 거의 모든 퀴즈의 출제위원은 시청자들이었다. 시청자들의 의견을 적극 반영하겠다는 긍정적 의도로 해석될 수도 있지만, 바꿔 생각하면 제작진이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놓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모든 출제권한을 시청자에게 부여한 뒤, 퀴즈가 재미없을 경우 퀴즈를 출제한 시청자에게 비난의 화살을 돌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제작진은 시청자들이 보낸 퀴즈를 선별해서 방송에 내보낸 중간 역할자에 불과했다.

MBC <뜻밖의 Q>

모든 종류의 음악 퀴즈를 다 가져다 놓고, 이 중에서 어떤 퀴즈가 반응이 좋은지, 반응 좋으면 늘리고 반응 없으면 퇴출시키려는 시험대 같은 방송이었다. 제작진이 애초 어떤 의도로 어떤 방송을 만들어가야겠다는 뚝심은 사라지고, 시청자 반응에 따라 방송의 방향성이 달라지는 줏대 없는 방송이 될 위험이 있어 보인다. 문제는 낸 시청자들의 창의력은 좋으나, 방송을 만든 제작진의 창의력은 글쎄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