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무슨 무식한 짓입니까. 보상 받을 것 다 받고 나서 아쉬우니까 언론을 이용해요? 그만하세요. 아주머니도 좀 아닌 것 같습니다.” (누리꾼 새봄)
“아이를 가지고 얼마나 한 몫 잡으려는 겁니까. 전 죽은 아이가 불쌍합니다.” (누리꾼 choyi3)


예상했던 반응이었습니다. 고 박지연씨 어머니가 “삼성으로부터 4억여원의 돈을 받고 산재소송을 포기했다”는 인터뷰 기사가 나간 12일. (“유골 뿌리기 직전 돈이 입금됐다” <한겨레21>)

이 기사에는 지연씨 어머니를 비난하는 누리꾼의 댓글이 주렁주렁 달렸습니다. 대부분은 ‘삼성에게 돈을 받은 뒤 또 다른 돈을 타내려고 언론과 인터뷰를 했느냐’는 힐난이었습니다. 돈을 주고 소송을 포기하게 만든 삼성전자를 비난하는 누리꾼들도 많았지만 지연씨 어머니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 좀 더 많았던 것 같습니다.

▲ 고 박지연씨 어머니 황아무개씨(왼쪽)가 삼성으로부터 4억여원을 받고 산재소송을 포기했다고 고백하고 있다. ⓒ한겨레
제가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여러분의 질문에 대신 답을 드리기 위해서입니다. 지연씨 어머니가 직접 말을 하시면 더욱 좋겠지만, 그걸 부탁드리는 건 이제 그만하려고 합니다. 이 분은 너무나 많은 상처를 받고 계시거든요.

사실 지연씨 어머니는 사람들의 이런 반응을 충분히 예상한 상태에서 고백을 해주신 겁니다. 그 스스로도 ‘딸 자식을 돈 주고 판 것 같아 자살하고 싶은 심정’이라고 말하셨으니까요. 죄책감에 시달리고 계십니다. 삼성에게 돈을 받고 소송을 취하한 것이 자신의 실수였다는 것을 잘 알고 계십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런 인터뷰를 하신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사실 저희의 끈질긴 설득 때문이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삼성이나 다른 곳에서 돈을 더 얻어내려고 언론을 이용한 것 아니냐’는 의심을 보내셨지만, 그건 이 분이 인터뷰를 결심하게 되기까지의 과정을 모르고 하시는 말씀입니다.

제가 설득한 겁니다. 삼성일반노조를 비롯한 시민단체가 설득한 것이었습니다. 어머니는 한사코 저희와의 만남을 피하셨습니다. 삼성의 눈치가 보였기 때문입니다. 삼성이 ‘언론과 시민단체와 접촉하지 않는’ 조건으로 4억여원을 준 것이었는데 이걸 어기는 게 쉽지 않았겠지요.

하지만 삼성이 돈을 주고 산재소송을 무력화시킨다는 정황을 접하게 된 이상 저희는 어머니를 내버려둘 수 없었습니다. 솔직히 좀 저희가 괴롭혀 드린 것이었습니다. 끊임없이 전화하고, 충남 논산의 집 앞으로, 회사 앞으로 찾아갔습니다. 무례한 행동을 한 겁니다. 그렇게 어머니를 설득한 것이었습니다.
어머니에게 말씀 드렸습니다.

“이대로 딸의 죽음이 묻히는 것이 어머니가 바라던 것이었나요” “삼성이 돈으로 백혈병 논란을 덮으려 한다면 그것이 옳은가요”

어머니는 몇날 며칠 계속된 저희의 설득에 고개를 끄덕이셨습니다. 어머니도 아셨습니다. 그게 옳지 않은 선택은 아니었다는 것을.

하지만 쉽게 고백하진 못하셨습니다.

첫째는 일단 ‘돈을 받았다고 산재 소송을 포기해 버린 미안함’이었다고 합니다. 둘째는 수년동안 백혈병 치료비를 감당하느라 심신이 지쳤기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또 다른 상처 투성이의 싸움에 휘말리지 않고, 이제는 좀 홀가분하게 살고 싶으셨을 지도 모릅니다. 백혈병에 걸린 지연씨에게 우리 사회와 삼성이 보여준 차가운 무관심에 가슴이 뭉그러졌던 어머니는 어쩌면 이제는 좀 편안해지고 싶었을 수도 있습니다.

▲ 고 박지연씨는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 노동자들의 산업재해 의혹을 세상에 알린 상징적인 인물이었다. 그의 장례식장에서 오열하는 어머니. 삼성전자 명의로 4억원이 입금된 통장(작은 사진). ⓒ한겨레21
결국, 어머니는 오랜 고민 끝에 고백을 결심하셨습니다. 어머니는 “삼성에 이용당했다”고 했습니다. 분해하셨습니다. 딸의 죽음을 땅에 묻어버리려는 삼성에 그 알량한 돈 때문에 이용당했다며 우셨습니다. 그 흐느낌을 기사에 다 담지 못했기에 누리꾼들이 그렇게 악성댓글을 달았던 것입니다. 모두 제 책임입니다.

사람들은 4억 받은 것이 무슨 큰 잘못인 것처럼 말합니다. 하지만 입장 바꿔 놓고 생각해 보면 어떨까요.

멀쩡한 자식이 직장에서 일하다 죽었습니다. 그 기업이 유족 보상금을 준다는데 그걸 거절해야 합니까. 저는 아니라고 봅니다. 당연히 받았어야 할 돈입니다. 위로금은 딸의 치료비를 감당하느라 경제적으로 파탄 나 버린 이 가정에 꼭 필요한 돈입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딸 아이의 살가운 살결을 만져볼 기회를 잃어버린 지연씨 부모님께 꼭 필요한 돈입니다.

그리고 산재소송은 소송대로 했어야 합니다. 죽음의 원인을 밝히는 것 역시 유족들의 권리입니다. ‘삼성에 4억 받아 놓고 산재소송은 왜 또 하려는거냐’는 비난은 그래서 옳지 않습니다.

지연씨 어머니가 결국 저희 언론과 인터뷰를 하시기로 결심한 것은 ‘반올림’에 대한 미안함 때문이기도 합니다. 지연씨 어머니는 그간 <반올림>이 지연씨 치료비를 십시일반 모아줬는데 마치 <반올림>에 등을 돌리게 된 것 같아 무척 미안해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사람들의 비난을 감수하고 이번 고백을 결정해주신 것입니다.

삼성은 <반올림> 헐뜯기에 바쁩니다. 백혈병 피해 유가족 한 분은 삼성 관계자에게 이런 얘기도 들었다고 합니다. “반올림도 이익이 남아야 할텐데 산재 소송 도와줘서 뭔가 남기려 하는 것”이라고요. 지연씨 어머니는 삼성의 이런 반올림 헐뜯기에 동참한 것 같아 무척 미안해하고 계십니다.

삼성전자는 물론 지연씨 어머니에게 돈을 주고 산재소송 포기를 회유했다는 주장을 부인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해명은 사실 믿기 어렵습니다. 지연씨 어머니에게 돈을 건넨 것으로 보이는 삼성 관계자는 끝내 제 인터뷰를 거절했습니다. 정말 당당하다면 기자의 인터뷰를 피할 이유가 없는데 그는 저를 만나주지 않았습니다. 되레 박지연씨 어머니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며 저를 설득해야 하는데 그는 그러지 않았습니다. 왜 일까요.

지연씨 가족 뿐 아니라 다른 백혈병 피해 가족들에게도 똑같이 산재소송 포기를 회유했다는 증언이 나오고 있습니다. 삼성이 주장하듯 개인의 질병 때문에 죽은 노동자라면 그렇게 수억원의 돈을 준 이유도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고 연제욱씨 가족에게는 “삼성이 초일류 기업이니까 그렇다”고 말했다는데 초일류 기업다운 진지한 해명이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지금 지연씨 가족은 상처 투성이입니다. 지연씨의 치료비로 생긴 빚 1억원은 삼성에게 받은 돈으로 갚았지만 ‘산재소송 포기하고 삼성에게 돈을 받았다’는 따가운 시선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사랑하는 지연씨를 다시 볼 수 없다는 게 부모님의 가슴에 큰 구멍을 냈습니다. 지연씨 아버님은 술로 세월을 보내시다 결국 요양원에 맡겨진 상태입니다. 지연씨 어머니 역시 매일 밤 술 없이는 잠을 이루지 못합니다. 집에는 박스 채로 사다 놓은 소주병만 굴러 다닙니다. 지연씨 어머니는 매일 밤 눈물로 지새며 ‘언제 지연씨를 따라갈 수 있을까’ 날짜만 헤아리고 계십니다.

대체 왜 이런 일이 벌어져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삼성전자 백혈병 사건을 처음 알린 황상기씨(고 황유미 아버지)는 이렇게 말하더군요. “삼성에게 ‘또 하나의 가족’은 병에 걸리지 않았을 때뿐이다.”

삼성이 그들 스스로 일류 기업이라 일컫는 것처럼, 어린 여성 노동자들의 희생에 진심으로 책임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주길 기대합니다.

뒤늦게나마 용기 있는 고백을 해준 지연씨 어머니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현재 한겨레 방송부문 뉴스팀에서 취재를 하고 있는 기자다.
영상 카메라와 취재수첩을 함께 들고 현장을 누비는 우리나라에서 제일 앞선 멀티형 기자가 돼려고 노력중이다. 우리 사회 경제권력과 정치권력을 감시하는 사명을 놓는 그 순간, 기자가 아닌 단순 직장인이 된다는 생각을 갖고 산다. 그저 그런 기자가 되느니 문제적 기자가 되는 게 차라리 낫겠다고 생각하고 살기도 한다. 한겨레와 한겨레 독자들을 무지지 사랑한다. 개인 블로그 http://blog.hani.co.kr/catalun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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